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만족이라도… ‘ASMR’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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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인터넷방송을 시청 중인 직장인. /사진=뉴스1 DB


# 직장인 김나은씨(27)는 유튜브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다.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됐다. 김씨는 아무 생각 없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이나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콘텐츠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말한다.

ASMR의 매력은 힐링과 위로다. 각종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먹방 ASMR 등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청각 중심의 ASMR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ASMR은 파도가 치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빗방울 소리 등을 제공한다. 힐링을 얻으려는 청취자들이 ASMR의 소리를 들으면 이 소리가 트리거(trigger)로 작용해 ‘팅글’(tingle·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을 느끼게 한다.

최근 바쁜 삶으로 인해 불면증이나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이 ASMR에 환호하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과 느림, 명상으로 대표되는 ASMR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다.

대부분의 ASMR 콘텐츠는 ‘먹방’이다. 식탐을 자극하고 다이어터에게 대리만족을 안긴다. 최근 국내 한 유튜버가 올린 ‘미니피그 먹방’은 일반적인 반려동물이 아닌 돼지의 먹방 ASMR이라는 신선함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ASMR 콘텐츠를 청취 중인 유저. /사진=뉴스1 DB


◆ASMR, 언제부터 유행했을까

지상파에서도 ASMR은 자주 활용되는 소재이자 기법으로 각광받는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이 독설 ASMR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ASMR 콘텐츠는 언제부터 유행했을까. 사실 ASMR은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의 OTT 플랫폼이 아닌 광고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으로 알려졌다.

2013년 쏘나타 더 브릴리언트 편이 ASMR 기법을 활용한 광고 중 하나다. 이 광고를 보면 자동차 안에서 경험해 본 감성적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대부분의 TV광고와 다르게 소리에 집중한 ASMR CF로 볼 수 있다.

해당 광고의 내레이션은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어 보길 권유한다. ‘비가 오는 날 목적지에 도착한 후 시동을 끄고 30초만 늦게 내려 본다면 선루프의 전혀 다른 매력을 발견할 테니’라는 문구와 함께 30초간의 감성 힐링을 소개한다.

◆현대인들이 ASMR을 택하는 이유

ASMR을 찾는 이들의 공통점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살펴보면 지친 현대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 현대인들은 ASMR을 통해 그나마 심리적 위안이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 발표한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41분으로 나타났다. 평균(8시간22분)보다 41분 정도 부족한 수치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직장인의 수면시간은 더 짧은 6시간6분에 그쳤다.

잠자는 시간뿐만 아니라 잠의 질도 문제다.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한국인은 2010년 28만명에서 이듬해 30만명을 돌파했고 2015년엔 45만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40만명을 넘겼다. 수면제 처방도 2014년 126만4000건에서 2017년 159만8000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20·30대를 가리키는 말로 ‘무민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없다’는 뜻의 한자 ‘무’(無)와 ‘의미하다’는 뜻의 단어 ‘mean’을 합친 말로 맥락도 의미도 없는 것을 추구한다는 신조어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자신이 무민세대라고 생각하는 20대는 47.9%, 30대는 44.8%에 달했다. 2030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본인을 무민세대로 인식하는 셈이다. 이들 가운데 60.5%는 자신이 무민세대인 이유를 ‘취업·직장생활 등 치열한 삶에 지쳐서’라고 꼽는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높은 스트레스, 낮은 삶 만족도,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간다.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활동에 집중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추세다. 직접체험이 불가능한 현대인은 인터넷방송으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어서다.

지난 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OTT 이용률은 2015년 35%에서 2016년 36.1%, 지난해 42.7%로 증가했다. OTT 서비스 이용기기로는 스마트폰(93.7%)이 압도적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ASMR로 ‘음식 먹는 소리’를 꼽은 직장인 서동규씨(32)는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먹방 ASMR이나 애완견 영상 콘텐츠를 통해 대리만족한다”면서 “취미생활이나 친구들과 만나고 싶어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쉽지 않은데 ASMR 등의 콘텐츠는 평일의 유일한 낙이다. 출퇴근길, 점심시간, 잠들기 전 시간에 짬을 내서 보는 나만의 소소한 재미”라고 설명했다.

자극적이고 정신없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의 욕구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환경과 만나면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ASMR 등 스마트폰을 통한 힐링 콘텐츠는 이제 우리의 일상에 빼놓을 수 없는 안식처이자 탈출구로 자리잡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2호(2019년 5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류은혁 ehryu@mt.co.kr

머니S 류은혁 기자입니다. 이면의 핵심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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