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발길 끊긴 용산전자상가, 인기척에 놀라는 '용던'

 
 
기사공유

‘상전벽해’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다는 이 고사성어는 세월이 흘러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의미한다. 지난달 말 기자가 방문한 용산전자상가는 이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한때 영원할 것 같았던 용산전자상가의 열기는 온데 간데 없고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용산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용산전자랜드. /사진=박흥순 기자

먼저 20~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컴퓨터 좀 안다하는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용산전자상가 일대를 제 집 드나들 듯 찾았다. 때문에 당시 용산전자상가는 365일 내내 뜨거웠다. 그 당시 흔했던 불법복제 게임부터 특정한 날 잠깐 열리고 사라지는 도깨비시장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용산’이라 함은 용산전자상가를 의미할 정도로 지역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용산전자상가는 서서히 기운을 잃었다. 결제시스템의 발달로 온라인쇼핑이 오프라인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시작됐다. 서울까지 먼길을 오갈 수 없는 이들이 불러온 변화는 곧 시장전반을 강타했다. 여기에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의 호객행위와 불친절한 응대가 기름을 부었다. ‘용팔이’(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을 비하하는 용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용산은 악명이 높았다. 그들은 별다른 정보 없이 용산을 방문한 이들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차곡차곡 쌓였고 ‘용던’(용산과 던전이 합쳐진 단어)이 되면서 용산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었다.


전자랜드 2층의 한산한 모습. /사진=박흥순 기자


◆손님 없어 줄줄이 문닫는 용산

기자가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한 것은 지난 8월 말이다.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였다지만 용산전자상가 앞 아스팔트는 열기를 뿜어냈고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오랜만에 찾은 용산은 옛모습 그대로였다. 터미널상가와 노점상이 없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변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더위에 지치기 전에 걸음을 재촉했다. 가장 먼저 컴퓨터 매장이 집결한 선인상가를 둘러봤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호객행위가 기자를 반겼다.

“뭐 찾아요? 컴퓨터 관련된 건 다 있어.” 매장을 지키던 상인이 호객행위를 했다. 듣는 둥 마는 둥 걸음을 재촉했다. 이후에도 두차례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용산이 어렵다는데 그대로네’라는 생각이 들 무렵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코너를 돌자 문을 닫은 가게가 복도 양쪽을 가득 메웠다. 가장 구석의 매장에서는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오가는 이가 많지 않아서일까. 기자를 보더니 흠칫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PC부속품을 판매하는 한 매장에 들러 상가 분위기를 묻자 상인 A씨는 “글쎄. 예전에는 사람이 없는 게 실감이 났지만 그게 계속돼서 그런지 이제 실감이 안나”라며 “매장은 거의 명목상 유지하는 거지 매출은 온라인이 더 많이 나와”라고 설명했다. 인근 구멍가게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용산에서 2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한 B씨는 “오가는 사람이 줄었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며 “지금 남은 사람들은 온라인판매에 빠르게 눈뜬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선인상가를 나와 걸음을 나진상가로 옮겼다. 나진상가는 컴퓨터 부품과 휴대폰 매장이 섞여있는 구조로 과거보다 휴대폰 매장의 수가 더 많아졌다는 느낌을 줬다. 평일 낮인 만큼 휴대폰을 구입하는 이들의 모습 많지 않았다. 문을 연 매장의 상인들은 문 밖의 행인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반적으로 나진상가의 분위기는 무기력했다. 나진상가 15동 지하의 도깨비상가는 출입구가 굳게 잠겨 있었다. 상인 C씨는 “도깨비상가는 USB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고 2년 전 문을 닫았다”고 귀띔했다.

◆활력 떨어진 용산… 재개발 과제는

나진상가를 거쳐 전자랜드로 향했다. 전자랜드는 다른 상가와 달리 전자부품보다 완제품을 취급하는 곳이 많다. 때문에 앞서 살핀 곳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지만 손님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카메라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2층은 매장 직원이 손님보다 많았다. 약 두달간 이어진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였을까. 상인들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일본 카메라 브랜드를 취급하는 D씨에게 손님이 얼마나 줄었는지 묻자 “그건 왜 묻냐”며 신경질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안그래도 손님 없어 죽겠구만 (물건) 안 살거면 가던 길 가라”며 재차 화를 냈다.

또 다른 상인 E씨는 “아무래도 일본제품을 팔다 보니 영향이 없진 않다”며 “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없으니 소비자도 울며 겨자먹기로 사곤 한다. 일본산 카메라가 아니면 독일 카메라를 사야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일반 소비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제품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불매운동을 응원한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기자가 둘러본 용산전자상가는 확실히 과거보다 활력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오가는 인파는 물론 물건을 옮기는 손수레도, 문을 연 매장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에 서울시는 ‘Y밸리 도시재생 프로젝트’ 같은 용산전자상가 일대 활성화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긍정적인 소식은 아직 없다. 시는 2020년까지 용산전자상가에 200억원을 투입해 재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상인 C씨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은 용산 활성화라기보다 청년실업 해결책에 가깝다”며 “용산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관련 문화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 또는 정부가 상인들의 업종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608호·6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2101.96상승 5.3618:03 11/22
  • 코스닥 : 633.92하락 2.0718:03 11/22
  • 원달러 : 1178.90상승 0.818:03 11/22
  • 두바이유 : 63.39하락 0.5818:03 11/22
  • 금 : 63.74상승 1.6118:03 11/22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