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굳세게 지켜온 '모두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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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의 보금자리, 영도
해변·해벽길 사연 절절… 거부할 수 없는 해녀의 상찬


자갈치시장에서 바라본 영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한국전쟁 시기,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노랫말처럼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가족에게 영도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는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 자리를 내린 사람들. 부산은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도시다. 부산에서도 피난민들의 보금자리인 영도(影島)를 찾았다.

맑은 아침햇살에 파도는 남항 부두를 가볍게 찰랑거린다. 파도의 옅은 물주름이 햇볕에 반짝거리며 마음을 걷잡을 수 없게 한다. 남포동 부두를 따라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간직한 영도다리로 향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서 기뻤던 다리. 또 만나지 못해 슬픔에 목 놓아 부르던 곳이 바로 영도다리다. 다리를 건너 영도로 들어섰다.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앞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울컥한다.

태종대에서 바라본 부산 앞바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태종대

맑은 날씨여서인지 아침인데도 태종대(太宗臺)를 찾는 사람이 많다. 태종대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영도의 절경에 도취돼 쉬어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절경이다.

태종대를 오르는 길섶의 목련은 하얀 꽃 봉오리를 잔뜩 뽐내고 있다. 태원 자갈마당을 지나다가 밑을 내려다보고는 해녀의 상찬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바다에서 직접 잡아온 해삼이나 멍게라고 자랑하는데 그만 넘어갈 수밖에.

오르막이어서 가벼운 옷마저 거추장스럽다. 이따금 다누비 열차가 곁을 스친다. 태종대 전망대 가는 길. 많은 이가 전망대와 영도등대를 향해 내려간다. 신선대에 들르려던 계획은 벽에 부딪혔다. 신선대 도로 위로 커다란 바위가 쏟아져 내려 길이 막힌 것. 그나마 몇년 전 와본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영도등대 아래의 선착장.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신선대의 섭섭함을 뒤로 하고 더 내려갔다. 거센 해풍이 바위를 거칠게 때렸다. 해산물을 파는 대여섯명의 해녀들의 손놀림에 꿈틀거리는 해삼, 멍게, 낙지가 군침을 돌게 했다. 지나칠 수 없어 주저앉았다. 이른 아침에 해산물을 두 접시나 해치웠다.

◆감지해변길

감지해변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태종사를 지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돌아 감지해변으로 접어들었다. 태종대에서 보던 바다인데 또 다른 느낌이다. 감지해변에는 많은 이가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넘실대는 파도의 결을 가르는 모습이 멋지다.

감지해변을 지나 중리산 자락을 따라 걷는 감지해변산책로를 찾았다. 쉼터에서 쉬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산자락을 타고 걷는 길이라 여유롭다. 맑던 날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마치 비라도 뿌릴 듯하다.

◆아슬아슬한 절영해벽길

중리해안.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중리바닷가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해벽을 따라 걷는 절영길이다. 기괴한 바위로 이뤄진 길을 걷는 환상적인 코스다. 절영해벽(絶影海壁)의 절영은 영도의 원이름인 절영도(絶影島)에서 유래했다. 이곳에서 나는 말이 빨라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해 생긴 이름이다.

아찔한 해벽에서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간담을 졸이게 한다. 아름다우면서도 아슬아슬한 해벽길에서의 조망은 좋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 심하게 요동치는 부표, 그리고 이를 개의치 않는 듯 고요한 배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절영전망대와 출렁다리, 무지개 분수대, 파도의 광장을 지나 새로 뚫린 흰여울 해안터널을 지났다. 절영해벽길과 흰여울마을을 연결하는 해안터널이다.

절영해안길에서 바라본 풍광.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한국의 산토리니 흰여울마을

흰여울마을과 부산 앞바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해안벽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 타일이 아름답다. 한국의 산토리니라 부르는 흰여울마을을 찾았다. 피난민들이 영도다리를 건너 마지막 기착한 마을이다. 바닷가 절벽 위에 마을이 들어섰다. 마을 뒤 봉래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해 흰여울마을이다. 골목은 미로처럼 엮여 있다. 젊은이들이 벽을 색칠하고 예쁜 가게를 열면서 마을이 환골탈태했다.

흰여울마을, 절벽에 다닥다닥 붙어 서로를 의지해 삶을 키워왔다. 부산은 그렇게 많은 이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특히 영도에서는 ‘굳세어라 금순아’ 가락에 금방 빠져든다.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굳세어라 금순아

강사랑 작사/박시춘 작곡/현인 노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드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의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 본 기사는 <머니S> 제588호(2019년 4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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