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농민의 꿈, ‘녹두꽃’으로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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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방문의 해’ 역사여행 
황토현·만석보터, 125년 전 ‘혁명의 그날’ 생생

김명관 고택과 뒤뜰에 곱게 핀 영산홍. /사진=박정웅 기자
서울에서 전봉준을 만났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인 종로네거리에서다. 종각역 5번과 6번 출구 사이에 녹두장군이 앉아있다. 전봉준은 안도현 시인의 표현처럼 ‘해진 짚신에 상투’ 머리를 했다. 서울로 압송되던 순간의 사진처럼 말이다. 전봉준을 기억하는 이 유일한 사진은 일본인이 찍었다.

전봉준 동상은 지난해 4월24일 녹두장군의 순국 123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이 자리는 1895년 전봉준이 구금됐다가 처형된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터다. 동상과 가까운 곳에는 또 다른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있었다. 2015년 11월 남도의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스러졌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소개된 전봉준(왼쪽), 손화중, 김개남 장군. /사진=박정웅 기자
전봉준을 드라마에서 만났다. 지난달 26일 첫 방송을 한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다. 다부진 체격의 배우 최무성이 전봉준 역을 맡았다. 몸이 왜소해 녹두(綠豆)라고 했다던 녹두장군의 체형과는 다른 듯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눈빛은 닮은 느낌이다.

<녹두꽃>은 한국 드라마에선 드물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해 화제를 모았다. 더구나 올 초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녹두장군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5월11일은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다.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1894년 5월11일(음력 4월7일) 전북 정읍의 황토현에서 조선 정규군(전라감영군)에게 크게 승리한 것을 기념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말목장터 감나무와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정읍 황토현서 만난 전봉준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 일부)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의 전봉준 동상과 농민군 부조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전북 정읍에서 전봉준을 만났다. 오랜 기억 너머의 시를 꺼내들고 황토현을 찾았다. 황토현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2곳이다.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이 있다. 왜 2곳일까.

오랫동안 황토현전적지로 소개된 곳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 쪽이다. 박정희·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유시’(諭示)로 갑오동학혁명기념탑과 기념관이 조성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의 뜻에서 동학이 세상의 빛을 본 점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의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 뒷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훼손됐다. /사진=박정웅 기자
기념관 왼쪽에는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있다. 뒷면에는 1987년 정화기념비 조성 배경을 밝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화’(淨化) 취지가 잘 설명돼 있다. 물론 그의 이름 석자는 훼손됐다. 이곳의 전봉준 동상과 부조 조형물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조병갑을 비롯한 탐관오리의 학정에도 부조 속 농민군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다.

2004년 맞은편에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1894년 2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학정에서 벗어나고자 말목장터에서 봉기한 이래 만석보 혁파, 황토현전투, 전주성 점령, 우금치전투 등 동학농민혁명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1893년 11월 전봉준과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이 작성한 사발통문(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이 눈에 띈다.
동학농민혁명의 기본 정신을 잇댄 3.1운동, 대한민국헌법을 설명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전시물. /사진=박정웅 기자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역사의 아이러니

동학농민혁명은 ‘민란’으로 폄훼됐다. 학계에 따르면 희생자수는 40만명에 이른다. 당시 조선 인구가 1800만명 수준이었다. 이후 ‘동학’이라는 두 글자는 오랫동안 금기어 취급을 받았다. 현대사를 관통한 ‘4·3’이나 ‘5·18’처럼 동학은 ‘난’에서 ‘운동’을 거쳐 ‘혁명’이 됐다.

고부봉기의 원인이 된 옛 만석보터 일대. 현재 보는 없어진 채 터(만석보유지비)만 남았다. /사진=정읍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3·1운동, 임시정부, 4·19혁명, 그리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됐다는 의미에서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가 특별법에 따라 발족됐다. 2010년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100년이 지나서야 시대정신의 뿌리로서 제 평가를 받은 셈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는가. 1898년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장은 조병직, 배석판사는 주석면과 조병갑이었다. 그 탐관오리 조병갑이 배석판사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또 있다. 동학을 수면 위로 올린 두 전직 대통령에 앞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잇댄 얘기다. 이승만은 1946년 이른바 ‘정읍발언’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찾은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정읍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곳이 많다. 이곳 황토현을 비롯해 전봉준 고택, 고부관아터, 만석보터 등이 대표적이다.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여행지로 손색없다.

◆피향정, 반면교사의 두 얼굴

정읍 태인에는 피향정(披香亭)이 있다. 호남 제일의 정자를 자랑한다. 보물 제289호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신라 때 최치원이 태인현감으로 재임 중 세웠다고 전하나 초창연대는 알 수 없다.

피향정에서 바라본 하연지제. 여름에는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박정웅 기자
피향정은 여름에 연꽃이 만발해 향기가 누정과 주위에 가득차 불렸다고 한다. 피향정을 중심으로 본래는 연못이 2곳 있었다.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인데 위쪽 연못인 상연지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지주가 메웠다고 한다. 두 연못을 연결한 ‘삼남길’이 남아있다.

피향정 뜰에는 선정비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중 가장 왼쪽에 있는 게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친인 조규순의 영세불망비다. 고부군은 현재 정읍과 태인 일대를 아울렀다. 태인현감을 지낸 조규순은 덕을 웬만큼 베풀었다. 조병갑은 부친 선정비에 비각을 세우려고 고부군민으로부터 1000냥을 뜯었다고 한다.

피향정 뜰에 있는 조병갑 부친 조규순의 선정비(왼쪽). /사진=박정웅 기자
조병갑은 탐관오리의 상징 인물이다. 동진강에 보를 틀어막고 말도 안되는 물세를 걷었다. 새로 만든 보 때문에 강 상류지역에 물이 넘쳐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세금 감면을 호소하며 항의하는 이들을 죽였다. 전봉준의 부친인 전창혁도 이 틈에서 죽었다.

선정비 오른쪽에는 정반대의 인물을 기린다. 독립운동가인 일완 홍범식 선생이다. 1907년 태인군수(현감)으로 선정을 베푼 홍 선생은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해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면서 경술국치 당일(1910년 8월29일) 자결한다. 벽초 홍명희가 그의 아들이다.

피향정 뒤편 사거리. 정석의거리 이정표가 눈에 띈다. /사진=박정웅 기자
누정에 오르면 연못과 태인 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정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반가운 이름을 만난다. 도로 표지판에 ‘정석의길’이 또렷하게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다는 책인 그 수학교재 말이다. 교차로 건너편이 저자의 고향이라고 하니 피향정은 정읍 태인과 잇댄 인간 군상을 만나는 장이다.

◆정읍 여행팁

정읍시가 ‘2019~20 정읍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정읍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여행지 외에 다양한 여행명소가 있다. 우선 사시사철 한폭의 한국화를 만나는 고택을 눈여겨보자. 산외면의 김명관 고택이 그곳이다. 드라마 <녹두꽃>의 촬영지다. 극중 전주여각의 송자인(한예리 분)이 머문 고부임방이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6호인 김명관 고택은 1784년(정조 8년)에 건립한 주택으로 일명 아흔아홉칸집이다. 현재는 여든여덟칸이 남았다.

드라마 '녹두꽃'에서 고부임방 촬영지로 등장한 김명관 고택. /사진=박정웅 기자
김명관 고택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를 활용했다. 집 뒤에는 창하산이, 앞에는 동진천(동진강 상류)이 흐른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의 조건을 꼽는 전형적인 자리다. 아흔아홉칸이면서도 소박한 구조가 김명관 고택의 특징이다. 설계자와 거주자의 독창성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조선조 양반들의 생활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민속자료로 인정받아 현재 문화재청과 정읍시가 유지·관리한다.

무성서원 병오창의기적비를 둘러보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칠보면에는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다. 조선말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의 하나다. 전라북도에서는 유일하다. 다른 지방의 서원 7곳과 더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신청 목록에 든 서원이다. 일반 백성에게도 문을 연 보기 드문 서원이다. 지세 또한 위압적이지 않다. 을사늑약 이듬해엔 호남의병이 창의한 곳이다. 서원 오른편엔 병오창의기적비가 이를 확인한다.

정읍 시내에는 쌍화차거리가 있다. 정읍경찰서 맞은편에 있다. 유치장 면회객 등 경찰서 민원인 대기공간으로 쌍화차집이 있었는데 장사가 잘 돼 여러 집이 생겼다고 한다. 강릉의 카페거리처럼 음료를 매개로 한 정읍의 특화거리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읍(전북)=박정웅 parkjo@mt.co.kr

여행, 레저스포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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