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한국의 백년기업과 창업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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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이어온 기업이 5000개에 이른다. 하지만 근대적 기업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100년 역사를 지닌 기업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의 100년 기업은 조선시대 말기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세워져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온갖 풍파에 살아남았다. 창업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불굴의 정신으로 100년 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동대문 두산타워.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가장 오래된 기업 ‘두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두산이다. 조선이 외세에 시달리던 1896년 8월1일 설립된 두산은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1위에 올라설 때까지 존속해 올해 123세가 됐다. 창립자 매헌 박승직 선생은 1864년 경기도 광주군의 전형적인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라도지역에서 무명을 사서 서울에 가져다 파는 행상업을 10여년간 하며 돈을 모아 33세에 배오개시장(현 종로4가)에 박승직상점을 차린 것이 두산그룹의 효시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 상인들이 상권을 장악하면서 국내 상계는 침체를 맞고 있었다. 육의전이 폐지되고 상행위가 자유화되면서 박승직상점은 전국 포목상을 대상으로 물품을 도매했다. 판매망을 넓히고 취급 품목도 다양화했다. 1915년에는 한국 최초 화장품인 ‘박가분’을 만들어 팔아 큰 인기를 모았다. 1925년에 주식회사 형태로 바꿔 회계처리를 근대화했으며 1951년에 ‘두산상회’로, 1953년에 ‘두산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5년 이전까지는 주로 소비재를 판매했는데 이후 구조조정으로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오리콤 등의 상장사를 둔 현재의 두산그룹 모습을 갖췄다. 2세와 3세를 거쳐 지금은 4세(박정원)가 회장이다.

◆최초 제조업체 ‘동화약품’

한국에서 오래된 기업 2위는 1897년 9월25일에 설립된 ‘동화약품공업’으로 올해 122세다. 국내 최초의 제조업체로 최초의 등록상표 ‘부채표’, 최초의 등록상품 ‘활명수’를 보유했다. 설립자인 은포 민강 선생의 아버지 노천 민병호 선생은 임금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무관인 궁중선전관이었다. 당시 궁중에서 사용되던 비방에 양약의 편리함과 장점을 더해 한국 최초의 신약 활명수를 개발했다. 약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일제강점기에 민강 선생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하는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도왔으며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에 가입했다. 동화약방은 상하이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비밀행정부서인 서울 연동부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만강 선생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중국으로 망명해 한인사회 계몽과 민족교육사업에 종사했다. 귀국해서는 동화약방을 계속 경영하면서 상하이임시정부의 자금조달책으로 활약했다.

활명수의 가치와 철학은 후대 사장들도 이어받았다. 물 부족국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기부활동을 해왔으며 지난해에는 활명수 120주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해 인도네시아의 식수 및 위생 관련 사업을 지원했다. 한국 최장수 브랜드 활명수는 출시된 지 100년이 훨씬 넘은 2018년의 갤럽 소비자 조사에서 소화제부문 인지도 99%,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물 좋은 간장 ‘몽고식품’

3위는 몽고식품이다. 1905년에 일본인 야마다 노부스케가 마산시 자산동에 세운 산전장유공장이 몽고식품의 전신이다. 식료품가게 점원이던 김홍구는 가게에 간장을 대주던 산전장유의 사장에게 스카우트돼 들어가 신임을 받으며 일하다가 공장 지배인이 됐다. 해방이 되자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한 축적 재산 적산(敵産)으로 분류된 산전장유를 친구와 함께 매입했다. 1945년 12월에 몽고장유 양조장으로 개명하고 사장이 됐다.

고려 충렬왕 시절 일본군 정벌 부대 몽고군이 마산에 주둔할 때 식수를 위해 판 우물이 몽고정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2호로 지정된 몽고정은 가뭄과 홍수에도 물이 줄거나 불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몽고간장은 수질이 우수한 몽고정 수류에 위치해 맛 좋은 장을 만들어냈다. 여러 장유업체가 자금난으로 도산하는 시기에 몽고장유는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로 성장했다.

1971년에 김홍구 사장이 사망하자 장남(김만식)이 31세에 가업을 물려받았다. 1987년 몽고식품으로 개명하고 1988년에 창원의 넓은 부지로 공장을 옮겼다. 전국 장유시장 점유율이 30%까지 늘어났으며 세계 각국에 수출도 하게 됐다. 지금은 김만식 전 명예회장의 장남 김현승 대표가 경영을 맡고 차남 김현진 부사장이 제품 연구개발과 대외협력업무를 담당한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사진=뉴시스 박세연 기자
◆한국 첫 상설시장 ‘광장’


4위인 광장은 1911년 2월11일 설립돼 전통 거래시장인 광장시장의 점포를 임대하고 관리하는 업체다. 광장시장은 구한말 일본이 남대문시장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던 190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생겨났다. 시장개설허가를 받을 때는 명칭이 동대문시장이었는데 청계천에 있던 광교(너른 다리)와 장교(긴 다리) 두 다리 사이에 위치해 있어 '너르고 긴'이라는 뜻의 광장(廣藏)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은 아케이드 등 현대화된 시설을 갖춘 서울 최대 재래시장이다.

광장은 비주거용 건물임대업 업종에 속하며 사원수 60명에 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무제표상 자본총계는 지난해 말 기준 174억4127만원이다. 더욱이 토지의 장부금액이 2억445만원인 반면 공시지가가 1945억2852만원에 달해 실질 자본총계는 2000억원이 넘는다. 부지가 넓고 1·2·3·4·5호선 지하철역 어디에서나 걸어올 수 있어 부동산 가치가 상당히 높다. 부채는 임대보증금이 대부분이고 차입금이 없는 초우량업체다. 현재 지분은 송호식(50.01%), 송명식(35.17%) 및 기타특수관계자(13.74%)로 구성됐다. 광장시장은 세계 관광코스로 지정돼 외국관광객도 많이 온다.

◆민족문화 전파한 ‘보진재’

5위인 보진재는 1912년 8월15일에 설립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업체다. 대한제국 정부의 교과서 편찬 작업을 하던 자운 김진환 선생이 인쇄소 석판부에서 석판미술 인쇄술을 익힌 후 종로1가에 ‘보진재 석판인쇄소’ 문을 열었다. 나무판이나 금속판으로는 단색의 인쇄물만 찍을 수 있었던 반면 석판으로는 컬러 인쇄를 할 수 있었다. 중국 북송 4대 서예가로 꼽히는 미불(米芾)의 서화를 좋아해 그의 서재 이름을 인쇄소 명칭으로 정했다.

일제강점기에 민간 인쇄업계 최초로 오프셋 인쇄기를 도입해 수많은 책과 잡지를 인쇄함으로써 민족문화를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친일적인 내용이나 조선 민중의 정신을 해치는 원고를 인쇄해달라는 주문은 받지 않았다.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도입된 크리스마스실을 1933년부터 찍어냈다. 1930년대 후기에 인쇄한 8도쇄의 ‘세계대지도’는 당시 일본의 인쇄기술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0~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와 1970년대 대입 예비고사 문제지도 인쇄했다. 1960년대부터는 출판사업도 시작했다. 보진재에서 독보적인 기술로 매우 얇은 종이에 인쇄한 성경은 세계 각지에 팔려나갔다.

100여년간 수많은 인쇄업체가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보진재는 이름도 바꾸지 않고 꿋꿋이 걸어왔다. 1992년부터 창업주의 증손자인 김정선 대표가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 입주 1호 기업이기도 하다.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사진=뉴시스 DB
◆6~7위 ‘조선호텔·성창기업’


6위인 조선호텔은 1914년 10월10일에 조선철도국이 세운 최초 근대식 호텔이다. 1915년에 후버 미국 대통령, 1920년에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가 투숙했다. 1981년에 미국 웨스틴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웨스틴조선으로 호텔 이름을 변경했으며 1995년에 신세계그룹이 웨스틴조선 지분을 100% 인수했다.

7위인 성창기업지주는 1916년 11월20일에 창업주 만오 정태성 회장이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정미소와 목재판매소를 하는 성창상점으로 출발했다. 한국 목재업의 효시 기업으로 1958년 국내 최초로 합판을 미국에 수출했다. 1962년에는 국내 최초로 포르말린 공장을 지었다. 1988년에는 국내 최초로 온돌마루판을 개발해 장판문화에 변혁을 일으켰다. 1993년에 파티클보드 공장을 신설했고 2012년에 재활용목재업을 위해 지씨테크를 설립했다.

소년시절 꿈이 육림사업이었던 정태성 회장은 50여년간 집념과 각고의 노력으로 수천 정보의 산림지를 확보했다. 성창기업은 1975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1980년대에 1조2998만㎡의 부동산을 보유한 부동산 부자 1위 기업으로 부각된 적도 있다. 외환위기 때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됐다가 조기 졸업하고 2009년에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했다. 창업주의 4남인 정해린 회장 지분율은 4.97%에 불과하며 오너 일가 여러명이 골고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2호(2018년 12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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