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막 불섶’으로 뛰어드는 72년생 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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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등장한 ‘X세대’가 지금은 ‘낀 세대’ 김 부장으로 대한민국 중심에 서 있다. 유래 없는 ‘신인류’로 불렸지만 베이비붐·밀레니얼 세대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낀 세대’로 낙인찍힌 그들. 직장에선 ‘말 잘 듣는’ 부하직원이자 ‘꼰대 강박증’에 시달리며 집에 가도 아내와 아이들이 불편해 한다. 한해 1000명이 넘는 ‘김 부장’이 자살하고 젊은 날을 바친 직장을 떠난다. 누가 그들을 궁지로 내몰았을까. 무엇이 그들이 버티고 힘내게 하는 걸까. <머니S>가 ‘김 부장’의 하루를 통해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72년생 김부장] ②빨라지는 비자발적 ‘2막’


#. 서울 관악구 인헌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영수씨(52·가명)는 4년 전까지만 해도 중견기업의 마케팅부문 부서장이었다. 첫 직장을 잡은 후 20여년간 회사를 두번 옮기긴 했지만 맡은 업무는 비슷했다. 2015년 7월 회사를 아예 그만둔 건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동년배에 비해 술자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만성피로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2013년 부장을 단 이후 심해진 사내정치도 사퇴를 결심하게 된 주된 이유였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인 걸 알지만 이러다 죽겠다 싶어 어쩔 수 없었다"며 "큰딸이 당시 중3이었고 외벌이였기에 일을 반드시 해야 했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그해 11월 그는 1억4000만원을 빚내 편의점주가 됐다. 김씨는 "솔직히 (편의점 창업이) 제일 만만했다"고 말했다. 첫 두해까지는 알바생 1명을 두고 아내와 3교대 근무를 했다.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아지면서 2017년 말부터 아내가 주간(오전 8시~저녁 8시), 김씨가 야간(저녁 8시~익일 오전 8시)으로 2교대 근무를 한다. 김씨의 월 순수입은 평균 300만원이다. 알바를 뺀 이후로 그나마 늘었다. 적은 수준은 아니지만 많은 것도 아니다. 김씨는 최근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3막' 시점이 더 빨라질 거 같은데 2막에 뛰어들었을 때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싶어요. 문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김씨는 수많은 '72년생 김부장'의 가까운 미래다. 회사에서 중추 역할을 맡지만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이들. 언제든 '인생 2막'에 뛰어들 각오를 한 김부장들은 내 상사이자 동료이자 후배다.

문제는 김부장들 다수가 '비자발적'으로 '2막 시장'에 내몰린다는 점이다. 새 문화가 꿈틀대던 1990년대 20대를 보내며 '꿈'을 키운 이들에게 현재 꿈은 사치다. 현재 김부장들에게 2막은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라기보다 현실 도피처에 가깝다. 김부장들이 '괴로운 2막'에 나서며 가계는 물론 사회적 손실도 커진다는 우려도 많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잡히지 않는 '인생 2막'

과거 '인생 2막'은 60대, 적어도 50대 중후반에서야 하는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최근 인생 2막 시점이 50대 초반, 심지어 40대 중후반으로 앞당겨진 조짐이 보인다.

사실 인생 2막 시점이 정말로 빨라졌는지 보여주는 정량적 수치는 찾기 어렵다. 2막을 시작하는 연령을 파악하기 위해선 이직보단 기존에 몸담았던 업종을 아예 바꿔 새로운 일을 하는 '전직' 비율을 살펴야 하는데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취업 유경험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당시 평균연령은 2005년 50세에서 2016년 49.1세로 낮아졌다. 그러나 보통 같은 업종 내에서 직장을 옮기는 이직이 최근 활발한 추세여서 근속연수가 짧아졌다는 것만으로 2막 시점이 빨라졌다고 보긴 힘들다.

임용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원 자료를 분석해보면 실업 후 구직활동을 시작한지 한달 미만인 평균 연령은 2010년 53.9세에서 2018년 54.6세로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년퇴직 연령이 늘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끈 영향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72년생 김부장'을 포함한 중년층의 전직은 각종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회적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존 노동시장에서 나와 자영업으로 직종을 바꾸는 경우가 많더라도 다른 한편에서 자영업으로 망하는 경우가 있어 자영업자 취업자 수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편"이라며 "국내 노동시장이 중장년층에게 열린 구조가 아니어서 이들이 자영업으로 많이 빠진다. 그런데 그 연령대가 최근 낮아지는 추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꿈 없는 2막 인생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현 노동시장에서 2막 인생은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등 비자발적으로 2막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가계는 물론 국가에도 사회 경제적 손실을 안길 수 있어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례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농림업 종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대비 12만명 가까이 늘었다. 이 기간 대부분 업종의 종사자 수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증가폭이 상당하다"며 "경남지역 조선소에서 실직한 중년층이 귀농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비자발적 2막'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꿈을 찾아 2막에 뛰어드는 게 최상이지만 국내에서 2막은 '강요된 2막', '괴로운 2막'이다"고 진단했다.

비자발적 2막은 가정에 가장 먼저 영향을 끼친다. 비자발적이다 보니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친 경우가 드물고 2막 인생이 내리막길을 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녀가 중고등학생인 경우가 대다수인 '72년생 김부장'네 가정은 급격히 기울어 자칫 가난이 자녀세대로 되물림될 수도 있다.

김형석 시니어비즈니스학회장(호서대 교수)은 "인생의 한 '막'을 준비하는 데 보통 10년이 걸린다. 첫 직장을 잡고 1막에 들어서는 데까지도 초등학교 6년과 중·고등학교 4년 등 최소 10년 동안 공부해야 한다"며 "그런데 2막에 들어서기 전엔 그렇게 준비하지 못해 빨리 망할 가능성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72년생 김부장의 망하는 길로 가는 2막 준비는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국가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며 경제적 생산능력을 한창 피워야 할 김부장들이 '허브'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상철 교수는 "산업이 자동화되면 새로운 산업이 생겨 고용창출이 돼야 하는데 국내에선 새로운 산업분야가 죽어 대체할 만한 고용여력이 안생기는 것"이라며 "결국 실업자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시기가 빨라질수록 기본소득 등 국가의 재정적 부담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관련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7호(2019년 4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대웅 mdw1009@mt.co.kr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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