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은퇴이민 최적지, 왜 ‘이 나라’일까

 
 
기사공유

지난 3월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8회 해외유학·어학연수 박람회 및 제37회 해외 이민투자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전세계에서 필리핀을 가장 많이 찾는 국민은 한국인이다. 필리핀에 입국하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매년 늘어 2017년에는 161만명(1위)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의 23.3%를 차지했다. 중국 97만명(2위), 미국 96만명(3위), 일본 58만명(4위), 호주 26만명(5위)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어학연수 목적이라도 관광비자로 입국해 비자를 연장하면서 공부하면 된다. 관광비자로 학업하기 위해서는 필리핀 정부에서 인증한 어학원에서 추가적으로 학업허가증(SSP)을 발급받으면 된다. 요즘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뿐만 아니라 청소년도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데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선진국으로 가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이 적게 드는 필리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관광에 어학연수로 적지

필리핀은 16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쓰이다가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으로 지배권이 미국으로 넘어가 영어교육이 시작됐다. 지금은 필리핀어로 지정된 타갈로그어와 영어 둘 다 공용어다. 유명 대학은 대부분 영어로 수업을 하지만 여전히 필리핀어로 수업하는 대학들도 있다. 필리핀 어학연수는 가성비가 뛰어난 것이 큰 장점이다. 다만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온 사람이 워낙 많아 그들끼리 한국말로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면 영어 실력이 느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한 관광지가 많아 놀러 다니기 좋은 것이 공부하러 온 이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의지를 갖고 하루 종일 영어공부만 하겠다면 일대일 수업 받기에 좋고 선생님들도 친절한 편이어서 실력을 늘리는 데 매우 괜찮은 환경이다.

순수 관광목적으로도 필리핀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은 관광지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인천공항에서 4~5시간이면 도착하고 착한 물가에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으로 크리스마스를 뜻깊은 명절로 여기므로 겨울에 크리스마스를 따스하게 보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세부는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뿐더러 필리핀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로서 다양한 레스토랑, 쇼핑몰, 엔터테인먼트가 밀집해 즐기며 지내기에 좋다. 어학연수의 메카인 세부에는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어학원이 몰려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좋은 시설을 갖춘 리조트식 어학원들도 있다. 섬이 7000여개에 달해 보라카이, 보홀, 코론, 푸에르토 프린세사, 푸에르토 갈레라, 오슬롭, 엘니도, 팡가시난, 두마게테, 시아르가오 등 뛰어난 관광지가 많다.

◆주목받는 은퇴이민지

최근에는 은퇴 이민의 대상지로 필리핀을 고려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국인 10명 중 6명이 은퇴 후 외국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필리핀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은퇴청(PRA)을 설립해 은퇴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다. 경제력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국내의 여유 없는 문화, 불안정한 경제상황, 높아지는 세금과 심해지는 미세먼지 등을 피해 한국에서 가까우면서 따뜻하고 휴양지도 많으며 물가가 저렴한 필리핀을 선호한다고 한다. 지난 2월20일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필리핀 통상산업부 차관은 필리핀의 자연환경, 생활여건, 복지시스템 등이 한국인이 살기에 좋다고 설명했다. 생활비가 저렴해 한달에 800~1200달러로 외식과 국내여행 등을 하면서도 거주가 충분하다고 했다.

만료기한 없는 특별은퇴 거주비자(SRRV)를 취득하면 장기체류할 수 있는 무기한 거주권이 얻어진다. 국적은 필리핀으로 바뀌지 않으면서 수시 입출국이 영구적으로 자유롭다. 필리핀으로 송금되는 연금은 세금도 면제된다. 60세 이상에 제공되는 금융혜택이 있고 항공 여행세 면제 등의 혜택도 있다. 은퇴이민 비자를 취득하고 나면 자녀들에게는 학생비자가 발급된다. 만 50세 이상은 미국 달러로 5만달러, 35~49세는 7만5000달러를 정부 지정 은행에 6개월간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하며 그 이후에는 투자에 사용할 수 있다. 자유롭게 일하거나 창업해도 된다. 커피 바리스타로서 필리핀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중년 부부 이야기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인건비는 한국보다 훨씬 싸지만 제조업이 취약해 수입 물품을 사용할 때 부담이 있고 지역에 따라 물가가 크게 차이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주거는 임차해 살아도 되는데 콘도(아파트) 구입 시에는 대지 지분을 갖지 못한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총기휴대 허용되나 의외로 안전

필리핀에 대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치안문제다. 필리핀은 미국의 영향으로 개인도 허가 받으면 법적으로 총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다. 총에 맞아 사람이 죽거나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 등이 가끔 보도된다. 사설 경비원들이 총을 휴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감이 난다. 외국인이 허가되지 않은 총기를 구입해 보유하거나 휴대하다가 적발되면 5년 이상의 형을 받는다. 다행인 것은 허가를 받았어도 어느 곳에서나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총기 사용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심한 편이라는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부터 범죄와의 전쟁으로 명성이 높았다.

전세계 국가와 도시의 안전도 및 범죄율 등에 대한 자료를 보면 우려감에 비해서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조사분석업체 갤럽이 142개국 14만8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자국 치안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2018 글로벌 로앤오더' 리포트에서 보면 싱가포르가 1위, 북유럽의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핀란드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필리핀은 한국, 호주, 크로아티아 등과 똑같은 점수를 받았다. 질문 항목은 ▲당신이 사는 지역의 경찰을 신뢰하는가 ▲도시나 거주 지역에서 밤에 걸을 때 안전함을 느끼는가 ▲지난 12개월간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 돈이나 재산을 도난당한 적이 있나 ▲지난 12개월간 폭행이나 강도를 당한 적이 있나 등이다.

한편 클라우드 소싱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누베오'(Numbeo)에서는 올 4월 기준 범죄율과 안전도가 필리핀이 한국보다 취약하다. 그러나 ‘밤에 혼자 걸을 때의 안전도’는 필리핀이 한국보다 떨어지지만 ‘낮에 혼자 걸을 때의 안전도’는 필리핀이 한국과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즉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안전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필리핀 제2의 도시인 다바오는 필리핀의 평균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보다 범죄율이 낮고 안전도가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지역에 따라 안전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는 게 필요하다. 위험한 곳에 가지 않고 범죄로 피해볼 우려가 있는 행동을 안 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공항 일대에서 강도나 납치를 계획하고 외국인을 골라 태우려는 택시를 피하려면 '공항 택시'를 타면 된다. 안전도가 매우 높은 선진국에서도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사건·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필리핀 빈민가 뒤로 신축중인 메트로 마닐라 건물. /사진=로이터

◆경제력 점차 향상

1960~1970년대에는 필리핀이 경제적으로 아시아 2위였지만 80년대 이후 추락해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이 3000달러대인 하위 중소득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난해 실질국내총생산이 전년 대비 6.2% 증가했으며 지속적인 경제개혁과 해외투자에 힘입어 빈곤율이 줄고 있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빈곤율이 2015년의 27.6% 대비 6.6%포인트 감소한 21.0%로 내려왔다. 수도가 위치한 루존섬이 15.6%로 가장 낮은 빈곤율을 나타냈다. 지속적인 성장정책으로 현재 2000만명에 달하는 빈곤층을 2022년까지 100만명 수준으로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을 경제기획부에서 발표했다. 재무장관은 대규모 인프라 개발 계획 '빌드 빌드 빌드'로 경기부양을 도모해 세계에서 돋보이는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서 빠르면 올해부터 상위 중소득 국가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재 정책의 초점이 건설경기 활성화와 중산층 확대를 위한 세제개혁 등 경제성장에 맞춰져 있으므로 중산층 소비 증가와 새로운 일자리 500만개 창출로 구매력이 늘면서 소매 내수시장 전망이 밝다고 평가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지난달 30일 필리핀에 역대 최고 등급인 BBB+를 부여했다. 그 배경을 ▲강력한 성장세 ▲정부의 건실한 재정 ▲낮은 공공부채 ▲건전한 외부환경이라고 밝혔으며 이러한 발전성과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9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는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6.5%로서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보다 높다. 이는 요즘 투자열기가 상당히 높아진 베트남의 성장률 전망치와 같아 장기적 관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2호(2019년 5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 0%
  • 0%
  • 코스피 : 2055.80하락 11.8918:03 05/17
  • 코스닥 : 714.13하락 3.4618:03 05/17
  • 원달러 : 1195.70상승 4.218:03 05/17
  • 두바이유 : 72.21하락 0.4118:03 05/17
  • 금 : 72.46상승 0.4218:03 05/17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