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다시 보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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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 무한책임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8년 전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났다. 원인 미상의 폐질환 환자가 2011년 5월8일부터 갑자기 대량으로 발생했다. 환자들은 폐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섬유화 증세를 보였으며 어떤 항생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도 상태는 악화됐다. 신종 미생물, 신종 세균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공포영화의 도입부처럼 시작된 이 사건은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언론에서도 신종 폐질환, 신종 호흡기 전염병으로 다뤘다. 뇌출혈 증세를 보이며 숨지는 임산부가 나타났고 그 뒤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의료진과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해 발병시기가 비슷함을 알아냈다. 늦겨울이나 초봄부터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갑자기 악화된 점이 똑같았다. 환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본 결과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가 신종 폐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됐다. 살균제를 물에 넣고 가습기를 틀어서 분무액 입자를 흡입한 사람들이 폐질환과 폐 이외의 질환 및 전신질환에 걸린 것이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는 공장이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방안에서 시작됐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제도 개선방안 발표에서 참석자들이 피해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피해자 6505명 중 1424명 사망

대부분의 참사는 발생 이후 단기간에 피해자수가 확정되지만 이 사건은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2013년 6월까지의 1차 피해조사에서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수가 사망자 110명을 포함해 총 361명이었다. 그 뒤 피해 접수가 계속 이어져 지금은 2016년 4월25일부터 시작된 4차 피해조사가 진행 중인데 2019년 8월9일 기준 사망자 1424명을 포함한 피해자수가 총 6505명에 달한다. 태아 피해자수도 사망 19명을 포함해 총 54명으로 파악됐다.

1994년 가습기살균제 원료성분을 처음 개발한 유공이 제품의 유해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시중에 유통시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검찰수사를 통해 업체와 정부기관 사이에 조직적인 유착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수년째 이어온 검찰수사는 지난 7월23일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책임자 등 8명을 구속 기소하고 내부정보를 유출하거나 증거인멸을 교사한 환경부 공무원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34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마무리됐다. 검찰 수사는 끝났어도 피해 접수는 계속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피해자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킨 살균제 제품수는 16개가 넘는다. 사용된 살균제 성분은 PHMG, CMIT/MIT, BKC, PGH였다. CMIT·MIT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이전에 출시돼 유해성 심사를 20년 동안 면제받았고 피해가 나타난 후 유독물질로 지정됐다.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인산염은 경구독성, 피부자극성, 안구자극성 등 독성을 갖고 있음이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나 분자량이 큰 고분자 물질이라 세포 속으로는 잘 파고들지 않는다고 여겨져 세포독성에 대한 경계심이 낮았던 것이다.

고분자라도 양이온계에 속하면 세포에 잘 흡착된다는 점이 간과됐다. PHMG를 2003년에 해외 수출한 기업이 호흡기로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현지 정부에 제출하면서도 국내에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가습기를 틀어놓으면서 PHMG를 흡입한, 부산에 사는 K씨의 경우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9일 만에 사망했다.



◆기준 엄격해 91.4% 구제 못받아

정부는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손해배상청구권 대위를 전제로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간병비, 특별유족조위금, 특별장의비, 구제급여조정금을 지원하는 제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으려는 사람을 피해구제위원회에서 심의해 피해등급 등을 결정한다. 지난 7월26일에 있었던 ‘제13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는 폐질환 피해인정 신청자 360명의 조사·판정 결과를 심의해 10명을 인정하고 천식질환은 122명 중 17명을 피해가 있는 것으로 판정했다.

이번 의결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피인정인은 총 835명(폐질환 484명+태아피해 27명+천식피해 341명-폐질환·태아 중복인정자 4명-폐질환·천식 중복인정자 13명)이 됐다. 특별구제계정으로 지원받고 있는 2144명까지 포함하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에 따라 지원받는 피해자는 2791명이다. 19명에게는 요양생활수당 등이 지원되도록 의결했다.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에 독성간염도 추가하기로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신청의 절차와 구비서류 등에 관해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종합지원센터’ 상담실로 문의하거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을 확인하면 된다.

현재(8월2일 기준)까지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조사·판정결과를 받은 피해자 중에 정부지원을 못 받는 3단계(가능성 낮음)와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 피해자 및 판정불가자는 91.4%다. 구제기준이 엄격해 대다수 피해자가 구제받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매일노동뉴스(2019년 8월7일)에 따르면 7개월간 사용했던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이 건강했던 아이인 J군을 병들게 해 폐호흡량이 일반인의 64% 수준에 불과하게 만들었는데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4단계 판정을 받았다고 J군의 어머니는 주장한다. 또한 피해가족은 ‘전신질환 피해 인정과 판정기준·피해단계 구분 철폐, 대통령 면담’을 청와대에 요구했으나 공식 답변이 없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와 피해가족은 지난 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으며 김기태 천식피해자 구제인정 촉구모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2년 전 약속을 꼭 좀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에서만 벌어진 살균제 참사

겨울철 난방으로 습도가 내려간 실내에서 지내다 보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바이러스, 세균, 먼지 등에 대한 호흡기 방어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가습기를 이용한 습도 조절을 권한다. 노약자가 있는 집에서는 특히 가습기를 더 많이 사용한다. 수증기를 뿜어내는 가열식가습기보다 물을 초음파로 진동시켜 미세한 크기의 물방울을 만들어 뿜어내는 방식의 초음파식가습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물통 안에 생기는 물때와 미생물 제거는 흔히 귀찮게 여겨진다. 이 점에 착안해 청소하지 않아도 되게끔 가습기 살균제 개발이 이뤄졌던 것이다.

필자 가정에서는 가습기살균제를 단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귀찮더라도 가끔 물통을 깨끗이 청소하고 말린 뒤 다시 사용하곤 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안전하다고 알려졌더라도 물방울에 녹아있는 살균제가 코를 통해 또는 수면 도중 무심코 벌리는 입을 통해 몸안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A신문(1994년 11월16일)에 “유공 바이오텍 사업팀이 개발에 성공한 이 살균제는 가습기의 물에 첨가하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완전 제거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습기메이트란 제품으로 판매될 이 살균제의 효력은 15일 이상 지속되며 독성실험 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소개됐다.

B신문(2002년 10월10일)에는 “OO산업은 가습기의 세균과 곰팡이, 물때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했다. 가습기 물에 섞어 사용하는 제품으로 천연 솔잎향이 첨가돼 정신적 피로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해 인체에 무해하다”고 보도됐다.

C신문(2004년 12월1일)은 건강한 겨울나기를 위해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와 ‘가습기당번’을 소개했다. 제품에 대한 보도를 그대로 믿은 사람들은 주저없이 구입해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전세계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벌어졌다.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이 해외에서는 가습기 외에 다른 생활용품에서만 일부 사용돼서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 고쳐야 하니까 2016년 5월에 살생물제품 허가제 도입, 생활화학제품 관리대상 품목 확대, 원료물질 위해성 평가와 안전기준, 표시기준 등을 강화하는 관리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스템이 한국보다 앞서는 선진국 사회도 개인을 완벽하게 지켜주지 못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6호(2019년 8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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