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협곡 물길, 오행(五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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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협곡이 빚어낸 '선계'
폭포와 원시림, 그리고 아름다운 술이 흐르는 강


불광암 주상대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중국 쓰촨(四川)에서 발원한 츠수이허(赤水河). 남서부 내륙의 협곡을 따라 500여㎞를 감아 돈 물줄기는 양쯔강(長江)과 만난다. 구이저우성(貴州省)의 젖줄인 츠수이허는 강굽이마다 많은 얘기를 품었다.

말이야 심산유곡이며 유유자적일 뿐. 인간은 척박한 환경을 이고 살았다. 먹을 것이라곤 하늘이 내린 게 전부였다. 좀더 나은 걸 찾을 땐 대가를 치렀다. 거센 물살에서 맨몸으로 배를 끌어올리는 첸푸(船夫)의 모진 삶만 봐도 그렇다.

오지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환경. 협곡 속으로 쫓기던 홍군은 츠수이허를 네번 건너면서 대장정을 열었다(四渡赤水). 윈구이고원(雲貴高原)의 수수는 이 물줄기와 만나 바이주(白酒)의 전통을 잇는다. 또 인간의 역동적인 삶은 ‘쇠꽃’의 향연인 다톄화(打鐵花)로 원시의 밤을 밝힌다.

◆물과 나무와 흙의 세계

적수대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츠수이허는 원시의 물과 나무와 불과 흙과 쇠를 만나는 여행이다. 쓰촨과 성(省)의 경계 도시인 츠수이시(赤水市)에서 마오타이진(茅台鎭)까지 거센 물길의 연속이다. 원시림이 빼곡한 협곡 곳곳에는 장쾌한 폭포가 쏟아진다. 붉은 단샤(丹霞)와 회색빛 카르스트 직벽은 선계로 이끈다.

츠수이는 폭포의 세계다. 도심에서 가까운 주하이(竹海)국립공원만 가도 된다. 대나무 바다인 이곳은 국가지정 풍경구(명승지)인 사동구(四洞沟)다. 이름처럼 수렴동(水簾洞), 월량담(月亮潭), 비와암(飛蛙巖), 백룡담(白龍潭) 4개의 주요폭포가 대숲길에 숨어 있다. 협곡 물과 대숲이 선사하는 음이온과 산소가 몸과 마음의 먼지를 씻게 한다.

사동구 대숲길. /사진=박정웅 기자
대륙인 만큼 큰 폭포를 보고 싶다면 발걸음을 조금 떼면 된다. 적수대폭포(赤水大瀑布)와 불광암(佛光岩) 주상대폭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 적수대폭포는 이름처럼 규모가 장대해 십장동(十丈洞)이라고도 부른다. 높이 76m, 폭 81m로 양쯔강 유역에선 황과수폭포 다음으로 크다. 황과수폭포는 폭포 수위를 인공적으로 조절하는 데 반해 이 폭포는 온전한 자연의 것이다.

불광암 주상대폭포는 이름처럼 부처의 세계다. 붉은 단샤가 거대한 병풍처럼 260여m 높이의 대폭포를 에워싼다. 골이 깊은 관계로 비가 오거나 구름이 껴도 괜찮다. 아름답고 웅장한 단샤와 가느다란 폭포수의 조화는 가히 몽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화대가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잔도에서의 풍광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불광암 주상대폭포. /사진=박정웅 기자

◆불과 쇠의 세계

토성고진의 다테화. /사진=박정웅 기자
츠수이허 강변의 옛 마을에서 ‘쇠꽃’이 핀다. 투청(土城古鎭)의 다톄화가 그것이다. 다테화는 1600~1700도에 이르는 쇳물을 다루는 전통 기예다. 척박한 환경을 열정적으로 이겨낸 삶을 나타내듯 쇠꽃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원시의 불꽃놀이는 들끓는 쇳물을 하늘로 힘껏 쳐올려 그려낸다.

다테화는 본래 철을 잘 다룬 지역인 허난성이 본고장이다. 2008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나 위험한 까닭에 전수를 꺼린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그 명맥이 이어지나 특정일(춘절·대보름)에만 반짝 선보인다. 하지만 토성고진의 쇠꽃은 주말마다 핀다. 마을주민들이 방염복도 걸치지 않은 채 뚝딱 해치운다.

토성고진은 인근의 병안고진과 더불어 대장정과 인연이 깊다. ‘사도적수’(적수를 네번 건넌 전술)의 서막을 연 곳이다. 대장정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이곳 사람들의 자존심이 됐다. 마을 곳곳에 새겨진 ‘사도적수’ 네 글자가 또렷하다. 협곡의 오지는 최근 여행지로서 구색을 갖추고 있다. 2100년 전통의 옛 마을의 역사와 대장정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한편 다톄화를 앞세운다.

◆하늘이 내린 바이주

귀선동의 술독들. /사진=박정웅 기자
츠수이허는 중국 명주의 본향이다. 마오타이주(茅台酒)를 비롯해 시주, 랑주, 동주, 루저우라오자오 등 이른바 중국의 10대 바이주와 인연 깊은 물줄기다. 츠수이허와 협곡의 맑은 공기와 적당한 습도, 윈구이고원의 붉은 수수, 전통 제조법이 명주 탄생의 비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츠수이허를 ‘빼어난 술이 흐른다’면서 ‘미주하’(美酒河)로도 부른다. 한자 본래의 뜻을 떠나 츠수이허에서 빚은 술이 얼마나 맛있길래 ‘아름답다’고 했을까. 마오타이진(茅台鎭)으로 향하는 츠수이허 협곡 상류. 츠수이허 바깥세상에서 가짜 마오타이가 판을 치다보니 자체만의 브랜드로 바이주를 생산하는 곳도 있다.

스수이현(習水縣) 런화이시(仁怀市)의 귀선동(龜仙洞)이 그런 데다. 귀선동은 카르스트 절벽에 똬리를 튼 천연동굴 술도가(酒倉)다. 이곳에서 빚어낸 바이주의 또다른 이름이 귀선동주(龜仙洞酒)다. 귀선동주는 바이주(白酒)계의 병마용(兵馬俑坑)을 자처한다. 대륙에서 감히 시황제의 병마용을 잇댄다 하니 일단 귀부터 솔깃할 수밖에.

미주하. 츠수이허의 또다른 이름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귀선동은 입구부터 명주의 위용을 뽐냈다. 세계 술 품평회를 주름잡은 상장부터가 눈에 띈다. 귀선동주는 201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증류주 대회에서 대금상을 차지했다. 증류주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류업계에서는 대단히 영예로운 상이다.

귀선동을 나와서도 콤콤한 장향은 오래갔다. 협곡의 바람을 한참을 맞고 나서야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귀선동주 맛은 오래 남았다. 마오타이 등 바이주 특유의 장향과는 거리가 있는 맛이다. 위스키로 치자면 원주 본연의 맛을 살린 싱글몰트랄까. 한마디로 깔끔했다. 53도의 센 술임에도 목 넘김은 매우 가볍다.

츠수이허는 충칭(重慶)행 직항편을 이용하면 된다. 하루에 두번 비행기가 뜨는데 3시간30분 걸린다. 다시 차량편으로 2시간30분이면 원시의 그곳에 닿는다. 일대일로의 핵심도시인 충칭에는 임시정부청사가 있다. 먹거리로는 첸푸의 모진 삶이 응축된 훠궈(샤브샤브)가 있다. 홍야동(紅崖洞)의 야경은 큰 볼거리다. <취재협조=뚱딴지여행>

☞ 본 기사는 <머니S> 제587호(2019년 4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츠수이(중국)=박정웅 parkjo@mt.co.kr

여행, 레저스포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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