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칼럼] 잘 나가는 '동네 빵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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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전북 군산 이성당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박진희 기자

여름휴가를 군산 지역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어디어디 갈 건지 물어보니 빵집 '이성당'에도 들르겠다고 한다. 요즘은 여행 다닐 때 그 지역 유명 빵집에 가는 것도 관행처럼 되고 있다. 군산은 올해 5월말 기준 인구가 27만1612명인 작은 도시다. 게다가 수년째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다. 거주하던 사람들이 떠나는 이 도시에 특정 빵집을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적한 구도심에서 유독 '이성당' 근처에는 사람이 많다.

'이성당'의 전신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가 운영하던 ‘이즈모야’ 화과자점이다. 일본식 화과자를 팔던 상점에서 장남 히로세 겐이치가 도쿄에서 배운 제빵기술로 빵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케이크와 커피 판매까지 하는 카페로 확장시켰다. 그러다 광복 이후 히로세 일가는 가게와 제빵기구를 남긴 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에도 히로세 겐이치는 부인의 고향에 제과점을 차렸다고 한다. 

한편 군산에서는 과자장사로 돈을 번 한국인 이석우씨가 ‘이즈모야’ 건물 자리에 '이성당'을 상호로 하여 개업한다. 이후 이석우씨의 이종사촌(조천형), 그의 아내(오남례), 며느리(김현주)까지 대를 이어 운영해 오고 있다. 일본인의 ‘이즈모야’ 화과자점 시절인 1920년부터 따지면 올해로 100년이 된다. 

김현주 사장은 2006년부터 밀가루가 아닌 쌀로 빵을 만들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빵집으로 발전시켰다. 남편 조성용씨가 일본 '겐리치' 제과점에서 쌀빵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쌀가루로 반죽해 일반 빵보다 차지게 만들어 얇은 피 안에 건강한 팥 앙금을 가득 채운 단팥빵은 명품이 되었다. 

'아이스쌀찐빵' 등 새로운 빵의 개발도 이어갔다. 지금은 천안 분점과 서울 두곳에서도 '이성빵'을 판매한다. 군산의 또다른 빵집 '영국빵집'은 정석균 대표가 개발한 '흰찹쌀보리빵'으로 유명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일제 강점기 이후 빵의 시대 열려

조선시대의 빵에 대한 기록으로는 <일암연기>에 이기지(1690~1722)가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에 갔다가 가톨릭성당에서 서양떡을 먹은 경험이 실려있다. 그는 그것을 부드럽고 달고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는 기이한 맛으로 적었다. 


유럽의 가톨릭 신부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며 빵이 점차 알려지다가 본격적으로 빵의 시대가 열린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기술자들이 오면서부터다. 1920년대에 여러 빵집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고 1940년대에는 빵과 과자업에 종사한 조선인수가 일본인의 2배가 넘었다. 

6‧25 이후에는 미국이 밀가루를 원조해주면서 빵의 대중화가 이뤄졌으며 1960~70년대에는 정부의 분식 장려로 빵의 보급이 추진됐다. 1960년대 말부터 삼립·샤니·서울·기린 등이 생산하기 시작한 양산빵은 오늘날까지 대중의 간편한 간식으로 선호되고 있다. 지금은 ‘삼립'과 '샤니'가 양산빵시장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다. 소매유통채널을 통해 편의점(30.7%, 2016년 기준)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1970년대 말부터는 뉴욕제과·고려당·독일빵집 등 중견 제과점이 사세 확장에 따라 프랜차이즈 형태의 분점도 내면서 빵시장의 주요 위치에 올라섰다. 이들 제과점은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선호됐다. 1980년대부터는 동네 빵집들이 서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똑같은 맛의 빵을 여러 곳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와 CJ그룹의 '뚜레쥬르'가 기업형 경영과 점포수의 적극적인 확대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업계를 평정하게 된다. 

적당한 가격이면서도 새로운 맛, 새로운 품질의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졌다. 이미지 마케팅과 매장의 세련된 인테리어도 점유율 확대 효과를 나타냈다. 가맹점에는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복리후생 지원제도를 도입했으며, 소비자에게는 포인트 혜택을 주고 음료 등 메뉴를 다양하게 늘려 카페로도 자리 잡게 됐다. 이에 따라 은퇴자들에게는 ‘창업 1순위’로 꼽히게 됐다.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사진=뉴스1 신선화 기자


◆치열한 경쟁 프랜차이즈가 평정 

서울의 빵집수는 1990년대 이후 증가 속도가 빨라져 1994년에 1000개를 넘었고 2015년에는 4000개를 돌파했다. 반면에 동네의 개별 빵집을 비롯해 제법 유명세를 떨치던 제과점들의 문 닫는 수도 늘어났다. 그러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13년에 규제사항을 만들고 빵집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파리바게뜨·뚜레쥬르 점포수 증가가 멈췄으며 전체 빵집수도 2016년에 정점을 찍은 후 주춤하고 있다.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매출비중은 2013년의 71.4%에 비해 2016년에 60.7%까지 내려갔다. 이에 따라 중소 빵집수가 상대적 강세를 나타냈는데 매장당 매출액은 파리바게뜨·뚜레쥬르가 중소 점포수보다 많아 두 프랜차이즈 점포수를 합치면 전체 제과점 시장의 50%가 넘는다. 비프렌차이즈 개인 제과점 매출비중은 여전히 열세긴 하지만 2013년의 28.6%에서 10.7%포인트 높아진 39.3%로 확대됐다.

다만 개인 제과점 매출은 되는 집만 되고 안 되는 집은 안 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 곳곳의 유명한 빵집들 매출액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군산의 ‘이성당’은 2016년·2017년·2018년의 매출액이 각각 186억5000만원·210억5000만원·217억3000만원으로 영업이익은 17억9000만원·29억8000만원·43억4000만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순이익은 자본금(1억원)의 30배가 넘는 30억5000만원이다. 


내수 침체라는 말은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대전의 ‘성심당’은 팥 앙금이 들어있는 ‘튀김소보로’로 명성을 얻은 후 매출액이 웬만한 중소기업의 그것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532억원, 영업이익 95억7000만원, 순이익 80억9000만원, 자산총액은 482억8000만원까지 불어났다. 


◆특색 있는 빵은 소비자가 알아줘

사람들이 각 지역의 10대 빵집 등과 관련해 글을 올려 SNS에 확산되고 대통령도 지난해 10월30일 군산 '이성당'을 방문해 빵 3만원어치를 구매했으며 올 1월24일에는 대전 '성심당'을 방문해 생일케이크를 받아 언론에 보도되는 등 홍보효과면에서도 되는 집만 더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 

전국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빵집들은 나름대로 특색 있는 빵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부산에서는 '옵스'(ops)가 '학원전'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빵으로 유명하다. 엄마의 정성이 느껴지는 계란과 경주 토함산 꿀로 만든 스펀지 케이크로 학원 가기 전에 먹는 빵이라는 뜻이다. 

부산에서는 1959년에 시작해 60년 된 '백구당'이 내놓은 옥수수가 듬뿍 들어있는 ‘크로이즌’ 빵이 추천 대상이다. '비엔씨'를 부산 3대 빵집의 하나로 꼽는 사람도 있으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파이만주’가 유명하다. 부산 화명동의 '미니크로아프레'에서는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역의 명물로 27겹에 쌓인 크루아상의 촉촉한 질감을 경험할 수 있다. 

대구 최초의 케이크 전문점인 '최가네케익'에서는 진하고 부드러운 초코 무스가 든 돔 형태의 '나폴레옹'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삼송베이커리'는 60년간 여러 번 위기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돌파구를 찾아갔다. 고로케에 만두를 접목한 만두고로케를 개발해 튀기는 대신 오븐에 구워 만든 것이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구의 대표 빵집 중 하나가 되었다. 

광주의 '궁전제과'는 바게트 속을 파내고 샐러드를 채운 공룡알빵과 얇고 바삭한 페이스트리를 여러 겹으로 구워낸 ‘나비파이’로 유명하다. 목포에서는 70년 역사를 가진 '코롬방제과'가 새우가루가 든 소스를 발라 굽는 짭조름한 새우 바게트와 크림치즈 바게트의 독특한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빵집의 양극화가 프랜차이즈시장을 넓히고 개인 제과점을 몰락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이제는 개인 제과점이 살아나면서 그 안에서 양극화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네 개인 빵집 살리자는 말과 정책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소비자는 가고 싶은 빵집에 가고 먹고 싶은 빵을 사먹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인정되는 빵집의 소문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 동네 밖에서도 찾아온다. 

잘하는 개인 빵집을 진정으로 살려준 것은 보호제도를 넘어서는 정보화시대, 4차산업 시대의 흐름이다. 또한 외지인들도 일부러 찾아가는 각 지역 유명 빵집들은 나름대로 고충을 겪으면서도 성장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꾸준한 신제품 개발과 영업방식 개선을 통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쌓아 연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불굴의 노력을하다 보면 하늘이 내곁에 다가와 손을 잡아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1호(2019년 7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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