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56] 을지문덕처럼, '인상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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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불매운동으로 한산한 김포국제공항 탑승 수속 창구. /사진=뉴시스 박주성 기자


훗날 역사학자들은 2019년 7월을 기해왜란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아베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해 반도체 기본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 대상국가에서 제외할 것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행해진 징용공에게 배상하라고 판결내린 것에 대해 아베는 치졸하게 한국경제의 약한 곳을 치고 들어왔다. 한국경제의 중심인 반도체 가운데 자급률이 가장 낮고 다른 나라에서의 대체재를 찾기도 쉽지 않은 분야를 정조준한 것이다.


한국 국민은 어처구니없는 아베의 경제보복을 일본제품 불매와 일본여행 취소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외교전에 나섰다. 한국과 일본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한일관계는 ‘경제전쟁’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위기로 다가온 일본의 경제보복이 ‘기해왜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 양제의 백만대군을 통쾌하게 물리친 을지문덕처럼 싸우고 강한 진나라 앞에서 감정을 누르고 협력한 인상여의 통 큰 양보에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 걸고 적진 간 을지문덕


“적이 커도 우리는 반드시 나아가고 적이 강해도 우리는 반드시 나아가며 적이 사납든 용맹하든 우리는 반드시 나아가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 식은땀으로 등이 젖고 털끝만큼이라도 양보하면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 자신을 독려하고 이로써 국민을 흥기시켜… 마침내 중국 천자를 우리 손으로 거의 사로잡을 뻔했다.”


신채호 선생이 쓴 <을지문덕>의 한 부분이다. 그는 문무를 겸비한 을지문덕이 수 양제가 이끄는 백만대군을 거짓항복과 거짓패배로 유인한 뒤 살수대첩이라는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대파한 것을 ‘을지문덕주의’라고 불렀다.


그의 작전에 속아 살수를 넘어 공격하던 30만5000여명에 이르는 수나라의 우중문·문술 형제의 군사 가운데 살아 돌아간 이는 2700명뿐이었다.


을지문덕은 군사가 많다며 셈만을 믿고 오만한 우중문 진지를 찾아간다. 당시 영양왕의 왕명을 받고 거짓으로 항복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직접 수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군세를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한 대담한 작전이었지만 수군에게 잡혀 억류될 경우 고구려 총지휘관이 부재하는 위기가 초래되는 위험한 묘책이었다.


보통 사람의 간과 지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우중문의 허를 찌른 전략이었다. 나(고구려)와 적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한 상황에서 나의 규칙대로 싸움을 이끌겠다는 지혜와 용기, 국민에 대한 사랑을 갖춤으로써 펼 수 있었던 그랜드 전략이었다. 이렇게 긴장한 상황에서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한시를 보냈다. 만고의 절창이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신비로운 계책은 하늘의 원리를 다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까지 다 꿰뚫었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지금까지 싸움에서 이긴 공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이제 그치겠다고 하길 바라노라

◆인상여가 염파를 피한 이유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에 명신 인상여가 있었다. 그는 초나라 변화(卞和)가 발견했다는 천하의 보배, 화씨벽을 강대국이었던 진나라로부터 완벽하게 조나라로 되갖고 왔다는 ‘완벽귀조’(完璧歸趙)의 주인공이다. 인상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재상이 됐다.


그런데 이를 보고 조나라 대장군이던 염파가 시기했다. ‘자기는 목숨 걸고 진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는데도 아직 대장군인데 인상여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 것밖에 없는데 재상이 된 것은 자기가 모욕당한 것이다. 그를 만나면 반드시 수치를 주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이 얘기를 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다녔다. 그의 가신들이 ‘염파 장군이 두려워 피하느냐’며 불만을 드러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염파장군과 진나라 왕 가운데 누가 더 두려우냐. 나는 진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호통을 쳐 화씨벽을 갖고 돌아왔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것은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와 염파가 싸우면 좋아할 것은 진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자기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가시나무를 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벌해줄 것을 요청했다. 인상여는 염파를 일으켜 세운 뒤 서로 합심해서 죽을 때까지 진나라를 막는 데 협력했다.

◆밀려도 '국민 행복'이 우선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해법은 정부(정치가)와 학자, 그리고 국민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함께 대응하는 3인4각 협력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우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NO 일본’ 운동, 즉 일본상품 불매와 일본으로의 여행 취소 등을 보다 광범하고 지속적으로 실시한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면 한국만 피해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학자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론적으로는 물론 역사적으로 자유로운 통상원칙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와 팩트(사실)를 찾아내 제공한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협약으로 국가간 보상권은 해소됐을지언정(그것마저도 을사늑약과 합일강점조약이 원천무효라는 점에서 재해석할 여지가 있을 수 있음) 개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권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동서고금의 팩트와 논리를 찾아 명쾌하게 보여준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런 논리와 팩트, 국민들의 불매운동을 원군으로 삼아 일본과의 쌍무협상은 물론 미국을 조정국으로 초청하고 WTO에서 논의를 확대하는 등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때 정치권은 각자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가 다를지라도 ‘기해왜란’을 이겨내기 위해 안에서의 싸움은 잠시 접는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근시안적 ‘정치꾼적’ 시각을 지양하고 ‘밀리더라도 국민생활의 안정과 행복을 이뤄야 한다’는 인상여적 정치가적 양보를 실천한다. 지고도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민심을 얻고 정권도 얻고 지킬 수 있다. 권력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4호(2019년 8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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