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국보 1호 연기로 날려버린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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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화낼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화나는 것을 참는 사람은 현명하다.” - 영국 속담

화병은 질병의 정식 명칭이 아니지만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저하돼 우울감, 불면, 식욕저하나 폭식, 소화불량, 알코올 의존증을 비롯해 각종 정신적·신체적 합병증을 가져올 수 있다.

주부 중에는 “아이 낳은 뒤부터 남편에게 화내는 날이 늘어났어요. 남편과 싸운 후에는 냉장고 열고 닥치는 대로 먹었어요. 폭식으로 살이 찌고 식습관도 변했어요. 아침에 아이가 사소한 일로 짜증내며 등교 준비를 일부러 늦게 하고 심술 내고 나갔는데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무엇이라도 먹고 싶어지더군요. 제 자신이 동물 같고 비참한 기분이 드는데 고쳐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화가 나서 폭식으로 살이 찌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 화가 날 때 따스한 차를 한잔 마시며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일기를 쓰는 등 건설적인 방법으로 화를 다스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도 많다.

◆화의 결과는 가지각색

“분노는 대단히 비싼 사치다.” - 이탈리아 속담

돈 쓰는 것으로 화를 해소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2019’(신한은행)에 따르면 직장인의 86%가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홧김 비용’으로 월평균 20만7000원을 쓴다고 답했다. 여성은 홧김에 의류를 구매하는 비용(5만1500원)이 남성(2만4200원)의 2배가 넘었다. 남자는 외식·음주(63.3%), 게임·스포츠·취미용품 구매(34.8%)에 여성보다 각각 1.5배, 3배 많이 썼다. 여자는 의류·잡화·액세서리 구매(55%), 외식·음주(53%), 군것질(52.3%) 순으로 많이 썼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소비가 늘어나서 저축은 줄어들게 된다.

“노여움은 무모함으로 시작하여 후회로 끝난다.” - 피타고라스

결혼이나 이혼이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배우 김형자는 ‘인생다큐 마이웨이’(TV조선, 2018년 7월5일)에서 첫사랑의 실패로 홧김에 결혼했다고 고백했다. 원래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집안에서 ‘딴따라는 절대 안 돼’라고 극구 반대해 관계가 끝났고 너무 속상해 ‘누가 잘되나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다고 한다. 헤어지고 얼마 안 돼 보란 듯이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김청은 12살 연상의 사업가와 1998년에 결혼했다가 신혼여행 직후 이혼하게 된 사연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MBC, 2019년 1월29일)에서 공개했다. ‘남자의 어머니가 제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눈빛이 달라지더라. 홧김에 그 남자에게 못되게 굴어서 결국 헤어졌다’며 결혼 3일 만에 파경한 이유를 밝혔다.

“모욕을 받고 이내 격분하는 사람은 깊은 강이 아닌 조그만 웅덩이다.” -톨스토이

화날 때면 욕하는 사람이 많다. 운전하다가 화나는 상황에 부딪히면 욕부터 내뱉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욕설을 자제하지 못해 고소당하는 사태로까지 갈 수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경적을 울린 여성운전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은 남성이 모욕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례도 있다.

인터넷과 SNS가 활발해진 시대에 댓글로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합의금을 노린 악성 고소인의 덫에 걸려 피해를 보는 이도 생겨난다. 어떤 대학생이 팀을 이뤄 전투하는 온라인게임에서 다른 참여자들을 화나게 해 욕설을 유도한 뒤 고소하고 채팅창에서 이를 갈무리한 게임화면을 증거로 제출해 상습적으로 합의금 받아내며 돈을 벌다가 들통이 났다. 사회적 문제나 정치인들의 행태에 화가 난다고 익명성에 숨어 인터넷 기사와 각종 글에 익명성에 숨어 악플을 다는 네티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때의 울분이 평생을 그르칠 수도

“한때의 분함을 참아라. 백날의 근심을 면하리라.” - 명심보감

분노가 범죄행위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다. 11년 전 일어난 국보 1호 서울 숭례문 화재는 자신의 땅 토지수용에 따른 보상금에 화가 난 70세 남성이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 것이 원인이었다. 최근 한달 사이에도 언쟁하다 화가 나서 연인이 운영하는 모텔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지른 50대, 아들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홧김에 전신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한 아버지, 술값 시비 끝에 화가 나서 손님 엉덩이를 흉기로 찌른 가요주점 주인,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홧김에 차 안에서 흉기로 찌른 뒤 내려주고 도주하는 과정에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남자에 관한 이야기 등이 보도됐다.

심지어 한국의 살인·살인미수 사건 10건 중 4건이 분노에 따른 우발적 범행이다. 2017년에 발생한 살인·살인미수 905건 가운데 순간 화를 참지 못해 발생한 사건은 357건(39.4%)이나 되며 4년 연속 증가세다. 형사정책연구원은 ‘한국인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보고서에서 “불특정 대상에 가해지는 ‘묻지마 범죄’에 이어 ‘분노 범죄’가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집단의 감정혼란 상태도 사회적 불안과 극단적인 사건 사고를 야기한다고 진단한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산업에 의해 밀려나는 사람들은 옛날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이에 따라 불거지는 사회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실제 물질적 수준에 비해 자신의 계층적 위치를 더 낮게 인식하게 만든다. 주관적 계층인식이 낮으면 사회 비교를 부정적으로 하게 되고 스트레스가 높은 불건강한 상태가 된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센터장 최인철 교수)의 기획과제 ‘한국사회의 울분’에서는 2018년 기준 국민 54.6%가 울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의 43.7%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울분 측정은 ‘외상후울분장애’(PTED) 자가진단 문항 19개를 활용했다. 조사 대상 2024명 중 ‘중증 울분’으로 분류된 사람은 15%에 달하여 독일(2.5%)에 비해 무려 6배나 높게 나타났다.

◆울분의 원천은 배반

한국인이 가장 많이 경험한 부정적 생애사건은 ▲꾸준히 잘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져버림(52.2%) ▲가까운 친구 또는 친지가 사망함(51.1%)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음(47.3%) ▲믿었던 상대에게 크게 배신을 당함(40.8%) 등으로 나타났다. 연구책임자 유명순 보건대학원 교수는 울분을 잉태하는 원천은 배반이라고 했다.

“작든 크든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하는데 배신감이 누적되면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낮아진다. 그런 상태에서 이혼, 실직, 사업 실패 등 부정적 사건을 많이 겪으면 울분은 점점 커진다. 울분이 높은 사람이 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뢰사회를 아무리 강조해도 울분을 낮추지 않으면 헛일이다.”

남성과 여성의 비교에서 남성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 마땅히 책임져야 할 자들이 빠져나가는 경우, 그래서 복수심을 느끼게 하는 일에 크게 울분하고 여성은 감정에 상처를 주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에 더 크게 울분했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정도로, 적절한 목적으로, 적절한 방법 안에서 화를 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 아리스토텔레스

과거 대가족일 때는 웃어른과 형제에 의해 분노가 적절하게 통제됐고 참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한자녀 출산 등으로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면서 분노 사건이 늘어났다. 특히 한자녀 가정에서 외아들, 외동딸의 말을 부모가 다 들어주면 아이는 참는 훈련이 부족한 상태로 어른이 된다. 화를 자주 내면 뇌의 변연계에 분노 학습이 이뤄진다. 성격장애자가 아닌 보통 사람도 화가 많이 나면 괴물처럼 변신하면서 이성을 잃기도 한다. 화를 쌓으면 화병이 되고 화를 내면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준다. 개인적으로 화를 다스리고 소화해 내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오래전부터 현인들은 좋은 말들을 남겼다.

“몹시 화가 나거나 비통할 때는 인생은 짧으며 우리 모두 곧 무덤 안에 누워 있게 될 것을 상기하라.” -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다고 해서 노여워하지 마라. 왜냐하면 당신도 당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토마스 아 켐피스

“분노를 없애려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움직이거나 혀를 움직이는 순간 분노는 커지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주위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바로 화를 내는 당사자이다.” - 톨스토이

“조금 화가 나면 행동을 하기 전에, 또는 말을 하기 전에 열을 세라. 몹시 화가 났을 때는 백을 세라. 화가 나면 날 때마다 이 사실을 상기하면 숫자를 셀 필요조차 없어진다.” - 톨스토이

☞ 본 기사는 <머니S> 제593호(2019년 5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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