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여섯 보물과 여덟번째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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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노고단, 되살아나는 지리산
'산문' 활짝 연 천은사 보물 추가지정
지리산 8경 '노고단 운해'는 '선경'

노고단에서 바라본 지리산 운무. 노고단 운해는 지리산 8경의 하나다. /사진=박정웅 기자
지리산은 지혜의 산이다. 어리석은 자가 이 산에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해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그 품이 따뜻하고 깊어 백두대간의 산 중 어머니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여수의 14연대 등 ‘산사람’까지, 지리산은 품지 못할 게 없었던 듯하다. 지리산만 지혜롭고 품이 넓은 게 아니었다. 한동안 헐벗고 굶주린 이 산을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으로 만든 구례 사람들의 혜안도 넓었다.

​지리산의 서쪽 끝을 찾았다. 전남 구례군 노고단(老姑壇·1507m)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 중 하나다. 노고단은 영봉(靈峰)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노고단의 우리말은 ‘할미단’인데 할미는 국모신을 가리킨다. 그런 영봉을 스키장이나 캠핑장으로 오용한 눈먼 시절도 있었다.

◆32년 만에 폐지된 천은사 입장료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천은사. /사진=박정웅 기자
노고단을 32년 만에 개방된 ‘산문’(山門)을 통해 올랐다. 이곳에서 산문은 산(지리산)의 어귀인 동시에 산사(천은사)의 바깥문이다. 신성한 노고단을 오르는 지리산국립공원에 누가 빗장을 걸어놨을까. 지난 4월29일 천은사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가 폐지됐다. 화엄사의 말사인 천은사는 화엄사와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이다.

​천은사 앞길은 노고단 탐방로 시작점인 성삼재로 이어진다. 천은사는 지리산횡단도로(지방도 861번) 길목에 매표소를 설치해 입장료를 받아왔다. 1987년부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관람료를 국립공원 입장료와 함께 징수해왔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2007년 이후에도 징수는 계속됐다. 조계종 ‘땅’(사유지)임을 강조하면서 문화재를 유지·관리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것.

​32년 만에 산문이 개방된 천은사의 지방도. /사진=박정웅 기자
명목도 문화재 관람료에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로 바꿔가면서까지 천은사는 ‘산적 통행료’ 원성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법원은 등반객들의 손을 두번이나 들어줬다.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와 법원 패소 판결에도 ‘입장’을 고수한 천은사는 최근 반가운 ‘카드’를 받았다. 전남도 등 지자체가 매표소가 있던 천은사 소유의 지방도 땅을 매입한 것.

​이 협약에는 천은사를 비롯해 전남도, 구례군, 환경부, 문화재청 등 8개 기관이 서명을 했다. 말이 ‘상생협약’이지 국민 세금으로 산적 통행료를 ‘돌려막기’했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천은사에 내린 또 하나의 선물

​지난 5월 보물로 지정된 천은사 극락보전. /사진=박정웅 기자
천은사에 또 하나의 선물이 날아들었다. 지난달 25일 문화재청이 후불탱화와 삼장보살도를 품은 극락보전을 보물로 지정한 것. 2개의 보물을 간직한 주불전도 보물이 된 셈이다. 극락보전은 유려한 곡선의 지붕과 화려한 단청, 다포식 불전의 특징을 인정받아 보물 제2024호로 지정됐다.

​극락보전의 건축학적인 아름다움은 한류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극락보전 오른쪽에 촬영지임을 나타내는 안내판이 설치됐다. 안내판은 한때 ‘남방 제일 선찰’이라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번 극락보전의 보물 지정으로 천은사는 금동불감, 관세음대세지보살좌상, 괘불탱까지 6개의 보물을 자랑하게 됐다.

​원교 이광사가 물 흐르듯 쓴 천은사 일주문 현판. /사진=박정웅 기자
천은사의 규모는 크지 않다. 때문에 산사 전체를 둘러보는 데 다리품을 크게 팔지 않아서 좋다. 일주문부터 수홍루와 피안교, 극락보전, 그리고 응진전·팔상전·관음전까지 반나절이면 족하다. 아담한 산사에서 미술, 조각, 건축 등 불교문화의 진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게 천은사 탐방의 매력이다. 특히 극락보전의 뒤편에서는 지리산과 산사의 아름다운 조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석축으로 올린 팔상전과 관음절 뜰에서의 망중한은 오래 즐겨도 좋겠다.

​입장료의 씁쓸한 뒷맛은 천은사의 샘에서 풀어내자. 일주문의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현판은 조선의 4대 명필인 원교 이광사의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알려져 있다. 무슨 사연일까. 천은사 사찰명은 샘이 숨었다는 뜻을 간직했다. 본래는 감로사(甘露寺)로 창건됐는데 중창 과정에서 샘이 사라져 천은사라고 했다고 한다. 샘이 숨어버렸으니 화재가 잦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체로 현판을 고쳐 쓰니 화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비 그친 천은사 산사의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전설은 전설일 뿐, 산과 골 깊은 지리산에 물이 없을까. 천은사의 샘물은 예나 지금이나 마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수홍루를 인 피안교를 건너면 달달한 감로수가 반긴다. 감로수는 계곡물과 함께 천은사 저수지에 모였다가 구례 농토를 적신 뒤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지리산 8경 ‘노고단 운해’

성삼재휴게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성삼재. /사진=박정웅 기자
천은사 입장료만큼이나 지리산횡단도로(지방도 861번) 또한 말이 많았다. 지역민에 따르면 이 도로는 군사정권의 산물로 알려졌다. 이른바 공수부대(특전사)의 작전도로인데 그 쓰임을 떠나 지리산의 맥을 끊어놨다는 후문이다. 개통 시점은 1988년이니 아이러니하게 산문 통행료 징수 시기와 엇비슷해 각종 추측이 꼬리를 문다.

그럼에도 지리산을 오르는 데 이만한 편안한 길도 없다. 노고단의 초입인 성삼재(性三峙·1092m)까지 자동차로 편히 오를 수 있다. 하이힐 차림으로 지리산 정상을 거뜬히 올랐다는 얘기는 이 도로 덕분이다. 천은사에서 성삼재까지 10㎞ 구간은 국내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다만 헤어핀과 경사가 심해 안전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노고단 운해. /사진=박정웅 기자
노고단 정상. 돌탑 오른쪽으로 지리산 3대 봉우리인 반야봉과 천왕봉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노고단 운해는 지리산 8경의 하나다. 특히 서쪽 섬진강쪽에 펼쳐지는 아침 운해는 장관이다. 송신탑 왼쪽에 장관을 맞이할 전망대가 있다. 정상 돌탑에 서면 동쪽으로 반야봉과 천왕봉 등 지리산 주봉들이 늘어서 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5.4㎞의 탐방로가 이어진다. 4㎞ 부근의 노고단대피소에서 하루를 쉬어갈 수 있다. 대피소 왼쪽 사면에는 1920년대 지어진 서양인(선교사)의 별장 형태의 피서지가 뼈대만 남아 있다. 덥고 습한 여름철에 머물던 곳으로 벽난로 흔적이 지금도 역력하다.


노고단대피소 인근의 서양인 피서지. 건물 뼈대만 남았다. /사진=박정웅 기자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상시 개방된다. 대피소에서 700m를 오르면 노고단고개다. 직진하면 반야봉과 천왕봉 방향이다. 오른쪽 개찰구를 지나면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로다. 노고단고개까지는 제약이 없다. 계단이 있는 이정표 외에 교통약자도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또 탐방 인원에 대한 제약은 없다.

​반면 개찰구를 지나 노고단 정상으로 가려면 인터넷(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사전 예약해야 한다. 환경파괴를 한 대가다. 헐벗은 정상부를 복원하는 과정이어서 일일 탐방 일원을 제한한다. 아울러 탐방로를 벗어나는 몰상식한 행위 또한 엄격히 금지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7호(2019년 6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구례(전남)=박정웅 parkjo@mt.co.kr

자전거와 걷기여행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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