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알바’ 갔다가… 나는 ‘그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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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친절한 목소리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탄 내는 사건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이야기다. 지난 십수년간 국제적 보이스피싱 범죄 집단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조직화‧전문화 되는 과정을 거쳤다. 아마추어 같았던 사기꾼의 촌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IT) 활용 능력까지 갖추니 신출귀몰한 경쟁력까지 겸비하게 됐다. 이에 반해 당국의 대응은 늘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머니S>가 교묘해진 보이스피싱 수법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예방법을 알아봤다. <편집자주>

[진화 거듭하는 ‘그놈 목소리’-②] 대책 없는 피해자 ‘예방·구제’


#주부 A씨는 SNS로 ‘마사지 숍에서 남편이 찍힌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동영상을 사지 않으면 남편의 회사 사이트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며 인터넷주소(URL) 메시지를 보냈다. 놀란 A씨는 URL을 클릭해 간편결제 화면에서 동영상을 결제했다. 그러자 김씨의 계좌에선 돈이 전부 빠져나갔고 OO페이로 거액의 상품권이 결제됐다. URL 주소를 자세히 살펴보니 ‘PAY’가 ‘PEY’로 ‘NAVER’는 ‘NEIVER’로 표기된 가짜였다. 마사지숍 주인은 보이스피싱 범죄자였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진화하고 있다. 어눌한 조선족 말투는 사라진지 오래다. 악성 프로그램 활용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OO페이로 위장해 신용카드나 계좌번호를 빼내는 등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출처 불명의 파일을 실행한 피해자의 통장은 어느새 범죄행위 과정의 대포통장으로 악용되고 있다. 피해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에 검찰, 경찰, 금융당국도 속수무책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거대해진 범죄 조직, 대포폰 규제 소홀

최근 보이스피싱은 체계적인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하나의 조직이 콜센터를 관리하면서 현금인출팀, 대포폰 및 대포통장 공급팀, 해킹 어플팀, 전화번호 조작팀, 사칭 홈페이지 제작팀 등 여러 네트워크와 계약을 맺고 범죄를 저지른다.

조직을 구성하고 범행을 지시하는 주범, 일명 ‘총책’은 주로 해외에 거주하며 전체 조직을 지휘한다. 콜센터가 피해자를 낚으면 현금인출팀이 돈을 거두는 등 손발을 맞춰 착착 움직인다. 현금인출책이 대담하게 피해자를 직접 대면해 돈을 편취하는 사례도 많다. 대부분은 물품보관소에 맡긴 돈을 수거하는 형태다.

경찰이 검거하는 범죄자는 주로 현금인출팀이다. 이들은 서로 알지 못하고 조직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도 적다. 최근에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 경찰이 범죄현장에서 현금인출책을 검거해도 우두머리는 꼬리(외국인 인출팀)를 자르고 빠져나가기 일쑤다.



보이스피싱의 핵심장비인 대포폰 관리도 허술하다. 과거에는 노숙자나 대학생을 통신사 대리점에 직접 데려가 휴대폰을 개통한 후 대포폰을 만드는 형태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신원확인 절차가 허술하고 온라인으로 개통이 가능한 별정통신사의 선불휴대폰(알뜰폰)을 주로 사용한다.

이동기지국이나 인터넷전화를 활용한 대포폰 사기도 활개를 친다. 해외 인터넷전화는 ‘070’으로 시작하는데 전화번호 조작팀이 유심을 수백개 꽂을 수 있는 공유기를 활용해 ‘02’ 또는 ‘010’으로 바꿔버리는 꼼수를 주로 쓴다.

대포폰은 통신정책을 관할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선불폰의 가입회선 수를 제한하는 등 불·편법 영업 방지로 규제해야 하지만 감독기관은 손을 놓고 있다. 별정통신사 관리 역시 발신번호를 자주 바꾸는 사업자를 점검하는 수준에 그친다.

대포폰에 명의가 도용된 피해자 구제대책도 사후처리 수준이다. 과기부는 타인의 정보유출은 형사사건이므로 경찰이 수사하고 법원 판결이 있어야 관여할 수 있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알뜰폰업체는 새 휴대폰을 개통하면 문자나 우편으로 가입사실을 알린다. 보이스피싱에 알뜰폰이 악용되는지 여부에는 관심도 없다.

금융당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해외에 고객정보와 금융정보가 유출되면 사실상 감독하기 힘들다고 발을 뺀다. 외교부가 나서 여권무효 조치를 하고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해 국제공조 수사를 해야만 검거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 사이에 대포폰 범죄건수는 2014년 259건에서 3년 새 963건으로 3.5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금감원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으면 곧바로 경찰서에 “지급정지 신청을 하고 싶다”고 구두로 지급정지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사기이용계좌 지급 정지, 채권소멸 개시 공고, 채권소멸 확정, 환급액 결정 통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피해금 환급이 이뤄진다.

신청 후 3일 안에 해당 은행에 피해구제신청서, 신분증,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사건·사고 사실 확인서(피해 신고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부분 피해자들이 구제신청을 마치기 전에 범인이 돈을 인출해버리기 때문에 환급금을 전부 돌려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보이스피싱은 메신저를 활용한 피싱 등과 함께 결합해 피해자를 속이기 때문에 경찰청, 금감원, 과기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피해자 구제를 위해 유관부서가 함께 처벌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액 알바"에 낚여 범죄 가담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현혹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상당수는 검거된 후에야 자신이 범죄에 가담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순간에 인생을 망치게 된 것이다.

취업준비생 B씨는 단기알바를 알아보던 중 ‘비트코인 거래소’ 모집 광고를 발견했다. 코인거래자를 만나 서류에 서명하고 현금을 받아오는 단순한 일이었다. B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현금 전달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코인거래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였고 자신은 현금전달팀원으로 드러나 경찰에 체포됐다.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는 연령은 미성년자나 2030세대 등 젊은층이 많다.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들을 노린 것이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경찰서가 검거한 보이스피싱 일당 10명은 모두 미성년자였다.

최근 은행권에 지연인출 제도가 시행되면서 현금지급기(ATM) 인출이 어려워져 직접 사람을 기용해 돈을 찾는 수법이 주로 활용된다. 범죄 가담 미성년자들은 현금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본인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물건을 배달하거나 출금 심부름만 해도 범죄가담으로 최대 15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며 “초범이고 범죄에 단순히 가담했어도 공범으로 구속되기 때문에 청소년과 부모가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7호(2019년 6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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