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NDC] "바다이야기, 게임생태계 무너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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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욱 작가가 2019 NDC 현장에서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채성오 기자
“한국에서의 게임개발 흐름은 제대로 이어져 오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깊고 다음 세대에 계속 영향을 끼쳤습니다. 초기 취미 컴퓨터 활동이 게임개발자를 키워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다만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가 발발하면서 관련 아케이드 장르와 인디게임을 구분하지 않고 만든 법률 때문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습니다. 아직 아마추어 개발자 문화에 대한 불씨가 꺼지지 않길 바라봅니다.”

<한국게임의 역사>를 집필한 오영욱 작가는 26일 진행한 ‘2019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현장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오 작가는 ‘발굴되지 않은 한국 게임의 역사’를 주제로 국내 게임 문화에 대한 변천사를 되짚었다.

◆한국산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오 작가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GBI타워 지하 1층 발표장에서 “게임 개발자를 키우는 것은 가족, 기술, 학교, 커뮤니티, 국가정책, 학원 등 복합적인 요소간의 결합이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오늘은 그중 문화와 기술에 대해 다뤄 보려 한다”고 운을 뗐다.

금성과 삼성전자가 만든 컴퓨터 기사가 실린 과거 신문. /사진=채성오 기자
1970년대에 펴낸 잡지들을 보면 당시에는 기계식 오락기가 한창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남산어린이회관, 능동어린이회관 등에 설치된 도트 네온사인 형태의 기계식 오락기가 확산됐다 점차 오락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77년 <라디오와 모형>이라는 잡지를 통해 라디오키트 ‘007 공작시리즈’나 네온관을 사용한 ‘전자 가위바위보’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컴퓨터 잡지에 본격적으로 게임 소식이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1980년대는 한국산 게임의 태동기로 평가받는다. 1981~1982년 금성(현 LG전자)이 국내 최초 마이크로컴퓨터를 개발했고 삼성전자도 교육·가정용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했다. 이때부터 게임을 직접 만드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고 제조사와 잡지출판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모전이 열렸다.

1983년 삼성전자가 제1회 퍼스컴 소프트웨어 공모전을 열었고 많은 아마추어 작품들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개발됐다. 1983년에는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와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도하는 산업육성정책의 일환으로 12개 기업이 공동출자한 ‘정보시대’가 설립돼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컴퓨터 비전> 등 월간지가 탄생했다.

국내 최초 한글게임으로 개발된 '신검의 전설' 기사가 실린 신문이 2019 NDC 현장에서 공개됐다. /사진=채성오 기자
1985년 대우전자에서 게임기 ‘재믹스’가 출시돼 가정용 게임기 보급이 활성화됐고 PC통신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KETEL)이 1986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1987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이 발표돼 게임 불법복제 등에 대한 경각심이 제고되는 계기가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무단 복사하고 배포했던 문화가 규제되면서 국내 최초 한글게임 ‘신검의 전설’이 개발되는 발전적 형태로 진화했다. 케텔에서도 게임커뮤니티 ‘개오동’ 등이 생겨나며 아마추어 제작자들간 개발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됐다.

◆문화 융성 황금기, 바다이야기에 ‘풀썩’

1990년대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다양한 시도가 빛난 시기였다. 개오동에서 개발 관련 커뮤니티가 등장해 개발자가 급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스트리트 파이터II’에 대한 소스 및 제작기법들이 공개된 후 많은 개발자가 몰려 모든 캐릭터를 오픈시키며 ‘한국판 스트리트 파이터’를 양산했다.

이어 1991~1993년 사이에는 본격적인 게임잡지들의 창간과 함께 일본 중심의 개발문화들이 소개됐다. 해당 시기 국내 게임사들도 자리잡으면서 본격적인 게임을 출시하는 한편 게임개발자 동호회 등을 통해 개발인력도 활발하게 수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공모전이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1992년 12월 제우미디어가 <게임챔프>를 창간하면서 제1회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었고 1990년대초 프로그래밍 잡지에는 ‘윈도용 게임 만들기’ 및 ‘코리안 테트리스를 통한 게임 제작원리 및 소스 분석’ 등의 기획이 인기를 얻었다. 1993년에는 하이텔 게임제작자 동호회가 설립돼 초기 게임개발자들의 구인·구직이 진행됐다.

2000년대 게임 공모전 소식. /사진=채성오 기자
나우누리 게임제작자 포럼도 설립돼 소모임 및 RPG 만들기 커뮤니티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1997년 하이텔 게임제작 동호회는 게재동 커뮤니티를 통해 ‘100K 게임공모전’을 주최했고 1999년 제우미디어가 아마추어 게임 콘테스트를 열었다. 이어 2003년에는 한국게임개발자협회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생겨나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을 진행했다. 2회 공모전부터 인디게임 공모전과 병행했다.

아마추어 개발자를 중심으로 게임 문화를 형성하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황금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 이른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경품용 상품제가 폐지되고 영상물등급위원회 직원 등 관련자 2821명이 구속됐다. 당시 국무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진행하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설립돼 관련 아케이드 게임을 포함한 모든 장르의 게임을 통제하기에 이른다.

아마추어들이 만든 게임 역시 규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단속이 시작되면서 2010년 RPG 쯔꾸르 커뮤니티 니오티에 시정요청 공문이 떨어졌고 올 들어 플래시게임 배포에 대한 규제 등이 이어졌다. 플래시게임 배포와 관련한 규제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지만 아마추어 개발자들은 앞선 규제들을 이유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이후 “인디게임들이 발 붙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다시 아마추어 개발자들에 대한 창작 환경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4년 ‘아웃 오브 인덱스’를 시작했고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이 2015년부터 진행되는가 하면 글로벌 게임경진대회를 이은 ‘GIGDC’가 탄생했다. 2016년에는 ‘구글 인디 페스티벌’이 시작됐고 유니티, 언리얼 등 플랫폼 홀더에 의한 대회들이 지속적으로 유치됐다.

오 작가는 “옛날 이야기와 데이터를 남겨 다음 세대의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며 “개발자들이 자신의 개발 이력과 저작물 등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작은 것들이 하나로 모일 때 전체를 대표하는 경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9 NDC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사옥과 GB1타워,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인근지역 일대에서 진행된다.
 

채성오 cso86@mt.co.kr  |  facebook

머니S 채성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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