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세살 때 비만, 여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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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한 버스정류장에 버스 안 음식물 반입금지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진=뉴스1 DB


지난달 25일부터 버스, 택시, 지하철, 기차 등 모든 교통네트워크에 설탕이 들어간 음료와 비알코올성 음료, 초콜릿바, 치즈버거, 짠 견과류를 비롯해 설탕, 지방, 소금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 대한 광고가 금지됐다. 서울의 얘기가 아니라 런던의 얘기다. 대중교통수단의 내부와 외부뿐만 아니라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기차역의 플랫폼에도 고열량·고염분·고당 식품, 무알코올 음료 등의 정크푸드 광고가 퇴출됐다. 아동 비만문제를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런던교통공사가 소유・관리하는 모든 시설에 취한 일련의 조치다. 정크푸드 소비를 자극・유발할 수 있는 간접광고도 안 된다.

공공협의 과정으로 사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런던 시민의 82%가 이런 조치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10~11세 어린이의 약 40%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상태로 가장 빈곤한 지역의 비만율은 가장 부유한 지역의 2배가 넘는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아동 비만은 어린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으며 어려움을 겪는 보건서비스에도 큰 압박을 주고 있다. 이런 시한폭탄에 대한 강력한 조치는 절대적인 책무”라고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동비만 문제를 런던 시민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어린이 식습관과 급식 관련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시민단체와 유명인들이 나서서 아동비만 퇴치 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시정부는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푸드 파운데이션’은 건강한 식습관과 채식 장려 운동인 ‘Veg Pover’ 캠페인을 벌이고 유명 셰프들은 미디어 현장에서 학교급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저소득 가정을 중심으로 비만 예방 전략을 도입한 2012년 이후 어린이 비만이 12% 줄었으며 지난해부터 자체적인 광고금지도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TV 광고를 금지하는 등 EU와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크푸드 광고를 규제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에는 정크푸드 자판기를 설치하지 못하고 학교식당에 인스턴트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도 추진된다.

◆비만 예방하는 사회적 조치

국제적으로 정크푸드가 아동에게 미치는 폐해를 줄이고 비만을 예방하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이 마련돼 올 2월16일부터 시행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한 기준보다 열량이 높고 영양가가 낮은 식품, 고카페인 함유 식품, 비만이나 영양불균형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어린이 기호식품에 대한 각종 규제가 포함된다.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식품판매 환경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학교와 해당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m 구역을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구역에서는 조리·판매업소들이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을 조리, 진열·판매하도록 관리가 이뤄진다. 어린이의 건전한 정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기호식품은 판매나 판매 목적의 제조·가공·수입·조리·저장·운반 및 진열을 금지할 수 있다. 어린이 기호식품에 총지방, 포화지방, 당, 나트륨 등 영양성분 함량에 따라 높음, 보통, 낮음의 등급을 정해 어린이들이 알아보기 쉽게 녹색, 황색, 적색 등의 색상과 원형 등의 모양으로 등급을 표시하며 각 영양성분이 하루 권장 섭취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명기하도록 했다.

또한 어린이 기호식품 중 고열량·저영양 식품 및 고카페인 함유 식품을 취급하는 자는 어린이 구매를 부추길 수 있는 물건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광고를 못하게 명시했다. TV 방송을 이용해 고열량·저영양 식품과 고카페인 함유 식품을 광고하는 경우에는 광고시간 일부를 제한하거나 광고를 금지할 수 있게 했다.

2016년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의 25.8%가 TV광고에서 기호식품 정보를 얻고 62.5%는 TV 등에서 보는 식품을 실제로 사 먹는다. 이로써 TV광고가 어린이들 식습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만 유발 식품의 TV 광고 규제는 2010년에 3년 시한으로 도입돼 두차례 연장됐는데 이제는 기간 제한 없이 규제가 가능해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부모부터 올바른 식습관 가져야

그러나 단지 법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미래에 나라의 기둥이 될 어린이들이 건강한 성인이 되려면 어려서부터 안전하고 영양을 고루 갖춘 식품을 섭취하는 올바른 식생활 습관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함을 모든 국민이 인식해야 한다. 사회적인 규제와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영역인 가정 안에서는 오직 부모의 생각에 따라 아이의 식습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어릴 때 몸에 밴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비만을 야기하는 습관이 어릴 때 형성되면 어른이 돼서도 지속돼 비만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어릴 때 부모와 생활습관 전반을 공유하는 자녀는 아무래도 부모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기 쉽다. 비만의 대물림은 계층 간 비만율 양극화를 강화한다. 가정에서 가공식품을 삼가고 통곡을 많이 섞은 잡곡밥과 신선한 과일, 야채를 먹는 것만으로도 비만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부모 모두가 비만인 자녀의 비만율이 부모 모두 비만이 아닌 자녀의 비만율의 4.55배에 달한다는 건보공단 자료를 보면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저소득층의 비만율이 높고 고소득층의 비만율이 낮은 통계는 자식이 비만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게 자식이 어떤 계층에서 살아갈 확률을 높여주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비만이 되면 의료비가 많이 들고 활동성이 떨어지며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에도 지장을 받아서 저소득층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한국 청소년(6~18세) 비만율은 2016년 13.3%로 2001년 9.1%보다 1.5배 늘어났다.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처럼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 소비도 증가 추세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고등학교 남학생의 18.9%, 여학생의 15.9%가 일주일에 패스트푸드를 3회 이상 먹는다고 답했다. 2009년에 비해 1.3배 증가한 것이다. 탄산음료를 매주 3회 이상 마신다는 비율은 남학생 32.5%, 여학생 19.9%로 나타나서 역시 증가세다.

◆나쁜 식습관, 과잉행동장애 부른다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발병과 악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식욕’(Appetite)에 패스트푸드, 청량음료, 라면 등을 자주 먹는 아이일수록 ADHD 위험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경우 1주일에 5∼6회 먹는 아이들이 전혀 먹지 않는 아이들보다 ADHD 위험도가 1.57배 높았으며 청량음료와 라면은 ADHD 위험도를 1.36배, 2.25배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건강식품인 채소, 과일, 우유는 자주 먹을수록 ADHD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청량음료를 하루에 4잔 이상 마시는 남자아이의 과잉행동과 행동장애 위험이 주당 1∼6잔 마시는 경우보다 각각 4.15배, 5.11배 더 높다는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국제학술지 ‘당뇨병·비만·대사’에 논문이 실린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췌장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췌장 건강을 위해서는 에너지 이용률이 떨어지는 정크푸드·탄산음료, 불필요한 디저트 등을 피하는 게 좋다. 어려서부터 고지방·고칼로리 음식 섭취를 줄이고 운동을 통해 베타세포가 들어갈 자리에 지방이 아닌 실질 베타세포로 채워지도록 키워 놓아야지 당뇨병에 안걸린다고 한다.

지난해 말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실린 독일 라이프치히대학병원 연구결과를 보면 15∼18세 비만 청소년의 2∼6세 시기 체질량지수(BMI) 증가율이 같은 시기 정상 청소년의 BMI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 즉 2∼6세 시기에 BMI가 급격하게 증가하면 청소년과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만 청소년의 53%는 이미 5세부터 과체중이거나 비만이었고 3세 때 비만이었던 어린이의 90%가 청소년 시기에도 과체중 또는 비만이었다. 따라서 아이의 비만관리는 가급적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3호(2019년 3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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