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이 10원 되면 ‘베네수엘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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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총재의 스쳐가는 리디노미네이션 발언으로 화폐개혁 논의가 대한민국을 또 강타했다. 일각에선 정치적 이슈를 고려한 존재 과시용 군불때기일 뿐이라며 폄훼하지만, 또 다른 진영에선 침체된 경제의 불씨를 되살릴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원화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됐다는 시각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 시점이 1000원의 액면가를 1원으로 줄여야하는지에 관해서는 저마다들 말이 참 많다. 확산된 논란이 부담스러웠는지 한국은행도 은근슬쩍 발을 빼려는 모양새다. ‘머니S’는 변죽만 울리는 화폐개혁의 본질을 알아보고 지금 왜 이 논쟁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또… 변죽 울리는 ‘화폐개혁’] ③다른 나라 사례 보니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불리는 이른바 ‘화폐개혁’은 양날의 검이다. 한 나라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실질가치를 그대로 두고 액면을 동일한 비율로 낮추면 뚜렷한 장단점이 있어서다.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도 발생한다.

화폐의 액면가가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1000원 하던 물건이 10원이 되면 싸졌다고 느끼기 쉬워 소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부작용도 크다. 화폐 사용자의 심리적 저항이 생길 수 있다. 명목상 재산이나 소득이 적어졌다고 느낄 수 있어 거부감이 커질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신권화폐 제작에 필요한 회계 비용이나 신권과 구권 화폐의 교환 과정에서 자동화기기(ATM), 자판기, 온라인상 화폐 입력 체계 등 시스템 변화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가 화폐개혁을 실시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한 국가들이 주로 실시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다.


베네수엘라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기 위해서는 260만 볼리바르가 필요하다. /사진=로이터

◆실패하면 '살인적 인플레' 후폭풍

지난해 8월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땅에 떨어지자 이를 대처하기 위해 자국 화폐인 ‘볼리바르’의 단위를 10만대 1로 절하하고 새 화폐인 ‘소버린 볼리바르’를 발행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화폐개혁으로 물가상승이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물가는 더 폭등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해 시작과 함께 물가는 10주간 무려 465%나 상승하는 등 화폐개혁 효과를 찾을 수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000만%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살인적인 물가상승률로 2011년 1만238달러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3168달러로 추락했다.

베네수엘라 국민 9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평균 몸무게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약 11㎏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녀의 나라였던 베네수엘라가 먹을 것 자체가 없는 식량부족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앞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바로잡겠다며 임기 내 정부의 사회복지지출을 1999년 국내총생산(GDP)의 11.3%에서 2011년 22.8%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전세계 석유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 수익으로 이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유가가 하락하면서 정책 유지가 어려워졌고 정부부채가 급증한 것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들어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서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북한도 화폐개혁 실패로 화폐의 신뢰가 무너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북한은 17년 만에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화폐가치를 100대1로 낮추는 것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해 장롱 속 화폐를 끌어내려는 의도로 시행됐다.

하지만 물가가 폭등하고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마당에서 부를 축적한 일명 ‘돈주’ 세력의 반발도 거셌다. 결국 야심차게 준비한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이듬해 봄 처형됐다.

이후 북한 돈은 기피대상이 돼 집집마다 주로 중국의 인민폐나 달러와 같은 외화로 현금 재산을 보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화폐개혁은 국민의 생활에 밀접한 문제이기에 사용자가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면 화폐가치는 땅에 떨어지게 된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으로 생필품을 구입할 때 가방 가득 현찰을 들고 다녀야 할 만큼 불편해질 경우 시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키 리라화를 세는 모습. /사진=로이터

◆터키 화폐개혁 후 물가 잡아

앞선 사례와 달리 터키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국가 중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경우로 꼽힌다. 터키 정부는 2005년 1월1일부로 기존 화폐단위를 100만분의 1로 낮췄다. 화폐명칭도 리라에서 신리라로 변경했다.

물가불안 탓에 두차례 시행을 유보하다 물가가 낮아지는 추세를 확인하고서 결행에 나선 것이다. 앞서 터키는 2002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9.7%에 달하는 대표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 국가였다.

두자릿수로 상승하던 터키의 소비자물가는 정부의 화폐개혁 단행 이후 3년 동안 평균 8.9%로 떨어졌다. 당시 터키주한대사관이 발간한 ‘터키경제개황 보고서’에 따르면 화폐개혁 단행 후 소비자물가 인상률은 8.2%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룬 것으로 평가됐다.

화폐개혁에 앞서 터키 경제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비롯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하는 이자율 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영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화폐개혁은) 많은 변화를 수반하고 뚜렷한 장단점이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가 대립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9호(2019년 4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류은혁 ehryu@mt.co.kr

머니S 류은혁 기자입니다. 이면의 핵심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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