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만원권’ 안나온 이유가 독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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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총재의 스쳐가는 리디노미네이션 발언으로 화폐개혁 논의가 대한민국을 또 강타했다. 일각에선 정치적 이슈를 고려한 존재 과시용 군불때기일 뿐이라며 폄훼하지만, 또 다른 진영에선 침체된 경제의 불씨를 되살릴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원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됐다는 시각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 시점이 1000원 액면가를 1원으로 줄여야하는지에 관해서는 저마다들 말이 참 많다. 확산된 논란이 부담스러웠는지 한국은행도 은근슬쩍 발을 빼려는 모양새다. ‘머니S’는 변죽만 울리는 화폐개혁의 본질을 알아보고 지금 왜 이 논쟁이 필요한지 짚어봤다.<편집자주>

[또… 변죽 울리는 ‘화폐개혁’] ⑤·끝 역사로 보는 ‘돈 이야기’


서울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고층 빌딩 사이로 근현대사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주변 건물과 어색한 조화를 빚어내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1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대한민국 금융의 역사를 함께했다. 이곳에는 6.25전쟁 중에 발행한 최초의 한국은행권부터 2000원권 평창올림픽 기념화폐까지 대한민국 모든 돈의 역사가 담겨있다.

60여년간 국민의 손에서 거래되던 화폐가 올 들어 정치권과 금융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치권은 정책토론회를 열고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한다고 나선 반면 한국은행은 '계획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액면가를 낮추면서 사회경제적 편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금융시장의 이슈핵으로 떠오른 화폐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찾았다.


화폐박물관 건물. /사진=심혁주 기자



◆첫 한국은행권 일본서 인쇄한 사연

“최초의 한국은행권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950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난 16일 화폐박물관 안내직원의 질문에 초등학생 관람객은 “6.25 전쟁이요”라고 당차게 답했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새로운 은행권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은행을 설립했다. 한국은행은 조선은행권과 소액의 보조화폐를 공식화폐로 병행해 사용하면서 신권 발행을 준비했지만 설립 13일 만에 6.25 한국전쟁이 터져버렸다. 한국은 전쟁 중에 현금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일본에 손을 내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인한 평창올림픽 기념화폐. /사진=심혁주 기자

위조 지폐 감지 기계. /사진=심혁주 기자

1950년 7월22일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제조된 1000원과 100원권이 대구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발행됐다. 안내직원은 “최초의 한국은행권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광화문이 담겼다”며 “초기 화폐에는 이 전 대통령이 많이 실렸다”고 설명했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화폐박물관에는 관광객이 꽤나 눈에 띄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부모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몇몇 보였다. 이날 자녀와 화폐박물관을 찾은 주부 김모씨는 “매번 지나갈 때마다 무슨 건물인지 궁금했는데 화폐박물관이라는 걸 알고 아이한텐 경제 공부가 될까 싶어 함께 왔다”고 말했다.

◆세차례 통화조치 내렸지만…

“10만원권이 안 나온 이유는 독도 때문입니다.” 안내직원은 화폐 도안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화폐 도안에는 위인, 문화재, 천연기념물 등이 다양하게 사용된다. 현재 화폐별로 ▲1원-무궁화 ▲5원-거북선 ▲10원-다보탑 ▲50원-벼 ▲100원-이순신 ▲500원-학 ▲1000원-퇴계 이황 ▲5000원-율곡 이이 ▲1만원-세종대왕 ▲5만원-신사임당을 새겨 넣었다.



한국은행은 도안선정 사유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초상에 대해서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 예술품에 대해서는 '문화예술의 중요성', '우리나라 대표문화재'라고 설명할 뿐이다. 한국은행 발권정책국 관계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물을 선정할 때 국민 여론이나 전문가 의견을 감안해 후보를 좁히는 방식으로 화폐 도안을 정하고 있다"며 "기준을 정해놓고 진행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안내직원 말대로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 발행 논의도 있었다. 2007년 정부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 10만원권에 백범 김구가 선정됐다고 밝혔지만 이듬해 발행계획을 취소했다. 당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뒷면에 들어가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표기돼 있지 않아 10만원권 발행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세차례 통화조치를 거쳤다. 앞서 언급한 6.25전쟁 중에 일본에서 제작한 화폐발행이 첫 통화조치이다. 전쟁이 끝난 1953년 화폐가치 하락과 물가상승 압력에 대처해 화폐단위를 100분의1로 내리는 2차 통화조치를 단행했다. 표시 단위도 ‘원’에서 ‘환’으로 바뀐다.

1962년에는 정부의 경제개발개혁에 따라 3차 통화조치가 이뤄졌다. 화폐단위를 10분의1로 내리고 화폐 단위를 다시 ‘원’으로 통일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물가가 오르면서 고액권도 발행하기 시작했다. 1973년과 2009년에는 각각 1만원권, 5만원권을 새로 발행해 지금의 화폐체계가 완성됐다. 안내직원은 “최근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을 언급해 화제가 되고 있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위조방지 기술 ‘으뜸’

현재의 화폐박물관 건물은 1950년 6월12일 한국은행이 대한민국 중앙은행으로 창립되면서 한국은행 본점이 됐다. 2001년이 돼서야 화폐박물관으로 개관했는데 2층에는 옛 한국은행 흔적을 복원해 놓았다. 2층에 오르자 한국은행 총재실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실, 모형금고를 볼 수 있었다. 안내직원은 “현금 1억원의 무게를 체험해 보시라”며 모형금고로 이끌었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금고에 들어가 보니 현금 만원권 뭉치가 담겨있는 박스가 눈에 띄었다. 만원권 만장이 담긴 박스의 무게는 9.57㎏. 눈으로 보면서 들어서인지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화폐 위조 방지기술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은 위조지폐 방지 기술력이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발표한 ‘2018년 중 위조지폐 발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견된 위조지폐는 모두 605장이었다. 1998년(365장) 이후 가장 적은 수치로 주요국과 비교해도 일본과 함께 가장 적은 수준이다. 반면 북한은 위조지폐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내직원은 “북한 화폐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지만 위조 방지 기술력이 낮다고 평가된다”며 “만약 통일이 돼 화폐가 통합된다면 북측의 위조지폐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9호(2019년 4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심혁주 simhj0930@mt.co.kr

금융팀 심혁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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