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중위험 중수익’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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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사태로 이어진 동남아 금융위기가 발발한 1997년 초.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들은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기록에 의하면 JP모건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의 1, 2 금융권 회사들에게 총수익스와프(TRS)를 활용한 파생금융상품을 팔았고 국내 금융회사들은 ‘금융문맹’이라는 치욕스런 평가를 받으며 오랜 소송전을 이어가야 했다.

금융회사들은 소송에서 억울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의 논리는 JP모건이 자기들에게 금융상품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당시 필자는 대형 투자신탁 회사의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필자의 회사도 피해회사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그 회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최고 기관투자가라는 곳이었다. 어처구니없고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사진=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불안감 나오는 ELS·DLS

최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그때의 불편한 기억이 살아났다. 지난해부터 미국과 중국이 무역시장에서 난장을 벌이더니 올 5월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세계경제는 미국만 빼놓고 유럽, 아시아 모두 상처를 받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좌충우돌식 미중 무역협상 진행방식은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국가 모두에게 출혈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한 글로벌경제의 후퇴가 예상되며 선진국 국채금리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했다.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금융가에서는 여지없이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8월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3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후 시장은 ‘발작’에 가까운 요동을 치더니 드디어 금융투자상품의 손실과 관련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련 뉴스들을 살펴보면 주가연계증권(ELS), 파생상품연계증권(DLS)의 원금손실과 관련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ELS는 ETF와 함께 금융투자상품 목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인데 주로 주가지수와 연계해서 주가지수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면 약속한 금리를 주는 상품이다.

ELS에 비해 DLS는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DLS는 주가지수 외에 금리나 원유 같은 실물자산 가격을 대상으로 일정한 조건을 제시하고 충족하면 약속한 금리를 지급한다.

◆꼬리위험 함정에 빠진 투자

뉴스가 제기하는 비판 관점을 보니 대체로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ELS, DLS가 ‘중위험 중수익’이라고 설명해놓고 원금손실이 크게 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참 의아해 하는 것인데 ‘중위험 중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투자 교과서에도 ‘중위험 중수익’이란 개념은 없다. 아마 ‘중위험 중수익’을 꼬박 꼬박 낼 수 있는 투자가나 운용매니저가 있다면 노벨상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 표현을 금융회사의 광고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상품 홍보기사에서는 ‘중위험 중수익’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본다. 통상 금융회사가 신상품을 출시할 때 홍보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는 경우 일반인에게 직접 배포하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상품 성격의 설명을 위해 ‘중위험 중수익’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언론이 ‘중위험 중수익’이라고 홍보해주다가 원금손실 문제가 발생하니 왜 거짓말을 했냐며 금융회사를 비판하는 모양새일 수 있다. 금융소비자나 중간에서 상품 내용을 전하는 사람 모두 ‘중위험 중수익’이란 표현이 ELS 초기에 유행한 근거없는 판매용 멘트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판의 두번째는 금융상품 위험의 고지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 특히 도마에 오른 것은 대형 은행에서 판매한 DLS다. 독일이나 영국 국채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구조화한 DLS들이 이들 국가 국채가 급격히 하락하자 원금의 100%까지도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투자자들은 소송전까지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의 쟁점은 투자자들에게 국채를 사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전하며 안전하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냐하는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소송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져야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처음에 설명한 동아시아 금융위기 사태와 이번 DLS 사태를 비교해보면 과거 금융회사와 지금 금융소비자가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즉 두 상황 모두 파생상품 제조자가 글로벌 금융기관이고 이들은 확률은 크지 않지만 시장의 하락을 앞두고 파생상품에 가격하락 위험을 반영해 팔았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보유한 투자포트폴리오를 보호하기 위해 꼬리위험(테일 리스크)을 헤지한 것이다.

꼬리위험은 종 모양의 확률분포 곡선의 양쪽 끝에 위치해 꼬리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생상품을 매수한 상대방은 약간의 수익을 더 받기 위해 치명적인 위험을 떠안은 것이다. 문제가 된 DLS에서는 테일 리스크를 안고 대신 3~5%의 이자를 받을 조건을 수락한 것이다.

◆금융상품 위험 잘 살펴야

동아시아 위기 당시에도 JP모건은 태국 채권에 투자하면서 환손실을 회피하며 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금융문맹인 국내 금융기관이 이를 덥석 문 것이다. 이번 문제가 된 DLS의 제조자들도 JP모건, 메릴린치 등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전해진다.

추측하건대 그들은 글로벌 경기후퇴와 금리 하락 위험을 전가하기 위해 약간의 이익을 부풀려 파생상품을 넘겼을 것으로 보인다. 금리에 대한 예측 기능이 없었던 것인지 그럴 확률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금융회사들을 통해 금융소비자에게 판매됐다. 그 결과 이번에는 국내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끼리 소송전을 치러야 한다. 꼬리 위험으로 과거의 부끄러운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금융의 세계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금융서비스는 친절할 수 있지만 금융투자의 손익계산서에 친절은 있을 수 없다. 금융회사의 책임이 있다면 따져봐야 하지만 금융소비자도 위험을 깐깐하게 따질 수 있어야 손잡이 없는 맷돌을 다시 돌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국내 금융시장은 꼬리 위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완전판매만이 문제라 생각하고 소송에만 집중하면 다시 벌어질 일이다. 금융회사, 금융상품의 꼬리 위험을 잘 살펴봐야 한다.


/사진=일러스트레이터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607호(2019년 8월27~9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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