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의 그래픽저널] 금융상품 가입, 너무 까다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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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중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처럼 수익이 변하는 실적배당 상품을 ‘금융투자상품’이라고 한다. 이런 상품의 특징은 잘못하면 원금까지 손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상품은 초저금리시대의 재산관리에 필수적이라고 홍보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위험이 포함된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투자협회의 ‘표준투자권유 준칙’을 따라야 하는데 제대로 절차를 밟으면 가입 과정이 40~50분은 족히 걸린다.

게다가 가입하는 도중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겁을 준다. 마치 엄청나게 나쁜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정한 혜택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만일 이러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면 그 상담 과정은 문제가 있다. 원래의 설계 취지가 금융투자의 위험성에 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왜 이렇게 가입하기 복잡할까

금융투자상품을 가입하는 절차가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우선 민원이 많이 발생하니 감독상 편의로 가입자에게 무조건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설득력을 갖는다.

과거 동양증권 사태를 비롯해 금융투자상품의 원금손실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투자상품 가입자 중 많은 사람들이 무지를 핑계로 피해 보상을 호소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금융회사나 감독기관이 무차별한 민원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보호 본능 기전이 작용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그런 투정 같은 이유보다 더 치밀한 것을 근거로 두고 작동한다. 필자가 금융제도 관련 입법을 한 사람은 아니므로 100% 정확한 이유를 말하기 한계가 있다. 그저 오랜 시간 읽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재 금융제도의 배경이 되는 것은 첫째 경제학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을 대학 울타리 안에서 교수들이 주고받는 고리타분한 탁상공론으로 보고 있다. 또는 경제 관료나 경제전문가들의 직업적 활용 수단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경제학은 현실 세계의 법과 제도에 존립 근거로서 깊은 영향을 미친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한 후 경제학은 학문으로서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최근 신고전학파에 이르기까지 근간 사상은 현대 경제 시스템의 구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제러미 벤덤의 공리주의에 입각한 ‘합리적인 인간’에 대한 전제이다.

◆합리적 인간 전제 하의 금융제도

합리적 인간이란 전제는 마치 기도와도 같은 경제학의 믿음이다. 인간은 시장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또 의사결정을 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찾기도 하고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최근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나오기 전까지 240여년 동안 경제학은 이 합리적 인간을 당연하면서도 꼭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철통같은 믿음 하에 시장과 인간에 관한 과학을 이뤄왔다. 이런 전제 하에서 경제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가 구성됐다.

금융제도도 마찬가지다. 금융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금융소비자는 합리적이어야 하고 항상 바른 결정을 한다. 그러므로 그 판단에 대한 책임도 금융소비자의 몫이다. 금융소비자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금융교육’은 중요하지 않았고 ‘어드바이저’의 역할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현실적으로 금융교육 시스템이 부실하고 상품판매 과정 외에 ‘금융자문’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여지가 없는 이유가 금융소비자보다는 이러한 제도적 배경이 원인일 수 있다.

합리적 인간 위에 불편한 금융투자제도 성립에 두번째 포트폴리오 이론은 금융투자 시스템에 개입한다.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 공인된 포트폴리오와 분산 투자이론은 투자자의 ‘투자선호 태도’와 ‘최적의 투자기회’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이 균형을 이루고 금융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금융투자상품을 가입하기 위해 설계된 법적인 ‘투자권유’ 과정에 이 투자선호와 최적의 투자기회를 일치시키는 과정이 그대로 구현돼 있다. 투자자는 금융회사에 방문해 ①투자정보제공 ②투자성향파악 ③최적투자상품선정 ④상품설명 ⑤서류가입절차 과정을 거치는데 ①, ②는 포트폴리오 이론의 투자선호를 분석하는 과정이고 ③, ④는 최적 투자기회를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상담자-도우미’ 간 현실적 괴리

이 일련의 과정을 금융회사 직원이 진행하는데 본인들은 상담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진행도우미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어드바이저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투자권유 과정도 역시 금융소비자가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가 작동하므로 가능하다. 모든 것을 금융소비자가 잘 알고 판단한다는 것인데 사실 필자도 스스로 투자성향을 알 수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에 알지 못한 것을 현장에서 종이쪽지 몇장으로 아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기에 투자상품 판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사전적 학습과 숙련이 필요한데 현장에서 몇마디 듣고 현대금융투자론의 정수인 금융투자상품을 이해하고 선택하라는 것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 진행 도우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금융회사 직원들은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어쩌면 금융현장의 이해상충과 민원분쟁 발생은 구조적인 것일 수 있다.

다행히 합리적인 인간관에서 벗어나 불합리한 인간 속성을 전제하는 행동경제학의 영향이 금융부문에 반영하는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입법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금융자문인의 기능을 강화하고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내용이 금융시스템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금융소비자들이 금융제도의 배경을 알아야 하고 법제도가 주는 불이익 대항해 정당한 대우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소비자도 주권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599호(2019년 7월2일~7월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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