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의 그래픽 저널] ‘유혹’에 흔들리는 장기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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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일러스트레이트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다. 노래 구절구절마다 율리시즈는 심장이 요동치고 팔 다리 근육 하나하나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듯 꿈틀거린다. 생각은 사라지고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절망적인 충동만이 살아난다. 율리시즈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어둠 너머를 응시한다. 그곳에 여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바로 세이렌이다.

이 마녀는 암초에 앉아 노래 소리로 지나가는 뱃사람을 현혹하고 다가오는 배들을 좌초시킨다. 노래 소리에 홀리지 않기 위해 율리시즈는 선원들의 귀를 밀납을 녹여 막고 스스로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 배의 돛 기둥에 몸을 묶었다. 노래를 듣더라도 홀려서 끌려가지 않도록 말이다.

◆장기투자와 사이렌의 유혹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너무나 유명한 장면이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율리시즈가 귀향하는 여정 중 바다의 마녀 세이렌을 만나 이겨내는 장면이다.

이전 칼럼에서 ‘기대수명 투자’를 막는 두가지 요인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회에는 첫째 요인으로 금융 상품의 ‘재투자 위험’을 설명했고 대안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번 칼럼에서 얘기하려는 두번째 요인은 심리적 것으로 바로 세이렌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필자의 고객상담 경험에 따르면 장기 투자(또는 저축)의 성공 사례는 투자자 본인이 모르고 묻어 두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또는 가질 수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수많은 실패담을 들으면서도 개인적인 사정이나 이유 때문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수명 투자’를 연구하면서 의문이 심각하게 찾아왔다. 금융상품이나 시스템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허점이 많았고 이를 메우기 위한 해답은 결국 행동경제학에서 찾았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빈틈없는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다. 이와 대비되는 합리적이지 않은 습관과 행동양식 등 ‘편향을 가진 인간’을 대상으로 경제 현상을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에 의하면 인간의 불완전한 속성 때문에 장기투자가 어렵다. 현실에는 장기 투자가 어려운 수많은 유혹이 존재하고 인간의 편향적 본능 때문에 마녀 세이렌의 노래만큼이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현실vs미래’… 합리적 선택 괴리


1776년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저술한 이후 강조된 ‘합리적 인간’ 입장에서 인간은 이런 유혹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개인의 우매함 때문이라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장기 투자의 장애자인 인간의 특성은 금융 현장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당신이 아주 달콤하고 풍미가 좋아 너무 좋아하는 명품 초콜릿을 선물 받는다고 하자. 지금 5박스를 받을 것인가 1주일 후 10박스를 받을 것인가. 이 실험에서 대부분은 현재의 5박스 선물을 선택한다고 한다. 1주일 후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러나 1년 후의 5박스와 1년 1주일 후의 10박스를 선택할 때는 10박스를 선택한다고 한다. 현재의 선택에는 감정과 소비에 대한 유혹이 개입하고 미래의 선택에는 감정이 배제되고 합리적인 상태에서 선택한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두가지 선택의 결과가 같아야 하지만 현실의 선택에서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다른 것처럼 행동한다. 현재에서는 눈앞에 닥친 소비의 유혹이 끊임없이 이성을 두드리고 장기적인 저축을 방해한다. 또 미래의 나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노후준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겨울 스키장, 여름 바닷가, 오감을 자극하는 게임이나 고가의 최고급 TV의 유혹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장 속의 돈이 특별한 목적이나 제한 없이 인출 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아는 인간이라면 현실의 유혹을 참기 힘들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금융시스템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2014년 성인인구의 3분의1이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시작도 못하고 특히 은퇴설계를 하는 재무설계사의 46%가 본인의 은퇴설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장기 저축이 어렵고 실패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사진제공=일러스트레이트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ETF 자동이체 계좌 활용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라고 손 놓고 있기에는 초장기 기대수명 시대에 닥친 현실이 너무 위험하다. 장기 투자가 가능하도록 인간의 본성에 도전하는 플랜이 필요하다. 이것이 도입부에 세이렌의 유혹과 율리시즈를 소개한 이유다. 장기 투자나 저축을 하도록 자기 스스로를 결박하는 방법을 ‘율리시즈 약정’이라고 행동경제학에서 소개한다.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물리적·심리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리적 장치로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국민연금이나 한번 선택 후 자동 불입되는 퇴직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은퇴 설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담뱃갑 광고의 흡연 피해 사진이나 마약·도박 금지 캠페인 광고처럼 폐해에 대한 경각을 불러일으키는 홍보처럼 은퇴 설계 실패 시 맞이할 비참한 노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회 소개한 ETF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매월 일정 금액을 ETF 매입이 가능한 계좌에 자동 이체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ETF를 개인형퇴직연금(IRP)이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통해 물리적인 제약으로 만기 제한을 만들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율리시즈 약정이다. 매년 단위로 적립된 금액에 자녀나 배우자의 몫으로 미리 꼬리표를 달거나 장기 투자사실을 가족에게 공지하고 30년이나 50년 후의 주택 가격, 재산금액을 구체화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행동경제학에서는 추천한다.

돈과 금융에 대한 인간의 속성을 더 알고 싶은 독자는 행동경제학자 댄 에리얼리, 제프 크라이슬러가 공저한 <부의 감각(Dollars and Sense)>을 추천한다. 수많은 경제·금융 서적을 봤지만 인상적인 수작이다. 이번 칼럼의 많은 부분은 여기서 큰 영감을 얻고 인용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7호(2019년 4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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