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폭탄’ 동산담보대출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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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기술력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동산담보대출이 1조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이 혁신금융을 내세워 은행권에 고삐를 죈 지 1년 만이다. 동산담보대출은 창업·중소기업의 기계설비, 재고자산, 농축수산물, 지식재산권(IP) 등을 평가해 자금을 조달하는 정책성 대출이다.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동산금융 활성화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고 이에 금융당국은 당시 2000억원 수준이던 동산대출시장을 2022년 말 6조원까지 키운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올해 동산담보대출 목표금액은 1조5000억원으로 지난 6월까지 1조원657억원(71%)을 달성했다.

은행은 정부의 혁신금융 정책에 발 맞춰 동산담보대출을 늘렸지만 언제 부실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권마다 등장하는 정책성 대출에 은행의 건전성이 하락하는 등 리스크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걸음마 땐 동산금융, 팔 비틀자 ‘반짝’

먼저 동산담보대출의 안전성이 불안하다. 지난 7년간 동산금융시장은 눈에 띄게 성장했지만 기술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부동산에 비해 담보 안전성이 크게 떨어지고 사후관리가 어려워서다.

담보 불안에 관한 아픈 기억은 7년 전에도 있었다. 2012년 정부는 창조경제정책으로 동산금융을 출시했고 은행에 동산담보대출 판매를 적극 독려했다. 은행권은 동산담보대출 취급목표를 상향조정하고 취급실적을 영업점의 경영실적평가(KPI)에 반영했다. 그 결과 2013년 동산담보대출은 5793억원까지 늘었지만 담보물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4년 만에 2262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때문에 동산담보대출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서 주로 취급한다. 정책성대출의 부실에 따른 부담이 시중은행보다 적어서다. 금융위에 따르면 IP를 제외한 일반 동산담보대출의 최근 1년간 신규 공급액은 5951억원으로 그 절반을 국책은행이 판매했다.

IP담보대출 4044억원 중에서 시중은행의 공급액은 793억2000만원(19.6%)에 그쳤다. 지난 4월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각각 ‘신한 성공두드림 지식재산권 담보대출’, ‘KEB하나 지식재산권 담보대출’을 줄지어 내놨지만 판매에는 소극적이다.

보험회사들도 동산담보대출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동양생명은 2015~2016년 육류 수입업자와 대출 중개업자가 보관 중인 육류가격을 부풀리고 중복으로 담보대출을 받아 4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은행 관계자는 “만약 기업이 부실해지면 동산담보를 시장에 유통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며 “동산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했지만 실행하는 경우는 저조하다”고 말했다.

동산담보대출의 회수가 어려운 점도 한계로 꼽힌다. IP담보대출 회수지원기구는 IP 매각과 수익화를 위한 전문기구다. 회수지원기구가 있어야 은행 입장에선 IP가 담보물건으로 가치를 갖는다. 금융당국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대출부실 시 담보물 또는 부실채권을 사들여 은행권의 동산담보 회수 리스크를 경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선 연내 캠코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은행에 동산담보대출을 다룰 인프라가 부족한 점도 걸림돌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기술력을 평가하려면 기업의 특허권 등 IP담보 평가를 맡는 변리사 등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기술평가 전문인을 기용해도 4차 산업시대에 핀테크 기술이 다양해져 대출실행에 따른 부담도 만만찮다.

은행 관계자는 “기술 특허권은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것이 많아 담보력을 특정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기술 평가모형과 현실은 괴리가 있으므로 법적 절차를 따지고 기술 데이터를 관리,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금조달 성격의 동산담보대출이 창업·벤처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유망한 기술력을 지닌 은행에 손을 내밀기 전에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받아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까지 동산담보대출은 부동산 등 담보가 소진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현실”이라며 “혁신금융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창업·벤처기업에 자금조달과 투자를 함께할 수 있는 자본시장 내 다른 금융회사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산·채권담보법 개정 시급

동산금융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의 스타트업은 자금난에 시달릴 때 특허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데스벨리(죽음의 계곡)를 넘는다. 실제 미국에서 IP담보대출 실행 건수는 2011~2016년 6년간 94만7907건으로 연평균 15만건 이상에 달한다. 중국의 연 IP대출 규모도 10조원이 넘는다.

이들 국가는 일괄담보제를 시행하는 공통점이 있다. 일괄담보제는 부동산, 재고자산, 설비 등 유형자산은 물론 지식재산권, 특허권 등 무형자산까지 기업의 각기 다른 자산을 하나로 묶어 담보로 제공하는 제도다. 한 예로 특정 회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화장품 제조 기계와 화장품 재고, 매출채권을 한꺼번에 묶어 담보로 설정할 수 있다. 동산담보 가치가 적은 스타트업도 기술을 묶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미국은 상법에서 기업의 담보권을 묶어 포괄적으로 규율한다. 담보목적물은 담보약정을 맺어 계약을 체결하는데 ‘현재 소유하고 있거나 향후 취득할 모든 자산에 담보권을 설정’ 등의 표현으로 등기하는 게 관행이다. 이에 따라 동산담보대출 담보가치가 변해도 한도를 조정해서 판매하는 회전한도대출이 불티나게 팔린다. 정부는 연내 일괄담보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동산·채권담보법 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은행 관계자는 “기술 등을 대출담보로 인정하려는 금융정책은 정권마다 되풀이됐다”며 “동산담보대출이 금융시장에 안착하려면 정부가 동산금융 법 개정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6호(2019년 8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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