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왜 자꾸 변죽만 울리나

 
 
기사공유
한국은행 총재의 스쳐가는 리디노미네이션 발언으로 화폐개혁 논의가 대한민국을 또 강타했다. 일각에선 정치적 이슈를 고려한 존재 과시용 군불때기일 뿐이라며 폄훼하지만, 또 다른 진영에선 침체된 경제의 불씨를 되살릴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원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됐다는 시각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 시점이 1000원의 액면가를 1원으로 줄여야하는지에 관해서는 저마다들 말이 참 많다. 확산된 논란이 부담스러웠는지 한국은행도 은근슬쩍 발을 빼려는 모양새다. ‘머니S’는 변죽만 울리는 화폐개혁의 본질을 알아보고 지금 왜 이 논쟁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또… 변죽 울리는 ‘화폐개혁’①반복되는 리디노미네이션 논쟁


우리나라 화폐개혁 논의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발언하면서 부터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이 총재는 “원론적인 차원의 이야기일 뿐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물러섰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차원에서 화폐개혁을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여당 의원들은 다음달 13일 리디노미네이션 정책토론회를 계획하는 등 논의를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화폐개혁을 둘러싼 이슈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반복되는 리디노미네이션 논쟁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의 가치변동 없이 모든 은행권 및 지폐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조정해 새로운 통화단위로 화폐의 호칭을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현행 1000원을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둔 채 액면가만 1원으로 조정하는 식이다.


지난달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리디노미네이션 관련 질문에 이주열 총재는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가 논란이 커지자 다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말을 바꿨다.


이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에 군불을 지폈다가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5년 국정감사에서도 화폐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이 총재 이전에도 이 같은 일은 반복돼 왔다. 2004년에도 한국은행 주도로 리디노미네이션 계획을 진행하려 했으나 기획재정부가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종철 기자


우리나라는 1950~1960년대 두차례에 걸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경험이 있다. 1953년 100원을 1환으로 1962년엔 다시 10환을 1원으로 절하했다. 이후로는 화폐개혁이 없었는데 지난 수십여년간 경제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1990년대 이후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 돼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우리나라의 총 금융자산은 2010년 들어 뒷자리에 0이 16개나 붙는 1경(10,000,000,000,000,000원)을 넘어섰다. 올해 4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중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 및 비영리단체, 일반법인기업, 금융법인, 일반정부 등 모든 경제부문(국외부문 포함)이 보유한 총금융자산은 1경7148조1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 수준이나 화폐가치는 200위권에 그친다. 1달러가 일본 엔화로 112엔, 유럽 유로로 0.88유로, 중국 위안으로 6.71위안인 반면 우리나라 원화로는 1130원 수준이다. 

1달러 대비 환율이 네자릿수를 넘어가는 나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역시 1달러 환율이 1.33 싱가포르달러, 3.56 링깃 등으로 단위가 낮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화폐에 경제규모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등 효과 다양

리디노미네이션이 가져올 경제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한국은행이 꾸준히 논쟁에 불을 댕겼다 철회하는 행태를 되풀이하는 요인이다. 

먼저 화폐의 자릿수 축소로 거래와 회계장부의 기장을 간편화 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1000원을 1원으로 조정할 경우 기존 1억원(100,000,000원)의 단위가 10만원(100,000원)으로 변경돼 회계처리와 기입이 간편해지는 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리디노미네이션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화폐 표시금액이 점차 증가해서 발생하는 계산, 지급, 장부기재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데 있다.

소비진작과 내수부양 효과도 뒤따른다. 화폐단위가 작아지는 만큼 가격이 줄어든다는 ‘착시효과’로 일시적인 소비증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화폐단위가 변경되면 은행 현금지급기, 금융거래 관련 각종 소프트웨어 등을 교체해야 하는데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에게는 사업의 기회인 만큼 내수부양을 기대할 수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 자릿수를 줄여 우리나라 화폐의 대외위상도 제고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은행의 ‘2018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총 35조4752억원의 화폐가 발행됐다. 이 가운데 5만원권이 25조262억원으로 70% 가량을 차지한 반면 환수율은 67%에 그친다. 그러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소위 ‘장롱 속 돈’이 신권교환을 위해 시중에 유통될 수 있으므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행이 올해 물가안정목표를 2%로 설정했지만 3월까지 물가는 0.5% 상승에 그치는 등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시점이므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디노미네이션에 투입되는 비용 대비 앞으로 가져올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 등 편익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며 “심도 깊은 찬반 토론을 진행해 비용보다는 편익이 더 크다는 점을 확인해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9호(2019년 4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한듬 mumford@mt.co.kr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2088.86상승 24.0218:01 10/22
  • 코스닥 : 655.91상승 6.7318:01 10/22
  • 원달러 : 1169.70하락 2.318:01 10/22
  • 두바이유 : 58.96하락 0.4618:01 10/22
  • 금 : 59.38하락 0.3218:01 10/22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