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40] 3대 성인의 '강원도 산불' 대책

 
 
기사공유

식목일을 코앞에 두고 지난 4일 저녁에 일어난 '강원도 산불'이 남긴 상처가 심각하다. 축구장 740여개에 이르는 임야 530㏊(약159만평)와 주택 487채가 불탔다. 화마로 1명이 목숨을 잃었고 722명이 집을 떠나 임시대피소에 머물러있다. 가축 4만1518마리도 불속에서 희생당했다.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기고 불길이 잡혔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하룻밤 사이에 삶의 터전이 날아간 이재민을 돕고 잿더미로 변한 산을 되살리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피해 입은 사람들은 살던 집이 모두 불탔는데 지원금이 고작 1400만원이라며 볼멘소리다. 고통의 현장에서 떨어져 있어 그 아픔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피해를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냐고 소곤거린다.

정부와 여당은 피해지원을 위한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재난을 위해 이미 편성해 놓은 예비비를 쓰면 된다고 맞선다. 피해현장의 아픔을 달래는 것에 앞서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더 큰 관심사처럼 보인다.


◆예수 '사랑', 부처 '자비', 공자 '공영'


예수는 구약성서에 없는 사랑을 가르쳤다. <모세 십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만 있을 뿐이다. 반면 예수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고 했다.

하지만 마태복음 10장에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니라”고 했다. 예수의 사랑은 사람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다. 자연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정복하고 파괴할 수 있는 대상이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의 불화를 경고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부처의 자비는 사람과 동물에 미치고 식물과 무생물은 제외된다. 원광법사는 신라 화랑에게 준 ‘세속오계’ 가운데 “죽이고 살리는 것에는 가림이 있다”고 가르쳤다. 스님은 육식을 하지 않고 불법에 귀의한 신도들도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 대신 육즙으로 고통을 표시하는 식물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없다.

공자의 인(어짊)은 사람과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무생물까지 고루 포함한다. 사람이 하늘과 땅이 사귀어 만들어 내는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야 함을 가르친다. 그래서 공자는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사람이 다쳤는지를 물은 뒤 말이 다치지 않았는지도 물었다.

예수·부처·공자, 3대 성인의 가르침을 ‘강원도 산불’ 사후 대책에 적용해 보면 어떻게 될까. 오해와 이론이 많겠지만 단순화해 보자면 예수는 이재민 지원 중심으로, 석가모니는 이재민과 동물 중심으로, 공자는 이재민·동물과 불에 탄 나무와 풀 등을 모두 포함해 지원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릴 것이다.

한편 ‘강원도 산불’이 남긴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치유하기 위해선 ‘재난이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즉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자는 ‘잘못을 고치기 위해 공박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자기의 악(잘못)을 공박하고 남의 악을 공박하지 않는 것이 사특함을 고치는 것이 아니겠느냐”(<논어> '안연')는 것이다.

공자의 이런 무제한적 관용은 ‘강원도 산불’ 사후대책은 물론 얽히고설킨 한국의 당면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지침을 준다. ‘네가 먼저 양보해야 내가 양보할 수 있다’는 조건적 관용보다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내가 먼저 물러서는 무제한적 관용이 당사자 간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소 17마리, 세 형제가 나누는 법


죽음을 앞둔 어느 노인이 세 아들에게 회초리로 쓸 나무를 2개씩 갖고 오라고 했다. 모두 모이자 아들들에게 갖고 온 회초리를 하나씩 꺾어보라고 했다. 모두 쉽게 꺾었다. 그러자 이제는 3개를 한꺼번에 꺾어보라고 하자 모두 꺾을 수 없었다. 그러자 노인은 다음과 같이 유언한 뒤 숨을 거뒀다.

“너희들이 한 사람씩 쪼개지면 쉽게 꺾인다. 하지만 함께 힘을 합하면 그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잘 이겨낼 것이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이 소 17마리인데, 큰 아들은 반을, 둘째는 3분의 1을, 막내는 9분의 1을 갖고 잘 키워 우애 좋게 살거라….”

세 아들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소를 나누려고 모였다. 아버지 유언대로 나누려고 해보니 큰아들은 8.5마리, 둘째는 5.67마리, 셋째는 1.89마리가 해당됐다. 돈이라면 이 배율대로 나눌 수 있지만 소를 이렇게 나누다간 몇 마리를 죽여야 할 것이다.

고민하던 세 아들은 고을의 현인에게 해결방안을 물었다. 사정을 들은 현인은 자기 집 소를 한 마리 끌고 왔다. 그러곤 큰 아들에게 9마리((17+1)÷2=9), 둘째에게는 6마리(18÷3), 셋째에게는 2마리(18÷9)를 나눠주었다. 세 아들 모두 소를 죽이지 않고도 수학적 분배보다 더 많은 소를 차지했다.

양만춘 장군은 안시성에서 중과부적이라는 통설을 깨고 당 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당군을 물리쳤다. 성주에서 광부 부인들까지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면 소수인 약자가 다수인 강자를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반면 명나라의 오삼계는 베이징을 무너뜨린 이자성이 자신의 애첩을 차지하자 이에 복수하기 위해 만리장성 산해관 문을 스스로 열어 청군을 맞이했다. 명은 청에 함락당한 게 아니라 안에서부터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쇠도 끊고 뜻이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보다 진하다고 했다. ‘강원도 산불’이란 재난을 계기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무제한적 관용을 발휘해 뒷걸음질치는 경제를 살리고 진퇴양난에 빠진 북핵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 아들을 살린 현인의 지혜는 관용에서 나온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8호(2019년 4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 0%
  • 0%
  • 코스피 : 2077.94하락 4.8918:03 10/17
  • 코스닥 : 649.29하락 2.6718:03 10/17
  • 원달러 : 1187.00하락 0.818:03 10/17
  • 두바이유 : 59.42상승 0.6818:03 10/17
  • 금 : 58.80하락 0.6218:03 10/17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