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의 그래픽저널] 퇴직연금의 ‘착한’ 옵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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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철학자로 세계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 도올 김용옥 선생의 서양 철학사 강의를 들어보면 탈레스의 이 같은 주장은 ‘신’ 중심의 세상에서 벗어난 철학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 생각의 무게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탈레스는 기원전 625년에 그리스 밀레토스에서 출생했다. 40대에 일식을 예측하고 피라미드의 높이를 구하기도 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다. 그런데 이 철학자가 2600년이 지나 현대 금융을 지배하는 첨단 금융기법을 이용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한다. 바로 ‘옵션’이다.


/사진제공=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옵션’의 부정적 이미지

탈레스는 생전에 철학이 쓸모없다는 조롱을 받은 후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겨울 논한기에 약간의 보증금을 주고 올리브 압착기 사용 권한을 미리 계약했다. 경쟁자가 없어서 적은 돈으로 여러대의 기계를 확보했는데 올리브 수확철이 되자 수요가 몰렸다. 그는 비싸게 기계를 임대해서 큰돈을 벌었다. 철학자가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일화를 인용해 철학자도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이런 것을 초월한다는 교훈을 전하려 했다.

탈레스 일화에는 ‘콜옵션’(Call Option)의 정확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소액 보증금으로 미래의 사용 권한을 사고 가격이 유리하게 상승할 때 그것을 행사해서 차익을 버는 것이다. 옵션은 등장시점부터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듯싶다.

이후 옵션으로 주목 받는 사건이 최초의 금융 버블로 알려진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투기 사건이다. 튤립 가격이 상승하자 투기 목적으로 피어나지도 않은 튤립을 꽃필 때 먼저 살 수 있는 권리를 소액으로 미리 구매하는 콜옵션이 성행해 튤립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결국 튤립가격이 폭락하면서 튤립투기 사건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역사는 나쁜 옵션의 기억이 많다.

옵션이란 단어는 한국에서도 부정적인 역사로 몇번 등장했다. 2010년 11월11일 옵션쇼크는 국내 역사상 가장 비싼 옵션으로 기록된다. 글로벌투자은행인 도이치뱅크가 한국 증권시장에서 주가지수가 하락하면 막대한 수익을 발생시키는 풋옵션을 사놓고 장외마감 시간에 주식을 대량 매도해서 주가를 폭락시킨 사건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사건도 탐욕으로 감춰진 콜옵션이 문제의 발단이다. 옵션이란 금융기법은 탐욕과 광기로 얼룩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까지 금융에서 얘기되는 옵션은 나쁜 옵션이다.

◆‘디폴트 옵션’ 손실 시 사업주 책임은

그러나 최근 착한 옵션이 금융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이다. 옵션이란 단어도 어려운데 디폴트라는 생소한 단어가 하나 더 붙어있다. 정부나 여당 국회의원들이 퇴직연금의 흑기사라고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 알아봐야 할 듯싶다.

디폴트 옵션이 등장한 이유는 이렇다. 퇴직연금 적립규모가 190조원이나 되는데 그 수익률이 형편없다는 문제가 그것이다. 근로자들이 직접 운용하도록 한 퇴직연금이 근로자들의 무지 또는 태만으로 운용하지 않고 방치돼 있어 자산운용사가 대신 이 자금을 운용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장기 적립이 필요한 금융상품이니 수익률이 조금만 개선돼도 가입자에게는 큰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근로자가 포기한(default) 자산운용권한(option)을 사업주가 장기간 자동 운용하는 자산운용상품에 맡기되 손실이 발생해도 면책권을 줘야한다는 제도적 취지인 것이다. 미국의 개인퇴직연금제도 401k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착한 옵션’으로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옵션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각종 기기에서 표준 장치 이외에 구입자의 기호에 따라 별도로 선택해 부착할 수 있는 장치나 부품. 선택, 선택 사항 2)선물 거래에서 일정 기간 내에 특정 가격으로 상품, 주식, 채권 등을 팔거나 또는 살 수 있는 권리 두가지로 정의된다.

주로 나쁜 옵션은 2)번 정의였고 착한 옵션은 1)번 정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착한 옵션’으로 홍보되는 디폴트 옵션은 권리의 포기를 전제로 하니 ‘착한’이라고만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정서도 생긴다.

◆옵션보다 금융교육 선행돼야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디폴트 옵션은 근로자는 금융에 무능력자이고 이에 따라 권리 포기가 합리적이라는 논리가 정책의 배경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히 생각할 것은 근로자들이 권리를 포기하고 맡길 만큼 현 금융시스템이 신뢰감 있는지도 먼저 점검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금융산업이 고객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리인 문제’가 디폴프 옵션을 또 하나의 나쁜 옵션으로 만들 확률은 꽤 큰 것으로 보인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고 했다. 강남쪽의 귤이 북에 심으면 귤이 아닌 탱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의 제도가 우리에게 같은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근로자나 국민 등에게 적절한 금융교육을 해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아마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인이기에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금융소비자가 자주적으로 책임있게 금융상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금융산업을 활성화 하고 금융소비자의 퇴직연금 수익률도 제고하며 대리인 문제의 비용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또 하나의 나쁜 옵션을 만드는 상황을 연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쁜 옵션의 피해자는 언제나 금융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595호(2019년 6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조수연 jwj17@mt.co.kr

머니S 금융증권부 장우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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