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풍수명당에서 망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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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미신이나 종교라고 믿는 풍수지리는 알고보면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일상생활의 중요한 가치로 발전해왔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집이나 사옥의 터를 고를 때 풍수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들도 터를 고를 때 풍수학자의 조언을 듣는가 하면 안 좋은 기운을 털어내려고 사옥에 특이한 조형물을 세우기도 한다. <머니S>는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풍수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사옥과 풍수, ‘터’ 놓고 말하다-상] 
입지와 다른 흥망… 결론은 ‘사람’

터가 좋으면 집안이나 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풍수는 생기가 흩어지고 모이는 현상에서 시작해 중국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이론을 체계화함으로써 길흉화복을 설명한다. 땅속의 생기에 대한 존재나 실제가치가 증명된 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풍수를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종교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과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풍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은 입지를 찾아 터를 잡는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상권이 발달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고 재물을 쌓는 데 영향을 준다. 풍수가 단순 미신이 아닌 학문으로 자리잡은 이유다. 특히 재력이나 권력이 있는 이들은 풍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 재벌기업의 ‘명당 사랑’이 각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배산임수형의 고택. /사진=이미지투데이

◆산과 물 좋은 풍수명당 어디?

풍수지리학에서는 ‘산이 좋으면 인물이 나고 물이 좋으면 돈을 번다’고 한다. 국내 재벌기업 대부분은 선영이나 사옥, 공장 자리를 봐주는 풍수전문가가 있을 정도로 명당에 관심이 많다. 2008년 삼성그룹 계열사가 옮겨간 서울 서초동 사옥은 풍수전문가들의 의견으로 터가 정해졌다는 게 정설이다. 서초동 부지는 관악산과 우면산의 지맥이 닿아 여러 계곡의 물이 고였다 천천히 나가는 형상이다. 재물을 쌓을 수 있는 터라는 게 풍수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재벌가 오너들 사이에서 돈이 따라오는 명당으로 여겨지는 곳은 서울 장충동이다. 풍수지리 학자들은 장충동을 ‘장군이 지휘하는 대좌형의 명당’으로 묘사한다. 주변 산세가 진을 치는 주둔지와 같은 지형이라 삼성과 신세계, 한솔 등 범삼성가의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에는 많은 금융투자회사가 있지만 삼성증권 본사는 한번도 여의도에 있었던 적이 없다. 풍수지리학에 따르면 여의도는 강바람이 세서 방송국이나 교회처럼 기가 센 곳은 몰라도 증권사처럼 기가 약한 회사는 견딜 수가 없다. 미래에셋그룹이 2011년 여의도에서 중구 수하동의 미래에셋센터원빌딩으로 이전한 것도 박현주 회장의 풍수지리 선호에 따른 행보라는 후문이다. 미래에셋센터원빌딩의 터는 조선시대 때 돈을 찍어내던 주전소 자리다.


미래에셋센터원. /사진=머니투데이 DB

◆풍수 명당에서 망한 기업 왜?

그러나 풍수전문가도 이런 사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풍수적으로 금융업이 성하기 힘들다는 여의도에는 성공한 금융투자회사들이 여럿 있다. 여의도에 본사를 둔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003년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동원금융지주 설립으로 시작해 현재 카카오뱅크,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등 2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30위권 기업으로 성장했다.

재벌기업이 풍수에 따라 택한 땅이 모두 명당인 것도 아니다. 부영그룹은 2016년 5717억원을 들여 삼성그룹으로부터 서울 태평로 부영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관)을 매입했다. 이 빌딩의 터는 풍수지리업계에서 명당으로 검증된 땅이다. 인왕산과 남산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기운이 모여 재운이 넘치는 자리다. 하지만 오피스 임대사업을 위해 매입한 부영태평빌딩은 공실률이 증가하며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 이듬해인 2017년 부영의 핵심 계열사 부영주택은 영업손실이 1555억원에 달해 2011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가 배경인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 한국은행 팀장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가 당시 재계순위 14위인 한보그룹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도 많은 대기업은 광화문이나 여의도, 강남 등의 빌딩에 사옥을 뒀지만 김혜수가 찾아간 한보의 본사는 한 허름한 아파트건물이었다. 실제로 당시 한보 본사는 1979년 준공한 강남 은마아파트 상가에 있었다. 풍수지리 신봉자였던 정태수 회장은 “사업하면 잘 된다”, “쇳가루를 만져야 한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제철소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부도가 나 기업이 공중분해됐다.

땅의 기운이 흉흉하기로 소문난 용산도 풍수학적으로 보면 아이러니다. 용산은 여의도와 함께 대표적인 한강변 지역이다. 서울의 백호인 인왕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맥이 무악재를 지나 연희궁의 주산 안산을 만든다. 여러 철도가 개설돼 교통의 요지로 통한다. 쉴 틈 없이 열차가 지나 풍수학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움직임이 재운을 가져온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용산을 ‘기운이 나쁜 땅’으로 여긴다.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옛 대우센터빌딩)를 본사로 사용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풍수지리에 밝다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이런 비운을 피하지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용산역 앞에 사옥을 건설하면서 나쁜 기운을 피하려고 일부러 정문을 대로변 반대쪽으로 향하게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재운이 좋은 땅은 건설이나 제조업 등의 업종이 맞지 않다는 풍수전문가들의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풍수는 믿을만한가?

“대통령 관저가 풍수상 불길한 점이 있어 옮겨야 한다.”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유홍준 교수가 올초 한 말이 논란을 일으켰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정부 관계자가 풍수를 이유로 청와대 터가 안 좋다는 주장을 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은 것. 하지만 그만큼 풍수가 과거의 유물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풍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기업들도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학문이다. 홍콩 중국은행은 검 모양의 사옥을 만들어 라이벌 HSBC를 겨누고 있다. 운이 나쁘게도 그 사이에 낀 청콩센터는 화를 당할까 봐 사옥 외벽에 그물 무늬를 만들었다.

재력가나 권력자들이 풍수를 탐닉하는 이유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세상일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잘 풀리지 않아서다. 풍수를 경신하는 학자도 원인은 사람에게 있지 땅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를 저술한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터가 좋지 않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민심과 괴리되기 쉬운 폐쇄성 때문이지 터가 나빠서가 아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merry@mt.co.kr  |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한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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