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태초의 햇살'이 불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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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행열차, 밤새 태백을 넘다
6시간 기찻길 따라 기해년 맞이한 정동진 해돋이


정동진해변에서 바라본 기해년 첫 해돋이. /사진=박정웅 기자
2018년 12월31일 밤 11시20분. 서울 청량리역에서 1641호 무궁화호가 플랫폼을 벗어났다. 무술년 마지막 강릉행 열차다. 열차는 지나온 한해의 아쉬움과 다가올 새해의 기대를 품었다. 막차는 저마다의 사연을 빼곡히 실었다. 청량리역에 무술년 꼬리를 잘라 실은 완행열차는 느릿느릿 동쪽을 향해 북쪽으로 출발했다. 양평을 지나 다시 남쪽 원주, 제천으로. 거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갈 수 있는 태백산맥은 한참이나 멀었다. 경기도를 채 벗어나지 못한 어디쯤에서 2019년을 맞았다.

완행열차의 느리지만 힘센 걸음은 계속됐다. 제대로 된 '새해'를 맞이하려는 듯 평소 숨 가쁘게 오른 태백산맥을 가뿐히 넘어섰다. 2019년 1월1일 오전 4시45분 정동진역. 기해년 첫 해돋이열차가 한숨을 돌렸다. 행운과 복이 충만할 거라는 황금돼지해, 첫 여행지는 강원 강릉의 정동진(正東津)이다.

입석까지 동난 완행열차는 객차와 객차 사이까지 북새통이다. 해맞이 여행객의 면모도 다양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부터 친구나 연인 사이로 보이는 젊은이, 그리고 어르신까지 앞다퉈 정담을 나눴다. 목소리가 높았던 탓에 철도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빚었다.

떠오르는 기해년 첫 해. /사진=박정웅 기자
조그마한 정동진 역사는 어둠이 가시기 전부터 초만원이다. 해맞이 인파가 역사 안팎을 가리지 않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었다. 새해 새날이 밝기 전, 정동진역은 새해에 대한 부푼 기대를 하늘 높이 쏘아올렸다.

건강, 입시, 취직, 결혼…. 기해년 '만사형통'에 거는 기대감은 정동진해변으로 향하는 비좁은 토끼굴을 뚫고 나서 더욱 커졌다. 붉은 띠가 동해 수평선 언저리에서 1시간가량 깔렸다. 붉은 빛이 점차 밝은 색을 띠더니 오전 6시40분, 마침내 기해년 첫 해가 떠올랐다. 신봉승 시인의 표현처럼 '큰 발원에서 작은 소망에 이르는, 우리들 모든 번뇌를 씻어내는, 저 불타는 태초의 햇살'이 피어올랐다.

◆모래시계가 키운 '정동진'

기해년 첫 햇살이 파고든 정동진역 플랫폼. /사진=박정웅 기자
정동진은 강릉시 강동면의 작은 어촌이다. 바깥세상을 넘나드는 유일한 통로인 정동진역은 한때 폐역 위기를 맞았다. 198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인구는 5000명에서 2000명대로 급감했다. 그러던 곳이 해돋이와 여행명소로 기사회생했다.

작은 바닷가 마을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아름다운 자연경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걱서걱 발이 빠지는 모래나 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동해 풍광은 7번국도 어느 마을에나 널렸기 때문이다. 또 서울 광화문의 정동쪽에 있다는 지명의 유래도 당시는 주목받을 만한 얘깃거리가 못됐다.

이런 정동진이 여행명소가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인기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즈넉한 어촌의 간이역 플랫폼. 키 작은 소나무 뒤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드라마의 주인공(고현정)은 하염없이 기차를 기다린다. 쫓기는 사연과 안타까운 시간들…. 여주인공의 사연을 더 기막히게 만드는, '속수무책'일 정도로 아름다운 정동진역 한컷에 전국의 시선이 꽂힌 것. 바로 그곳이 정동진역 3번 플랫폼이다.

정동진역 플랫폼과 모래시계소나무. /사진=박정웅 기자
플랫폼의 작은 소나무는 20여년의 세월을 더해 키를 키웠다. 그 사이 고현정소나무는 모래시계소나무로 이름을 고쳐지었다. 동해 푸른 파도는 변함이 없다. 플랫폼 바로 아래는 정동진해변이다. 정동진해변은 한겨울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본래는 보기에도 시원한 동해의 푸른 물결과 포말이 부서지는 천혜의 해수욕장(고성목해수욕장)이다.

1997년 해돋이열차까지 가세하면서 정동진의 유명세에 불이 붙었다. 관련된 시도 잇따라 나왔다. 정호승의 <정동진>, 그리고 김영남의 <정동진역>이 대표적이다. 정동진을 마주하는 사연이 서로 다르듯 이들 시 세계 또한 그렇다. 정동진행 완행열차에서 한편씩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정동진해변 남쪽으로는 '한국관광 100선'에 오른 모래시계공원이 있다. 이어 고즈넉한 정동항(정동포구), 조각공원과 해돋이공원, 그리고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압권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펼쳐진다.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모래시계공원과 밀레니엄 모래시계. /사진=박정웅 기자
<모래시계>가 정동진해변 풍광을 바꿔놨다. 민물(정동진천)과 바닷물(정동진해변)이 만나는 곳에 조성된 모래시계공원이 그곳이다. 드라마 후광을 넘어 정동진은 실제로 하지에 한반도 정동쪽으로 해가 뜨는 지역이다. 그런 만큼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은 공원 구성에 시간과 시계에 역점을 뒀다. 공원 조성 또한 새천년(밀레니엄) 기념 차원에서 1999년 이뤄졌다.

모래시계공원은 2015년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대형 모래시계와 해시계, 시간박물관, 레일바이크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갖춘 덕분이다. 또 소나무 그늘과 벤치에서 정동진해변과 동해풍광을 즐기는 휴식공간으로도 손색없다. 그 때문에 가족단위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의 해시계와 시간박물관(열차). /사진=박정웅 기자
이곳 밀레니엄 모래시계는 세계 최대규모(지름 8.06m·폭 3.20m·무게 40톤, 모래 무게 8톤)를 자랑한다. 밀레니엄 모래시계는 그 모양이 특이하다. 보통의 모래시계가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 모양인데 반해 이곳은 원형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모래시계를 중심으로 매년 '정동진 해맞이축제'가 열리며 이때 모래시계 회전식도 거행된다.

열차 8량으로 이뤄진 정동진 시간박물관은 시간과 시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테마박물관이다. 특히 이색적인 시계가 눈에 띈다. 타이타닉호 침몰 직후에 멈춘 회중시계, 체인과 기어 뭉치로 만든 자전거시계, 세계 시계명장 콘테스트 최우수작인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락(고든 브라듯 작품)이 대표적이다.

또 시간과 관련한 다양한 공간이 시간박물관에 마련됐다. 시간의 탄생과 노력을 주제로 한 '시간이야기', 아인슈타인의 시간을 주제로 한 '시간과 과학', 시간의 아름다움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상징하는 '시간과 예술', 현대작품들이 전시된 '시간과 열정'과 '함께한 시간, 함께 할 시간'이 열차 8량을 따라 이어진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사진=강릉관광개발공사
우리나라에서 으뜸으로 치는 해안탐방로를 걸어보자. 모래시계공원 남쪽 썬크루즈 너머 해안에서 심곡항까지 이어진 정동심곡 바다부채길(2.86㎞)이 그곳이다. 탐방로 명칭이 멋스럽다. 정동심곡은 서울 정동쪽 깊은 골짜기(심곡)를 뜻한다. 또 바다부채길은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같다고 해 붙인 이름이다.

탐방로의 비경은 명칭을 뛰어넘는다. 2300만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천연기념물 제437호)를 끼고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의 푸른 물결과 해안단구의 기암괴석이 빚어낸 경관에 탄성이 이어진다. 숨은 비경은 군 정찰로로만 쓰이다가 2016년 해파랑길(동해안 걷기여행길) 개통으로 빛을 봤다.

다만 해안 경비와 탐방객 안전, 천연기념물 보호 차원에서 출입시간 제한과 입장료가 있다. 너울성 파도 등 기상악화 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 하절기(4~9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동절기(10~3월, 1월1일 제외)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걸을 수 있다. 입장료는 성인기준 3000원이며 단체(30인 이상)는 인당 2500원이다.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매표소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모래시계공원 남쪽 동해해양경찰서 정동출장소 맞은편 주차장에서 썬크루즈(정동매표소)-심곡항(심곡매표소)을 운행하는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 버스는 탐방로 개방시에만 운행하니 자세한 내용은 강릉버스정보시스템 홈페이지를 참조하자.

☞ 본 기사는 <머니S> 제574호(2018년 1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동진(강릉)=박정웅 parkjo@mt.co.kr

여행, 레저스포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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