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4차 산업혁명과 '포노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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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PC통신으로 사랑을 찾고 삐삐로 마음을 전하며 음성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던 우린 역사상 가장 젊은 인류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제3화 ‘신인류의 사랑’에 나온 나정의 내레이션이다. 당시 ‘015B’가 발표한 노래 '신인류의 사랑'은 선풍적인 인기로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를 했다. 신인류는 계속 변해간다. PC통신 동호회 멤버가 연인으로 발전했듯 이젠 페북 친구가 연인으로 발전한다.

통신 대화방에서 사랑을 교감하는 대신 인스타그램에서 연인 계정에 새로 올라온 사진이 있는지 엿보고 페이스북에서 사랑하는 이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지 않았는지 염탐한다. 삐삐로 마음을 전하는 대신 커플 전용 앱인 비트윈 앱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음성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는 대신 카카오톡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한다.

◆사랑의 풍속도까지 바꾼 스마트폰

스마트폰은 사랑의 풍속도까지 바꾸고 있다. ‘신인류의 사랑’에서는 “맘에 안 드는 그녀에겐 계속 전화가 오고 내가 전화하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라 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 잠수 타는 것으로 헤어지자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성 친구가 카톡을 읽었는데도 곧바로 답을 안 하면 무시당한 느낌에 기분이 나빠진다.

어떤 남자는 여자친구와 톡을 하다가 잠들어 실제는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것처럼 알림 숫자가 사라져서 상대가 오해하는 바람에 심하게 말다툼하고 헤어질 뻔했다.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를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불안감도 커졌고 쉽게 헤어지곤 한다. 커플이 만나서는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각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긴 경우도 있다.

신인류의 탄생은 무한궤도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015B의 0은 무한, 1은 한(하나), 5B는 궤도(orbit)에 해당해 015B란 무한궤도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초의 인류가 약 300만년 전 등장한 이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으며 또 무한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간이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살아가는 데 각종 도구와 수단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돌 자체를 도구로 사용하던 구석기시대로부터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드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지금 시각으로는 돌을 그냥 사용하느냐 갈아서 사용하느냐가 대단치 않은 차이 같지만 그 차이로 인류의 삶의 방식에 혁명적 변화가 나타났다.

돌로 도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사회적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노동의 성격이 채취와 수렵 등 채취노동에서 농업과 목축 등 잉여가치까지 생산하는 생산노동으로 발전했다. 잉여생산물 축적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분업이 이뤄졌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지 않고 농업과 목축을 위해 일정한 땅에 정착하는 삶으로 전환되고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형성됐다. 사람 사이에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돼 종족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4차산업혁명 중심은 AI·스마트폰

이처럼 도구의 발전은 사회 전반으로 파급효과를 가져오면서 역사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낸다. 돌은 청동기로, 다시 철기로 계속 진화해갔다. 석기로 우월한 위치에 있던 인류는 청동기를 사용하는 인류에 의해 밀려났고 철기를 사용하는 인류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근대에 증기기관의 발명은 1차 산업혁명을, 전기모터와 내연기관은 2차 산업혁명을, 인터넷은 3차 산업혁명을 야기했다. 4차 산업혁명은 IBCM(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모바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고 스마트폰이 있다.

돌을 쥐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던 인류의 손엔 지금 스마트폰이 쥐여져 있다. 2015년 3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포노 사피엔스’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 권위자인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가 저술한 <포노 사피엔스>는 예스24가 발표하는 종합 베스트셀러 2위(5월 5주)까지 오른 바 있다.

모토롤라와 노키아가 만들던 휴대폰이 구석기라면 애플이 만든 스마트폰은 신석기다. 본격적인 스마트폰 세상이 열린 것은 2007년 1월 아이폰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만들지도 않는다”는 정신을 지닌 스티브 잡스는 21세기의 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아이폰은 한명의 천재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도체 칩, 멀티터치, 강화유리, 카메라, 배터리, 무선통신, AI 등 여러 기술들이 종합적으로 집약돼 만들어진다. 수많은 엔지니어가 매달려 연구에 몰두하고 서로 다른 영역들 사이의 협업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획기적인 신종 도구들이 그랬듯이 스마트폰도 기존 산업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야기했다. 유통, 언론, 방송,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에서 스마트폰이 주요 수단이 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백화점, 신문사, 방송사, 음반사, 은행 등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파산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오프라인 마트에 가지 않고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공중파TV를 보지 않고 입출금하러 은행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형 백화점이 문을 닫고 100년 전통의 <타임>은 파산 후 인수되고 한국씨티은행은 수십개 지점을 폐쇄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의 필수매체로서 스마트폰의 중요도는 57.2%에 달했다. 분야별로는 정보검색·전달(77.3%), 커뮤니케이션(72.7%), 미디어콘텐츠(44.4%) 순이었다. 재해·재난 등 비상상황에서 의존 매체로 꼽은 비율은 스마트폰(64.6%)이 TV(32.1%)의 2배였다.

스마트폰을 통해 67.6%가 신문·잡지 기사를 검색했고 21.6%가 음악을 들었으나 TV프로그램 시청은 5%에 그쳤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던 지상파 KBS는 작년에 585억원 적자, MBC는 123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가중될 것이다.


서울광장 인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보행 중 스마트폰 주의 표지판.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신세계 펼치는 포노 사피엔스

반면에 포노 사피엔스들의 행동패턴을 파악하면서 신사업을 펼치는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며 글로벌기업으로 부상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등 플랫폼 비즈니스모델 업체는 시가총액 수백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모바일 기반 비즈니스가 계속 나왔다.

차량공유 플랫폼 업체 우버는 창업한 지 7년밖에 안되는데 올해 5월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서 미국 자동차 '빅3' 시가총액을 합친 금액보다 커졌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와 사무실공유기업 위워크, 빅데이터 분석기업 팰런티어 등도 상장이 예상된다. 세상의 변화와 달리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로 사업 전개에 애로점이 있다고 IT 업계는 토로한다.

<포노 사피엔스>에서는 “화두가 되는 경제정책을 보면 시장을 이념적으로 컨트롤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혁명시대의 생존전략은 없습니다. 세계문명을 리드하는 국가들의 가장 큰 경제 이슈는 소비자 중심 시장으로의 전환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따른 위기관리 및 기회창출입니다. 그러나 이들 이슈에 대한 우리 언론의 언급은 없습니다. 대륙의 시계가 팽팽 돌아가는 사이 우리는 멈춘 시계 앞에 모여 부지런히 구호 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기존 산업에서 영업이 불리해지는 환경을 극복하는 길도 4차산업 기술에서 찾는다. 상당수 커피점들이 인건비와 재료비 상승으로 커피값을 올릴 때도 스타벅스가 올리지 않은 것은 사이렌 오더 등 IT를 도입한 덕분이다. 스타벅스 모바일 앱에 선불충전금을 넣어두고 원하는 음료를 사전 주문하는 사이렌 오더로 결제되는 건수가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평균 11만건이다.

전체 주문량의 18%를 사람이 맡지 않음으로써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다. 동시에 앱에 쌓이는 빅데이터는 매장별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데 활용해 요일별·시간대별로 직원을 적절히 배치한 결과 생산성을 높였다.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항상 소지하고 있어 이동 중에도 소비를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문서를 만들고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을 한다. 수집된 정보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순식간에 전파된다. 개인이 소비자인 동시에 유통과 생산자 역할도 한다.

유튜브와 개인콘텐츠 등으로 억대 연봉 올리는 개인 ‘크리에이터’의 등장은 일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게 비즈니스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비틀스 이후 처음으로 1년 안에 앨범 3장을 연속으로 ‘빌보드 200’ 1위에 올린 BTS의 성공도 포노 사피엔스에 의해 이뤄졌다.

인류 최초의 혁명인 신석기 농업혁명은 수천년에 걸쳐 매우 완만하게 일어났으며 이후 일어나는 혁명은 점점 가속화했다. 스마트폰이 도구인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미래에 더욱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시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의 생존과 번영이 달려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8호(2019년 6월25일~7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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