[청계광장] 언제까지 '숫자'로 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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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학계에 알리는 수단이 논문이다. ‘논문을 출판하지 않는 과학자는 존재가 소멸한 것이다’(Publish or Perish)라는 얘기가 있다. 과장은 있지만 일말의 진실이 담긴 표현이다. 논문이 중요하다 보니 과학자의 성취를 논문의 편수로 측정하는 일이 흔하다. 김박사 4편, 이박사 5편이면, 이박사가 낫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논문은 볼 필요도 없으니 평가도 편하다.

이렇게 숫자만 세다 보니 오랜 시간 꾸준히 살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연구는 사라진다. 또 1년 주기로 논문편수를 세면 5년이 지나야 결과가 나오는 연구는 중단된다. 고사위기에 처한 분야의 연구가 대개 이렇다. 또 논문 한편의 길이가 짧아진다. 4페이지 논문이나 12페이지 논문이나 어차피 한편인데 힘들게 긴 논문을 쓸 이유가 없다. 어떻게든 셋으로 쪼개서 출판하는 게 유리하다.

여러 나라의 논문 길이를 비교해 본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논문이 확연히 짧았다. 과학자도 사람이다. 논문편수로 평가하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연구로 짧은 논문을 낸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오래 연구해 긴 논문을 작성하려는 과학자는 정년심사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고 연구비 신청도 실패한다.

논문이 출판되는 학술지는 대개 기업이 운영한다. 많은 편수의 논문이 쏟아지니 수요-공급의 법칙을 따라 많은 학술지가 만들어진다. 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 학술지가 부지기수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이제 숫자를 하나 만들어 학술지들을 한줄로 늘어세우게 된다. 일정한 점수 이상의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한 경우만 과학자 평가에 반영한다. 학술지에 출판한 논문 한편이 다른 논문에서 몇번이나 인용됐는지를 세어 계산하는 소위, 임팩트 팩터(IF)가 학술지의 점수로 널리 쓰인다.

자, 이제 신생 학술지는 출판된 논문의 인용수를 늘리려 엄청난 경쟁을 하게 된다.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인용수를 늘려 높은 점수를 받으면 그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한 과학자도 덕을 본다. 여기에 편승해 수익모델을 만들어 직접 학술지를 운영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 과학자 주변의 다른 과학자도 온갖 평가에서 이익을 본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은 이미 벌어진 현실이다. 누가 봐도 한심해보일 것이다. 이런 한심함의 근원은 바로 한사람의 성취를 객관적인 숫자로 측정하겠다는 생각이다. 누가 재도 똑같은 값이 나온다고 제대로 잰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가치는 그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점수 때문도, 피인용수 때문도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근본적인 관계를 멋지게 규명했기 때문이다. 누가 훌륭한 과학자인지는 숫자로 잴 수 없다. 점수가 높다고 훌륭한 것도 아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1호(2018년 12월19~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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