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절경의 청풍호 자드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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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오싹’, 제천 얼음골
'내륙의 바다' 물 아래 갖힌 수몰민 이야기


정방사 원통보전과 의상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충북 제천 청풍호를 따라 능강교에 도착한 뒤 정방사로 향했다. 정방사(淨芳寺)는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 물과 향기로운(芳) 꽃들이 어우러진 산사다. 금수산 신선봉 자락인 미인봉(596m)의 아찔한 절벽 아래에 자리했다.

능강교에서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은 온통 나무의 향기로운 내음이 가득한 숲길이다.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를 비웃듯 하늘은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온몸은 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숲은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을 품어 더위를 식혀줬다. 땀을 훔치며 걷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첩첩한 산들과 드넓은 청풍호가 한눈에

정방사 일주문인 석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 산사에 들어섰다. 여느 절처럼 일주문이 있는 게 아니라 바위 사이로 난 돌계단이 정방사의 일주문인 석문(石門)이다. 석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범종각이 있다. 왼쪽으로 정방사 본전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다. 법주사(法住寺)의 말사(末寺)로 작은 규모에 아담한 산사가 매력적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1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절은 자리도 예사롭지 않다. 금수산에서 시작해 신선봉을 지나쳐 내려오는 산의 기운이 미인봉을 지나 절벽에 머무르다 기대어 서있는 듯한 모양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비단으로 수놓은 산이라 찬탄했을 만큼 금수산은 아름답다. 더구나 금수산의 지봉인 미인봉 자락의 의상대(義湘臺)가 보듬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방사의 풍경.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원통보전 뒤를 받치고 있는 절벽에서 감로수가 솟아난다. 의상대 밑의 움푹 파인 샘에서 맑고 시원한 물이 샘솟는 것. 한바가지 가득 담아 들이켰다. 온몸에 새 기운이 돋는 기분이다. 보전을 돌아 절 앞마당으로 나섰다. 원통보전을 등 뒤로 하고 산 아래를 바라본다. 첩첩한 산들과 청풍호가 눈에 가득 담고도 모자를 만큼 망망히 펼쳐져 있다. 겹쳐진 산들이 마치 밀려오는 파도처럼 가슴을 때린다. 바람에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원통보전 옆으로 해수관음보살이 청풍호를 바라보고 서있다. 의상대사가 낙산사에서 관음보살을 꿈에서 보고 해수관음보살을 세웠다고 한다. 여기 정방사도 의상대사와 관계가 있으니 해수관음보살상을 세운 듯하다. 청풍호가 바다처럼 넓기에 해수관음을 세워서 뜻을 기린 모양이다. 산신각과 지장전을 둘러보고 얼음골 생태길로 향했다.

◆얼음골 생태길과 만당암

정방사의 해수관음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자드락길 2코스인 정방사를 내려와 얼음골 생태길로 접어들었다. 청풍호 주변을 따라 조성된 자드락길 중 3코스는 능강교에서 한양지(寒陽地·얼음골)까지 능강계곡을 따라 5.4㎞를 걷는 구간이다.

전날 내린 비는 계곡의 물을 가득하게 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큰 바위에 부딪치고 돌아든다. 또 거센 물살을 일으키기도 한다. 숲길이지만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계곡으로 뛰어들어 시원한 냉탕을 즐겼다. 온몸을 감싸는 차가운 냉기에 몸을 부르르 떤다.

얼음골 가는 길에서 만난 돌탑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계곡을 옆에 두고 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염원을 담은 돌탑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국가의 안녕을 걱정하는 글귀며 개인의 간절한 염을 담은 돌탑이 장관을 이룬다. 돌탑 옆으로 조그마한 주막이 객을 반긴다. 노부부는 주변 밭을 일구고 객들에게 막걸리를 팔면서 생활하고 있다. 인상 깊은 돌탑은 이 부부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올린 것이라 한다.

만당암(晩塘巖)에 도착했다. 바위에 앉아 천렵을 즐기고 시를 읊었다는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수십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널찍한 바위여서 물이 흘러내리면 한여름에 시원함을 즐기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만당암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그중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취적대로 향했다.

◆취적대와 얼음골

얼음골.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다운 계곡이 나타난다. 취적담(翠滴潭)을 건너도록 얼기설기 만든 목교를 건너 몇걸음을 옮기면 취적대(翠滴臺)다. ‘푸른 물방울이 떨어지는 넓적한 바위’로 절승지다. 약간의 과장도 있겠으나 무색하지 않은 경치를 자랑한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서리고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로 걸음을 옮겼다.

흔들다리를 지나 망덕봉에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얼음골은 삼복의 더위에 얼음이 나는 곳이라 해 한양지라고도 일컫는다. 이곳의 얼음은 만병을 낫게 한다는 얘기도 있다. 비록 얼음은 보지 못했지만 냉기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만당암.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하산길은 취적대에서 올라왔던 계곡길이 아닌 오른쪽 산길을 택했다. 지금껏 보아왔던 돌길과 다르게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졌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것보단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이다. 곳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나 경작의 자취가 보인다.

이 길이 지나는 곳엔 제법 큰 마을이 있었던 모양이다. 집터였을 돌무더기터가 사방에 가득하다.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고 5개면과 61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니 이곳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이 35년. 사람들은 떠났지만 삶의 흔적은 역력하다.

청풍호는 넓어서 내륙의 바다라는 별칭이 붙었다. 탁 트인 전망의 드넓은 호수는 아름답다. 깊은 물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5호(2019년 8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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