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57] '기해왜란', 묘책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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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8월15일은 기쁨과 고통이 엇갈리는 날이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나 빛을 되찾은 기쁨과 이데올로기로 남북이 분단됐다는 고통이 함께 찾아온다. 광복 74주년인 2019년 8월15일엔 아픔이 더해졌다. 사과를 모르는 일본이 ‘기해왜란’이라는 경제침략을 도발했고 한국이 응전에 나섬으로써 한일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군자는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권리를 침해하고 평화를 깨뜨리려고 침입할 때는 싸워야 하고 일단 싸우기 시작했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적은 수로 많은 적군을 이길 수 없다는 중과부적을 우습게 만들고 당태종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양만춘 장군, 23전23승으로 넬슨 제독의 존경을 받은 이순신 장군,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뜨거운 피를 헛되게 하지 않고 광복군으로 해방을 쟁취한 김구 주석 등이 그러했다.


기해왜란을 쳐부수고 한국 경제와 국력을 몇 단계 끌어올릴 그 사람은 누구일까. 또 그 사람이 내놓을 묘책은 무엇일까.

◆봉오동전투의 유인섬멸작전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영화 <봉오동전투>(감독 원신연)가 지난 7일 개봉했다. 1920년 6월7일 지린성 왕청현 봉오동에서 있었던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첫 대승을 100년 만에 다룬 영화다.


홍범도·안무·최진동이 이끄는 대한북로독군부 독립군들은 야스카와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 19사단 소속 월강추격대를 봉오동으로 유인해 섬멸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사살됐고 200여명이 부상당했다. 반면 독립군은 장교 1명과 사병 3명이 전사하고 약간의 부상자만 냈다.
  
봉오동전투의 대승 비결은 간단하다. ‘강한 적을 험한 지형으로 유인해 섬멸한다’는 것이다. 독립군이 장졸 수는 물론 무기 및 장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일본군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인섬멸작전이었고 황해철(유해진 분), 이장하(류준열 분), 마병구(조우진 분) 등은 친동생을 일본군에 잃은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을 유인하는 데 목숨을 내놨다.

1919년 3월1일 전국에서 일시에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뒤 1년3개월 만에 거둔 봉오동에서의 대승은 독립군의 사기를 한층 높였다. 특히 4개월 뒤인 10월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에서 대첩을 거뒀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은 광복 때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항일독립전쟁의 주춧돌이 됐다.  


◆맥아더의 ‘공간 내주고 시간 벌기’

맥아더는 김일성이 남침한 직후 파죽지세로 밀릴 때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버는’ 작전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필요한 병력과 장비를 한국에 들여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국군과 유엔(UN)군은 낙동강전선을 지켜냄으로써 ‘시간벌기’에 성공했다.

맥아더는 1950년 9월15일에 이뤄진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모든 사람의 반대를 홀로 이겨냈다. 그는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이야말로 승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며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많아 상륙작전 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라서 적도 인천으로 상륙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영국의 제임스 울프 장군이 1759년 캐나다 퀘벡에서 프랑스 몽캄 자작을 무찌른 사례도 꺼냈다. 당시 몽캄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퀘벡시 남쪽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무장한 군대가 절대 기어오를 수 없다고 믿고 방어전력을 취약하다고 생각한 북쪽 강둑에 집결시켰다. 하지만 울프는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그 절벽을 기어올라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한니발이 스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침공함으로써 대승을 거뒀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맥아더도 ‘휴브리스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휴브리스(Hubris)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실패하게 된다는 뜻으로 역사학자 토인비가 사용한 말이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을 궤멸시키고 잃었던 국토를 15일 만에 되찾자 객관성을 잃었다. 그는 원산상륙작전을 다시 시도하고 중공군이 대규모로 압록강을 넘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함으로써 통한의 1·4후퇴를 자초했다.

◆‘에버레디 작전’과 ‘뉴 코리안 플랜’

 
6·25전쟁 때 미국은 한국을 두번 포기하려고 했다. 한번은 영천과 다부동이 한때 뚫려 대구가 위험에 빠졌을 때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를 포기하고 62만명 정도를 사모아 섬으로 옮겨 대만처럼 피란 정부를 세운다는 ‘뉴 코리아 플랜'을 검토했다. 다행히 국군과 UN군이 영천과 다부동을 되찾음으로써 그 계획은 백지화됐다.

 
또 한번은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UN군이 맥없이 무너지며 ‘중공군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다. 1·4후퇴로 서울을 다시 빼앗긴 뒤 평택까지 후퇴한 UN군은 금강까지 밀릴 경우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철수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다행히 워커 장군 후임으로 미8군사령관이 된 리지웨이 사령관의 반격과 중공군의 보급문제 등으로 다시 서울을 회복하고 현재의 휴전선 부근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때 미국과 중공은 휴전하기를 원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지루한 협상을 벌였다.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18일 새벽2시 반공포로를 석방시켰다. 미국은 눈엣가시로 등장한 이 대통령이 끝까지 휴전에 반대할 경우 쿠데타를 일으켜 장택상 총리로 새 정부를 구성한다는 ‘에버레디 작전’을 만들었다.


기해왜란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국의 반도체·자동차 산업 등을 옥죄는 일본산 핵심소재 및 부품을 다른 나라로 수입선을 바꾸거나 국산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 말이다. 정부는 앞으로 7년 동안 7조8000억원+α를 지원, 핵심 소재와 부품 가운데 20개는 1년 안에, 80개는 5년 안에 국산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 대책이 성공하려면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을 잡기 위해 일본을 유인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원하는 명분이나 실리 등이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할 공간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해 ‘공간’을 내주는 용기와 그 고통을 어루만지며 시간을 확보하는 어짊과 지혜다. 지인용을 서민에게 바라는 것은 직무유기다.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발휘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5호(2019년 8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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