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극일”… 발로 뛰는 재계 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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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총수들이 극일(克日) 행보에 가속페달을 밟는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주요 소재와 부품의 탈일본화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주요기업 총수들은 일본발 경제보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 전략에 힘을 싣는 한편 원천기술 강화로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단순히 이번 일에 대한 맞대응을 넘어 앞으로 또다시 반복될지 모르는 리스크를 차단하겠다는 목표다.


올해 1월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참석해 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신 기자

◆연일 회의소집·현장경영

현재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충남 온양사업장과 천안사업장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사업장을 순차적으로 돌며 현장경영을 펼치고 있다. 일본이 이달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배제하자 직접 국내 사업장의 상황을 챙기고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대응방안을 모색하려는 차원이다.

이 부회장이 반도체사업장부터 점검을 시작한 이유는 일본의 규제가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반도체를 향하고 있어서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한달 전인 지난달 4일부터 반도체 공정에서 빛을 인식하는 감광재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회로를 식각할 때 사용하는 ‘에칭가스’(불화수소),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을 강화한 필름으로 OLED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총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사실상 ‘2030년 비메모리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은 지난달 7일 일본으로 날아가 엿새간 현지사정을 살핀 뒤 국내로 돌아와 경영진과 수차례 비상회의를 열고 대책을 모색했다. 이를 기점으로 삼성전자는 협력사에 일본산 소재와 부품 재고를 90일치 이상 확보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단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벨기에업체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조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불화수소는 SK머티리얼즈 등 국내업체와 시제품 테스트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번 기회를 반전의 기회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일 경영진을 소집한 회의에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고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지난달 말 일본출장에서 양궁협회 관련 일정을 마친 뒤 현지 부품수급 동향과 공급망에 대한 보고를 받는 등 현지상황을 점검했다. 내연자동차의 경우 부품 95%가량이 국산이라 일본의 규제 영향은 미미하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미래먹거리인 수소전기차도 외부리스크가 없는 완전한 국산화를 이루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앞줄 왼쪽 두번째)이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 내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탈일본 행보 전방위로 퍼지나

수소차의 수소연료탱크 제작에 쓰이는 탄소섬유는 일본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현대차는 현재 일진복합소재를 통해 탄소섬유를 국내조달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효성첨단소재와 함께 공동으로 고강도 탄소섬유 개발에 착수해 이르면 연내 상용화한다는 방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공포되자 16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수펙스추구협의회 비상회의를 주재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매월 넷째주 화요일에 정례회의를 열지만 현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회의를 연 것이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여러 가지 예상 시나리오별 대책과 관계사별 대응준비 등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회장은 “흔들리지 말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자”며 “그동안 위기 때마다 하나가 돼 기회로 바꿔온 DNA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지난달 11일 경기 평택 소재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을 방문해 경영진과 비상회의를 열고 그룹 내 소재 확보부터 개발 등을 점검했다. 최근에도 계열사별로 현황 등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으며 긴밀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총수들의 탈일본 행보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우리정부가 지난 12일 전략물자 수출지역 구분을 변경해 일본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일 경제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일관계 경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는 데다 경제협력의 신뢰가 한번 크게 무너진 이상 기업들도 예전처럼 원활한 일본산 소재와 부품 조달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우리정부가 탈일본전략을 추진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완화와 세제감면, 연구개발(R&D)비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집중 지원하기로 한 만큼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전략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회장 등 4대그룹 총수는 지난달 8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회동을 갖고 수출규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실장이 최근 기업과의 지속적인 소통방침을 밝힘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의 회동이 재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6호(2019년 8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한듬 mumford@mt.co.kr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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