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41] '이데올로기 블랙홀' 탈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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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T가 공개한 5500만광년 떨어진 거대 은하 M87 중심 블랙홀 관측 모습.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사진제공=EHT

2019년 4월10일은 인류에게 역사적인 날이었다. 지금까지 이론으로만 알려졌던 ‘블랙홀’이 사상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세계 곳곳에 있는 8개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연결해 지구만한 크기의 가상 망원경(EHT·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을 만들어 지구에서 5500만광년이 떨어진 M87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블랙홀 가설을 제시한 지 104년 만에 실측에 성공한 것이다.

블랙홀 이론이 나오기 230여년 전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질량과 거리에 따라 다른 물체를 자기 쪽으로 끄는 인력이 있다는 이론이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세운 것’은 중국에서 전해진 기론(氣論)을 수용해 발전시킨 것이다. 눈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는 기는 몸의 근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거인들 어깨 위에 선 뉴턴·아인슈타인

‘감기’, ‘기운 없다’, ‘기죽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기는 우주에 가득 차 있는 힘과 에너지다. <주역>에선 이를 “맑은 기운은 사물이 되고(정기위물) 떠도는 혼은 변화를 이루므로 귀신의 뜻과 모습을 안다”고 했다. 또 기를 통해 하늘과 사람이 서로 느끼고 통해(천인감응) 서로 하나가 된다는, ‘천인합일’이라는 동양철학의 뼈대가 되기도 했다.

뉴턴은 이 ‘기론’을 수용하고 발전시켜 인력이론을 만들어 계몽시대 자연과학자들이 자기력과 전기력 및 전자기력 이론을 정립해 근대 과학기술문명을 이룩하는 토대를 닦았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한단계 더 끌어올려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를 제곱한 값을 곱한 것과 같다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구약성서> 전도서(코헬렛)에는 “이미 있던 것이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태양 아래는 새로운 것이 없나니”라는 말이 나온다. 뉴턴도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여든여섯살까지 장수한 그는 “나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닷가에서 노는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거대한 대양이 펼쳐져 있고 가끔씩 보통 것보다 더 매끈한 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고 즐거워하는 소년 말이다”는 말도 남겼다.

<성경>과 뉴턴의 이런 말은 학문과 사상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토대를 바탕으로(정체성) 앞선 학문과 사상을 적극 받아들여(개방성) 한발 앞선 학문을 만들어내는(창조성) 겸손한 패치워킹(짜깁기, 접붙이기)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갈등과 파괴 초래한 공산·제국주의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다른 문화에 대해 열린 패치워킹 자세를 보인 것과 달리 이성의 절대성을 광신한 일부 합리론자는 공산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리바이어던’(괴물)을 만들어냈다. 공산주의와 제국주의는 플라톤의 ‘유토피아’(국가론)와 ‘새로운 나라 건설’(법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공맹철학에 바탕을 둔 ‘계몽주의’와 달리 공산주의와 제국주의는 ‘순 서양사상’이라는 말이다.

공산주의는 사람의 이성을 광신한 나머지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을 계산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전제 아래 무지막지한 ‘계획’이라는 폭력적 괴물을 만들어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국가는 국방과 치안 및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했다. 그 결과는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의 자본주의 시장경제화 및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졌다. 북한과 쿠바 등 극소수만이 아직도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자연질서와 어긋나는 체제를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다.

제국주의는 이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 이성이 없는 동물은 물론 식물과 자연을 정복해야 한다는 <구약성경>에 원천을 두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사람,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런 동물과 자연 정복은 이성이 충만한 유럽인들보다 떨어지는 흑인을 노예로 삼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및 아시아에 식민지를 만들어 지배하라는 제국주의로 연결됐다. 한발 나아가 유대인을 수백만명이나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뒷받침했다.

◆21세기 통섭이론은 문화국가론

한국은 이런 제국주의를 잘못 받아들인 일본에 주권을 강탈당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직지>와 <훈민정음>에서 보여주듯 오천년 동안 눈부신 문화력을 누렸지만 주희 성리학에 무젖어든 중종(재위 1506~1544) 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성리학 지상주의가 고착되면서 외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쇄국정책으로 근대화 물결에 올라타지 못함으로써 수천년 뒤떨어졌던 일본에 추월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좌절하지 않았다. 반드시 광복을 되찾을 것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대한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웃으면서 던지는 담대한 용기,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항일투쟁에 나선 치명적 성실성으로 독립을 되찾았다.

2019년은 다른 나라 땅,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운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른바 ‘남남갈등’을 겪고 있다. ‘이성광신도’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구 주석은 해방 후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고 했다.

21세기는 핵무기에 의한 ‘공포의 균형’으로 총칼로 싸우는 전쟁보다는 무역을 통한 분쟁이 일상화할 것이다. 무역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재와 기술과 가치다. 한마디로 문화력이다. 김구 주석이 강조하고 방탄소년단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통일시대 100년은 문화력으로 융성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시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9호(2019년 4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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