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치장한 골드미스, 알고 보니 ‘짝퉁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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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양극화가 가속화되며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 탓에 이른바 ‘짝퉁’(위조상품)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그런데 이 짝퉁시장이 심상찮다.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시장규모도 커지고 전문쇼핑사이트가 등장하는 등 꽤 뻔뻔해졌다. <머니S>가 짝퉁이 인기를 끄는 사회적 이유가 무엇인지, 짝퉁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짝퉁 전문시장의 풍경과 명품 수선사에게 듣는 ‘짝퉁 구별법’도 소개한다. <편집자주>

[진짜 같은 세상 ‘짝퉁천국’-③] ‘명품=신분’ 인식이 짝퉁시장 키우다

“누가 뭐래도 명품이 좋다.”

1억원대 독일산 세단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업가 고정윤씨(38·가명). 골드미스인 고씨는 샤넬 백부터 루이비통 지갑, 디올 구두, 펜디 원피스, 까르띠에 손목시계 등 세계적인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다닌다. 가히 움직이는 명품관이라 말할 정도. 차를 빼고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천만원어치를 두르고 다니는 셈이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 그가 두른 명품들의 가격은 100만원 남짓. 모두 ‘짝퉁’(위조상품)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업차 미팅 자리가 많다 보니 고급차가 필요했어요. 3년 리스로 산 차만 고급이면 될 줄 알았는데 차가 좋아지니 거기에 걸맞은 옷과 가방 등이 필요했죠. 하지만 여력이 없어 명품을 구입할 순 없고, 그때부터 짝퉁을 찾기 시작했어요. 흥미로운 건 주변에서 제가 들고 입고 다니는 것들, 작은 소지품 하나까지 모두 정품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이에요.”

최고급 승용차를 모는 그녀가 짝퉁 마니아라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그가 짝퉁 세계에 더 빠져들게 된 이유다. 해외 유명브랜드 명품 소유가 또 다른 사회 신분증으로 작용하면서 고씨처럼 짝퉁 명품에 집착하는 이가 늘고 있다. 짝퉁 관련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명품 바이러스에 감염된 짝퉁 마니아들의 사연을 좀 더 들여다보자.


◆“명품 하나 살 돈으로 짝퉁 몇개를…”

짝퉁 입문 3년차. 대학생 박지수씨(22·가명)는 가방, 옷, 액세서리 심지어 속옷까지 위조상품을 착용하는 짝퉁 마니아다. 박씨는 “짝퉁에도 등급이 있다”며 “SA(Special A)급, A급 등에 따라 가격과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귀띔했다.

박씨는 원래 브랜드, 세부 디자인, 가격대까지 면밀히 조사한 뒤 짝퉁을 구입하는 편이다. 꼼꼼히 따져서 구매한 뒤 주변 지인들이 소유한 진품과 비교해 보고 육안으로 봐도 별 차이가 없을 때 그는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진품의 10분의1 가격에 샀는데 어떤 게 진짜고 짝퉁인지 구별이 잘 안가면 무언가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뿌듯함이 들어요. 명품 하나 살 돈이면 짝퉁 몇개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진품 소유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덕분에 박씨는 학교 내에서 ‘명품녀’, ‘명품지수’로 통한다. 한때 박씨의 집안이 부유하고 아버지가 상당한 재력가라는 등의 소문이 교내에 퍼지기도 했다. 그가 소유한 아이템이 모두 짝퉁이라는 사실은 정말 친한 친구 2명만 알고 있을 뿐 남자친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사진=장동규 기자

◆매년 홍콩으로 ‘짝퉁 원정 쇼핑’ 나서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김혜연씨(35·가명)는 매년 홍콩으로 휴가를 떠난다. 홍콩의 대표적인 ‘짝퉁시장’인 주룽 반도 템플스트리트로 ‘원정 쇼핑’을 가기 위해서다. 이곳에선 다양한 품목의 명품 짝퉁을 헐값에 살 수 있다.

김씨는 짝퉁족 중에서도 희귀 제품을 선호하는 명품 얼리어댑터에 속한다. 그는 우선 새로운 시즌 명품이 나오면 홍콩 등 해외 짝퉁사이트 검색을 통해 짝퉁이 나왔는지부터 알아본다. 제품을 확인하면 주말에 친구 몇명을 모아 아예 현지로 가 구입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비슷한 마음의 친구들과 짝퉁을 사기 위한 계를 만들었고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예전엔 홍콩 명품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짝퉁을 구입했는데 배송도 오래 걸릴 뿐더러 통관에서 적발돼 제품을 못받고 사이트가 아예 없어져버리는 피해를 입었어요. 짝퉁을 산 거라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고…. 아무리 짝퉁이라도 가방 기준으로 적으면 20만~30만원, 비싼 건 100만원도 하거든요. 그렇게 돈을 날린 뒤엔 아예 직접 짝퉁시장에 가서 구매하고 있어요.”

김씨 역시 사내에선 명품녀로 유명한 인물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로고가 안 박힌 제품이 없을 정도다. 그는 사내 체육대회 때도 명품 브랜드 티셔츠와 스니커즈를 신고 나와 주변 직원들로부터 "역시 명품녀"라는 찬사를 받았했다.

“여자들 사이에선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가 많다보니 명품을 어렵지 않게 사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부러워하는 게 현실이고요. 요즘에는 출산하면 남편에게 샤넬백을 받는다는 말이 유행이 될 정도로요. 아직 미혼이지만 명품 소유 여부가 내 경제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짝퉁으로라도 대체하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에요.”

◆‘짝퉁 사랑’엔 나이도 숫자에 불과

짝퉁 명품 사랑엔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 산후조리원에서 청소 도우미 일을 하고 있는 최정숙씨(66‧가명)는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 짝퉁 가방을 여러개 소유하고 있다.

“처음엔 딸이 선물해줘서 갖게 됐는데 그 후로 청소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무시할까봐 주변 시선에 오히려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게 되더라고요. 짝퉁이지만 명품을 들고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주변에서 딸이 사줬냐, 자식 잘 키웠다 등등의 소리를 해요. 괜히 어깨가 으쓱거려지죠.”

전문가들은 이들의 사례가 국내 짝퉁 소비가 얼마나 어이없는 이유로 이뤄지는지 잘 보여준다고 꼬집는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해야 대인관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게 명품으로 꾸민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는 왜곡된 현실. 그 사회가 결국 이 땅에 ‘짝퉁 천국’을 열고 있는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1호(2019년 7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설아 sasa7088@mt.co.kr

머니투데이 경제주간지 머니S 산업1팀 유통 담당 기자. 식음료, 주류, 패션, 뷰티, 가구 등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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