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39] 거상의 ‘복’과 장관 후보자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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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힘을 합해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고칩시다.”

1811년 12월, 평안도에서 봉기한 홍경래(1771~1812)는 파죽지세로 세력을 넓혀나갈 때 당시 거상으로 유명한 임상옥(1779~1855)을 밤에 찾아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던 임상옥은 명확하게 대답하는 대신 다음날 와서 방에 있는 솥을 가져가라고 했다. 홍경래가 솥을 가져가려고 하니 다리 3개 가운데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임상옥은 고민 고민 끝에 재물과 명예를 갖고 있는 자신이 권력까지 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뜻을 나타냈고 홍경래는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임상옥의 파란만장했던 ‘상인의 삶’을 그린 소설 <상도>에서 최인호는 ‘목숨을 놓고 벌인 담판’을 이렇게 멋지게 매듭지었다.

◆'무망지재' 맞은 후보자들

의주에서 대대로 장사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임상옥은 평범하지 않은 재주와 하늘이 내려준 기회,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재물은 흐르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재상여평수)와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상즉인)라는 철학을 실천하며 말년에 그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고루 나눠줬다.

그는 스승인 석중 스님의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라는 죽음에 대한 교훈에 따라 연경에서 청나라 상인과 ‘인삼담판’에서 승리해 큰돈을 벌었다. 또 석중스님이 남겨준 계영배(戒盈杯)의 교훈을 잊지 않고 번 재물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계영배는 술을 7부 정도까지 따르면 차 있지만 가득 채우면 오히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지는 술잔이다.

임상옥은 ‘재상여평수’, ‘인중직사형’, ‘상즉인’, ‘계영배’ 등의 가르침에 따라 뜻하지 않은 행운인 ‘무망지복’을 누렸다. <주역>의 육이효는 이에 대해 “논을 갈지 않아도 수확하고 묵정밭을 가꾸지 않아도 좋은 밭이 된다”(불경확 불치여)고 했다. 공자는 ‘불경확’을 “나 혼자 부자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한 것”(미부)이라고 해석했다.

지난달 잇따라 터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흑석동 상가 투기 의혹’과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다주택 보유’,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부적절한 해외학회 참석 및 아들 유학지원’ 등은 무망지복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재앙(무망지재)을 떠올리게 한다.

천지자연의 자연스런 이치에 따라 “때에 맞춰 부지런히 힘써 만물을 길러야 하는데”(무대시육만물·무망괘 대상전), “소를 매어놓았는데 행인이 끌고 감으로써 읍인들이 재난을 입게 됐다”(혹계지우 행인지득 읍인지재·무망괘 육삼효)라는 것이다.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후보자 조동호) 인사청문회에서 조동호 후보자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영태 기자

◆'요행 바라는 소인' 되지 말아야

김의겸 대변인과 최정호 조동호 장관후보자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신들이 저지른 우행 때문에 발목이 잡혔고 작은 것(돈)을 욕심내다 큰 것(명예)을 잃는 소탐대실을 저지른 것이다.

이는 “위험한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라는”(행험이요행) 소인이 되지 말라는 <중용>의 가르침을 거스른 것이다. 참된 지도자는 '쉬움에 거쳐 하며 명을 기다리는(거이이사명)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쉽다는 것은 “하늘의 길은 알기 쉽고 땅의 이치는 간명하면서도 능함이 있으니 쉬우면 쉽게 알고 간명하면 쉽게 쫓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해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는 토머스 제퍼슨(1743~182)은 ‘거이이사명’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버지니아주 몬티첼로에서 태어난 제퍼슨은 농장주였던 아버지로부터 5000여 에이커(약600만평)의 땅을, 명문 랜돌프 가문 출신인 어머니로부터는 높은 사회적 계급(귀족)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제퍼슨은 공맹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인권과 자유 및 민주공화정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됐고 귀족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어 대통령(3~4대)이 돼 소수의견을 존중했고 종교·언론·출판의 자유 등의 확립에 노력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버지니아대학교를 설립해 민주 교육에 힘썼다. 철학, 자연과학, 농학, 건축학, 언어학 등에 크게 이바지함으로써 ‘몬티첼로의 성인’이라 불렸다.

◆그릇된 부귀는 '뜬구름'

공자는 “부귀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이나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않는다”며 “부유함을 구할 만하다면 비록 채찍을 잡는 선비라도 하겠지만 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고 했다. “의롭지 않으면서 얻은 부와 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발 더 나아가 “나라에 도가 있으면 봉록만을 받으며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봉록을 받는 것은 부끄러움”이라고 지적했다. “덕을 검소히 해 어려움을 피하고 녹을 받는 것으로 영화를 누리지 말라”는 것이다.

무너진 도덕을 바로세워야 대한민국이 산다. 안중근, 유관순, 김좌진, 윤봉길, 홍범도, 김구 등 맑은 하늘, 별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킨 것은 올바른 도덕이 펼쳐져 모두 잘사는 문화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덕이 무너지면 나라는 안으로부터 쓰러진다. 도덕이 무너지고 나라가 쓰러지고 있는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짜 주인이라면 위기가 닥쳤는데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을 하지 않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7호(2019년 4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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