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가위로 자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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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예찬-중] 북한과는 다른 ‘면스플레인’


냉면이 인기를 끌게 된 본격적인 계기는 지난해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냉면을 먹는 만찬회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국내 냉면집들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정상회담 즈음인 지난해 4월27~29일 신한카드의 평양냉면 가맹점 카드사용량은 직전 4개 주간 평균보다 약 8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사용률이 도드라졌다. 롯데슈퍼가 같은 기간 냉면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상회담 사흘 전(지난해 4월 24~26일)보다 73.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평양냉면은 실향민 1세대가 망향의 슬픔을 달래던 음식이다. 1970년대 실향민 2세대와 베이비붐세대가 제2의 부흥을 이끌었고 지난해 열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평양냉면에 입문한 20~30대 젊은층이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줄서서 평양·함흥냉면을 먹었다는 인증샷이 도배됐다.

최근에는 ‘면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냉면과 ‘익스플레인’(explain·설명하다)의 합성어로 냉면은 반드시 어떻게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언행을 의미한다.

◆평양냉면 열풍… 먹는법 따로 있다?

평양냉면에 대한 대표적인 면스플레인은 ▲평양냉면은 물냉면이 진짜 ▲가위로 면을 자르지 말 것 ▲식초, 겨자, 다대기(양념장)는 넣지 않을 것 ▲쇠젓가락이 아닌 나무젓가락으로만 먹을 것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면스플레인은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북한 옥류관 냉면이 공개되면서 수정됐다. 나무젓가락이 아닌 쇠젓가락을 이용했고 국내에서는 뿌려먹지 말라던 식초와 곁들여 양국 정상이 평양냉면을 흡입(?)하던 모습이 전세계에 전해진 것.

지난해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김 위원장은 쇳젓가락을 든 채 냉면에 양념장만 넣고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식초, 겨자와 함께 양념장을 곁들인 채 냉면을 즐겼다.

이 장면은 평양냉면을 즐겨먹던 ‘평뽕족’(평양냉면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0년째 평양냉면을 즐겨먹는다고 밝힌 직장인 한기호씨(31)는 남북정상회담 뒤 주변으로부터 ‘아는 척했다’는 핀잔만 들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전까지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 식초나 겨자 등 양념장을 넣는 것은 평양냉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양념 없이 그대로 먹을 것을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사람들의 평양냉면 먹는 법이 알려진 뒤로는 (평양냉면에 대해) 아는 척을 안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 평양냉면이 나온 뒤 양념장을 넣기 위해 양념통을 짚어든 순간 자칭 평양냉면 전문가인 지인이 “먹을 줄 모르네”라며 혀를 찼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고기육수와 양념장이 만나면 맛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주변을 의식하며 맹물처럼 맹맹한 평양냉면을 음미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 대기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함흥냉면 vs 평양냉면

함흥냉면은 어떨까. 함흥냉면은 이북 함흥에서 녹말가루로 면을 뽑아 만든 ‘농마’(녹말)국수가 시초다. 농마는 녹말의 북한 사투리다. 

녹말의 재료는 감자이며 함경도를 대표하는 식재료다. 함경도는 감자를 재배하기에 지리적으로 적합했고 크기나 품질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때 함흥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남한에 터를 잡고 녹말 대신 고구마나 메밀로 국수를 만들고 홍어나 가자미를 양념해 매콤하게 만든 냉면은 주인장의 고향에서 이름을 따 ‘함흥냉면’으로 불렸다. 특히 피란민이 많이 살았던 서울 중구 오장동이 함흥냉면의 ‘중심지’로 꼽혔다.

평양냉면 열풍이 불고 있어도 함흥냉면은 여전히 대중이 선호하는 냉면이다. 가늘고 쫄깃한 면발과 시원하고 구수한 사골육수는 고깃집 후식냉면으로 안성맞춤이다. 적당한 식초와 겨자는 느끼한 고기맛까지 지워준다.

함흥냉면은 평양냉면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냉면음식의 쌍두마차다. 많은 사람들은 둘의 차이를 육수에 말아먹는 것을 평양냉면, 양념에 비벼 먹는 것을 함흥냉면으로 알고 있지만 둘의 차이는 국수의 재료에 있다.

함흥냉면이 감자나 고구마의 전분 등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를 사용한다면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 뽑은 면발이 주된 재료이다. 함흥냉면의 특징은 국숫발이 쇠심줄보다 질기고 오들오들 씹히는 데 있으며 평양냉면의 메밀면은 부드럽다.

◆냉면은 여전히 '진화중'

여름 별식으로 알려진 냉면은 사실 겨울 음식이다.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꽁꽁 언 동치미 국에 냉면을 말아먹었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던 과거에는 저장시설이 발달되지 않아 가을에 수확하는 메밀이나 감자전분을 보관할 방법이 없어 겨울에 냉면으로 만들어 먹은 것.

냉면을 차갑게 먹은 이유는 온돌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겨울철이면 불을 때서 방바닥을 데우는데 온도 조절이 어려워 방바닥이 뜨거워진다. 이때 차가운 냉면으로 더위를 식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조선후기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겨울철에 무, 배추,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얹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면서 겨울 계절음식인 냉면은 평안도가 으뜸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깊은 역사를 가진 냉면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고기와 함께 싸먹는 ‘육쌈냉면’부터 오이가 듬뿍 들어간 오이냉면, 돈가스를 올린 ‘돈가스냉면’까지 특색 있는 냉면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한국인의 면식 사랑은 나날이 깊어가는 듯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6호(2019년 6월11~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류은혁 ehryu@mt.co.kr

머니S 류은혁 기자입니다. 이면의 핵심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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