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엔트로피와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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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 /사진=머니S DB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들어보셨는지. 엔트로피 얘기를 하려면 먼저 거시상태와 미시상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책꽂이에 여러 책이 가지런히 정렬된 ‘정돈된 방’은 거시상태의 한 예다. ‘거시’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가지런히 정렬돼 있음’은 책 한권을 갖고 말할 수 없는, 책들이 놓인 방 전체의 거시적인 양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장 안 나란히 놓인 책 두권을 골라 위치를 바꾸면 방의 미시적인 상태는 바뀐 셈이다. 하지만 정돈된 방이라는 거시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즉 하나의 거시상태를 구성하는 미시상태는 여럿일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라. 정돈된 방이라는 거시상태와 책들이 방안 여기저기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어질러진 방’이라는 거시상태, 둘 중 어느 거시상태가 더 많은 미시상태를 가질까.

정돈된 방이라는 거시상태에선 책 한권을 책장에서 빼내 방안 아무 데나 던져 놓으면 더이상 같은 거시상태가 아니다. 한편 책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면 책 한권을 들어 다른 곳으로 휙 던진다고 해서 어질러진 방이라는 거시상태가 변하지 않는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정돈된 방보다 어질러진 방이 훨씬 더 많은 미시상태를 갖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방을 정리하는 방법보다 방을 어지럽히는 방법이 훨씬 더 다양하다고 이해해도 좋다. 통계물리학의 엔트로피는 주어진 거시상태를 만들어내는 미시상태의 수를 갖고 정의한다. 정돈된 방보다 어질러진 방에 해당하는 미시상태의 수가 훨씬 크므로 어질러진 방이 정돈된 방보다 큰 엔트로피를 가진다.

아무 책이나 흩어놓을 수 있는 힘세고 활발한 고양이를 정돈된 방에 풀어놓고 방문을 닫자. 시간이 제법 지나 방문을 열어보면 어질러진 방으로 거시상태가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거꾸로 어질러진 방에 고양이를 풀어놓고 잠시 후 방을 열어 보니 말끔히 정돈된 방을 보았다는 얘기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 이처럼 방의 거시상태는 엔트로피가 커지는 방향으로 변한다. 바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 뒤치다꺼리로 늘 바쁜 사람 집사가 방안에 함께 있다면 어떨까. 고양이가 책을 흩어놓는 속도보다 집사가 다시 정돈하는 속도가 더 빠르면 어질러진 방도 얼마든지 정돈된 방으로 바뀔 수 있다. 이 경우 집사를 제외하고 방을 보면 마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 생명의 진화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위배되므로 진화는 거짓이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엄청난 오해다. 생명은 닫혀서 고립된 방이 아니다. 외부와의 끊임없는 물질과 정보의 교환에 열려 있어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며 진화할 수 있다. 생명의 놀라운 진화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모순되지 않는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merry@mt.co.kr  |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한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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