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강남(江南), 길 위에 선 다정다감한 인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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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생 한국코카-콜라 유한회사 이사
장계의 <풍교야박>과 강남지역 인문여행
20여년의 그리움, <상하이, 시간을 걷는 여행> 출간
“인간의 본성 꿰뚫는 인문학, 마케팅의 필수요소”


지난해 9월 상하이 청포구 주가각진에서 본 풍경. /사진제공=김기생 한국코카-콜라 유한회사 이사
강남(江南)은 중국 양쯔강의 남쪽지역을 일컫는다. 상하이와 저장성을 비롯해 장쑤성과 안휘성 남부, 그리고 장시성 동북부를 가리킨다. 우리의 속담인 ‘친구 따라 강남 간다’거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에 등장하는 그 ‘강남’이다.

이 강남에 주목한 마케터가 있다. 코카-콜라(한국코카-콜라 유한회사)에서 32년 간 마케팅에 집중해온 김기생 이사(58)가 주인공. 그는 최근 <상하이, 시간을 걷는 여행>(김해인 저, 한국학술정보 간)을 펴냈다. 개발의 시대, 한국 하고도 서울서 ‘핫’해온 그 강남도 아니고 바다 건너 대륙의 강남이 웬 얘기랴.

◆해인(海仁), 한자와 고전에 탐닉하다

김 이사에게 책을 쓴 이유를 들어봤다. 그에 앞서 눈에 띄는 건 저자명이었다. 해인(海仁), 한학에 조예가 깊은 재당숙이 김 이사의 고교 입학 즈음에 지어준 자(字)란다. “넓고 어질게 살라”라는 재당숙의 혜안은 긴 세월을 돌아 김 이사의 첫 인문여행서에 철썩 달라붙은 셈이다. 김 이사는 이 책으로 버킷리스트 한줄을 지웠다.

저자명의 유래에서 김 이사의 집필 배경을 짚어볼 수 있겠다. 그는 “이규보 선생의 <강남구유>(江南舊遊)가 인상 깊었다. 글을 읽으면서 강남이라는 지명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졌다”며 “언젠가는 이규보 선생에게 영감을 준 중국의 강남에 가서 제대로 그 문화와 사람을 겪어보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쑤저우 운하 샨탕지에를 찾은 김기생 이사. /사진제공=김기생 이사
집필에는 상경학도이면서 ‘문청’의 끊을 놓지 않은, 인문학적 감성도 한몫했다. 김 이사는 대학 재학 시절 연세춘추 29주년 기념호에 시를 발표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고전과 문학을 멀리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쑤저우의 풍교와 한산사를 떠올렸다고 했다.

풍교와 한산사, 김 이사는 당대의 시인인 장계(張繼)에 매료됐다. 당시(唐詩) 하면 이백이나 두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낯선 인물은 누굴까. 김 이사는 장계의 시 중 특히 <풍교야박>(楓橋夜泊)을 좋아했고 번역까지 했다고 한다. 여운 깊은 시를 함께 나누기 위해 2006년 자신의 블로그에도 소개했다.

“楓橋夜泊(풍교야박) 풍교에 밤배를 대어놓고
月落烏啼霜滿天(월낙오제상만천) 달 기울고 까마귀 우니 서리 하늘에 가득 차고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강둑 단풍나무 고깃배 등불은 마주서 잠 못 이루네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엔 한산사가 있으리라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한밤 종소리는 뱃머리에 울리고”

지난해 7월 찾은 풍교의 전경. /사진제공=김기생 이사

◆“풍교에 밤배를 대어놓고”… 장계의 시와 인문여행

<풍교야박>에는 ‘한산사’(寒山寺)라는 절이 등장한다. 당대 한산과 습득이라는 승려와 잇댄 사찰이다. 김 이사는 “20년 전쯤인데 어머니께서 어떤 연유에서인지 한산과 습득, 두 고승의 그림(사본)을 갖고 오셨다”며 “너무나 신기해 한산사와 풍교를 가봐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고 술회했다.

어렸을 때 익힌 한자와 고전, 역사와 문학. 특히 대륙사에서 흥망성쇠의 축소판이랄 강남지역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그의 발걸음을 상하이로 옮기게 했는지 모른다. 우연일까. 그는 지난해 초 회사 일로 상하이에서 6개월간 머물렀다. 이 기간, 시간을 쪼개 풍교와 한산사를 비롯해 강남 일대를 훑은 것. <상하이, 시간을 걷는 여행>을 출간하는 계기였다.

“퇴직 후에 가서 인문여행서를 쓰겠다는 바람이 앞당겨진 거죠. 20여년 동안 풍교에 대한 그림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먹먹해졌어요. 길이 15미터 높이 5미터가량의 짧은 아치형 교각을 두고 몇번을 망설였는지…. 마치 아껴두고 보고픈 마음처럼요. 실제 장계가 배를 댔을 곳을, 강상을 오가며 시인의 마음을 헤아렸죠. 낯선 여정에 별별 감상이 오가는, 나그네의 비슷한 심정이랄까요. 시를 쓴 밤에 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 이사는 20여년 간직해온 풍교의 풍광이 눈에 확 들어선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시를 쓸 때 장계는 안사의 난을 피해 운하를 통해 막 쑤저우에 도착했다. 낙심에다 전란으로 인한 불안감, 가을이라는 계절, 고깃배 불빛, 한밤중의 종소리가 주는 묘한 감흥이 합해져 <풍교야박>이라는 걸작이 나왔다.

지난해 7월 찾은 풍교 인근의 장계 시인 조형물. /사진제공=김기생 이사

◆운하와 코카콜라, 그리고 <상하이, 시간을 걷는 여행>


오래 전 장계가 운하를 이용했듯 강남일대는 운하가 발달한 곳이다. 대륙운하의 경동맥이라 할 베이징-항저우 대운하(경항대운하)를 비롯해 뤄양(낙양)-항저우 운하 등 강남은 운하의 기점이다. 내륙과 해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사람과 산물, 문물교류가 풍성했다는 의미다.

김 이사는 항저우에서 운하 주변에 늘어선 중의원 거리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 사는 모습은 동서양이 똑같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그 이유가 뭘까.

김기생 이사가 최근 김해인을 저자명으로 출간한 <상하이, 시간을 걷는 여행> 표지. /사진=이담북스 캡처
“운하든 철도든 여행을 오래하고 나면 피로하고 지치게 마련이죠. 더러는 탈도 납니다. 항저우의 중의원들은 이러한 여행객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 생겨난 곳들이죠. 코카-콜라가 미국 동부 종단철도의 남쪽 종착역인 애틀랜타에서 발명된 이유와 비슷합니다. 교통의 요충이니 건강에 좋은 재료를 구하기도 쉽습니다. 항저우처럼 애틀랜타도 그래요. 미국 남부의 주요 항구인 서배너와 미국 종단철도를 통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들어오는 각종 약재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죠.”

기착지에서의 활력과 상쾌함에 대한 꾸준한 수요. 애틀랜타에서 다양한 종류의 허브를 원료로 한 코카-콜라의 발명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항저우의 가장 큰 중의원은 1649년 창업한 방회춘당이다. 그는 “돈은 벌어도 좋으니 거짓을 팔아선 안 된다”는 방회춘당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마케팅에 대한 운도 뗐다.

마케팅은 한마디로 사람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삶에 대해 천착하는 인문학이 기업행위의 밑바탕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코카-콜라가 전세계적으로 롱런을 한 데에는 사람들의 본성을 읽어내고 긍정적인 부분을 꺼내서 (기업행위에) 반영한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어찌 보면 코카-콜라 일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키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는 또 다른 인문여행서를 쓸 계획이다. 이규보 선생의 <동국이상국집>의 앞부분을 장식한 개경-상주 간의 여행서를 염두에 뒀다. 800여년 전 이 선생이 찾은 그 길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여행서를 재해석해볼 요량이란다. 오는 10월, 그는 회사 일로 다시 상하이로 떠난다. 미처 그에게 묻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해인’의 버킷리스트에 도대체 몇권의 인문여행서가 있냐고. 상하이에서 돌아오면 그를 다시 만나야할 이유다.
 

박정웅 parkjo@mt.co.kr

여행, 레저스포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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