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병역특례, 운동선수는 되고 BTS는 왜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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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1일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어워드 레드카펫 무대에 참석한 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10년 전 가을 극장가에서 흥행에 가장 크게 성공한 영화는 <국가대표>다. “국가대표, ‘천만’까지 날아갈까”라는 제목의 기사도 등장했었는데 천만관객 영화는 되지 못하고 역대 흥행순위 6위에 만족해야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서 1996년 무주에서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단체전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뒤 태극기를 걸어놓고 애국가 부르는 장면은 온 국민을 결속시키는 유대감과 애국심의 요체인 ‘국가정체성’을 관객으로 하여금 함께 느끼게 해줬다. 그런데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 가슴 뛰는 감동이 최대로 끌어올려지는 절정의 순간에 스키점프를 앞두고 군대와 관련해 외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네가 뛰지 않으면 나는 군대 가야 한다.”

이들이 고생하면서 훈련을 한 동기에 군대면제라는 목적이 매우 컸다는 것이, 하필이면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표출되는 순간 감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 상징적 코드로서 군 면제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천만관객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군 면제를 위해 뛰면서 태극기 앞에서 울며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논리적 충돌로 보인다는 평론도 있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스켈레톤 남자 시상식에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병역면제 받기 위해 메달 딴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자연스러운 얘기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작은 썰매에 몸을 의지해 시속 120㎞의 질주를 펼치는 스켈레톤 대표선수인 윤성빈은 한국 역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기 전 SNS에 "난 꼭 군대면제 받아야지"라는 다짐을 올렸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 자격을 충족한 선수는 7명이다.

대한민국 건강한 남자들의 상당수는 받을 수만 있다면 병역혜택을 받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마음일 것이다. 신체상으로 병역면제될 사유를 허위문서로 만들거나 돈과 권력으로 자식이 군에 안 가도 되도록 편법 조작하는 경우가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을 충족시켜 군에 안 가는 것이 가능하다.

1973년에 도입된 병역특례법은 몇차례 손질이 가해지면서 47년째 이어오고 있다. 운동선수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주게 된 애초의 이유는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에서 메달 획득이 워낙 빈약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올림픽 금메달은 한개도 못 따고 은메달과 동메달만 각 대회에서 1개나 2개 정도 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한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따면서 운동선수로서 병역특례 1호가 됐다. 하지만 양정모 선수 이후로는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어서 스포츠계에서 이 법은 잊혀졌다.

1981년에 ‘88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올림픽·아시안게임·유니버시아드·세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아시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에서 3위 안에 드는 선수는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명시되면서 다시 이 제도가 부각됐다. 한국에서 사상 최초로 개최되는 올림픽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도록 하고 메달권 선수를 양성하고자 한국체육대 졸업성적이 10% 안에 들어도 혜택이 주어졌다.

세계적인 스포츠대회에서 메달을 땀으로써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 필요했던 시기여서 운동선수 병역특혜에 대해 특별히 논란은 없었다. 88서울올림픽 이후로는 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 등에서 입상이 늘어나 병역특례 기준이 1990년에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바뀌었다.

◆축구도 야구도… 특례 악용 '잡음'

2002년에는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축구선수들을 고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이 열리기 바로 전날 월드컵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둬도 병역법 시행령의 특례대상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박지성 선수 등은 이때 혜택을 보게 됐다. 여론과 스포츠단체의 힘에 따라 병역특례 범위가 달라지는 양상이 이어졌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대만, 중국, 일본을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해 4강에 드는 쾌거를 이뤘다. 이에 야구계는 축구와의 형평성을 주장했고 WBC 4강 주역에게도 특별법이 적용되도록 해 병역특례가 주어졌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축구와 야구만 있는 게 아니어서 다른 분야 체육인들이 반발했다. 결국 월드컵 16강과 WBC 4강 진출자에게 주어지던 병역혜택 조항이 삭제됐다. 이에 따라 2009년 2회 WBC에서 준우승했을 때는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지 못했다. 병역특례 혜택에 따라 스포츠인들의 전력투구 양상이 달라진다는 말조차 떠돌았다.

축구의 인기는 올림픽보다 월드컵이 더 높음에도 병역혜택을 위해서는 월드컵보다 올림픽경기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얘기도 나왔다. 단체종목 입상에서는 경기에 1초라도 직접 참여하면 병역혜택을 받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경기에서 동메달 결정전까지 한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던 김기희 선수가 경기종료를 앞둔 후반 추가시간에 투입됐다. 한국이 일본(4위)을 누르고 동메달을 획득함으로써 단 4분만 그라운드에 나가 뛴 그도 병역특례를 받게 됐다.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특례 논란은 2018년 아시안게임 야구경기를 계기로 더욱 불거졌다. 대회 시작 전부터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우승을 다투게 될 일본팀은 아마추어인 사회인 선수들인데 한국에서는 LG 트윈스의 오지환과 삼성 라이온즈의 박해민 등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금메달이 절실해도 병역미필인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도록 하기 위해 국가대표팀을 이용한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SNS에는 “한국·일본·대만 3파전 중 프로 정예팀으로 꾸려서 사회인 야구팀을 이겨 금메달 따면 국민들이 잘했다, 수고했다 할까? 이럴거면 모두 군 미필 데리고 가서…을 높이는 것이 절박했던 시기였다. 1인당 국민소득(GNI)이 818달러에 불과했고 해외에 나가서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져도 너무 크게 달라졌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병역혜택을 준다는 명분은 크게 퇴색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고 해외 어디를 가든지 코리아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하계와 동계를 합치면 매 대회의 금·은·동 메달 수 합계는 40개에 달하며 단체종목은 참여선수 모두에게 병역혜택이 주어진다.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금메달 수는 1986년부터 2018년까지 9번의 대회에서 총 633개에 달한다.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혜택을 주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전 세계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방탄소년단(BTS) 같은 가수들은 훨씬 더 국위선양을 하므로 병역혜택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운동선수는 생명이 짧아서 한창 시기에 군대 복무를 하면 경기력에 큰 영향이 있다는 말은 인기절정의 시기가 있는 아이돌 스타에게도 해당한다.

스포츠경기처럼 절정의 활동시기가 있는 분야에서는 병역면제가 아니라 현역에서 은퇴하는 서른 중반까지 입대시기를 늦춰주는 대안도 제시된다. 운동선수는 상무부대로 국군체육부대에 들어가서 군인이면서도 운동을 할 수 있다. 실제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는 선수들도 있다.

정부는 올해 초 병역특례 관련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폐지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개선책을 논의했지만 예술·체육요원에 관한 현행 틀을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군대에 가는 사람의 숫자에 비해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으므로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아 굳이 폐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단 한명의 병역면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정서다. 각계 각 분야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에 공정성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메달리스트는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대가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라는 영광과 명예를 얻는다. 동시에 포상금을 받으며 평생 매달 연금도 받는다. 돈과 명예에 병역혜택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이번 올림픽 ‘군 면제’ 최대 수혜자는” 이렇게 올라오는 기사를 보게 된다면 씁쓸할 것 같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2호(2019년 9월30일~10월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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