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65] 중고차시장의 ‘바담풍’

 
 
기사공유

단원 김홍도의 서당. /사진제공=경기도미술관

“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담풍이라 해라.”

옛날에 ‘ㄹ’ 발음을 하지 못하는 훈장님이 서당에서 학동들을 모아놓고 ‘바람풍(風)’을 설명하면서 화가 나서 한 말이다. 학동들이 자꾸 ‘바람풍’이 아니라 ‘바담풍’이라고 하니까 내가 비록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이라고 하라고 역정을 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입에선 ‘바담풍’이라 나왔고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학동들은 더 소리 높여 ‘바담풍’이라고 화답했다.

세월이 흘러 ‘ㅏ’를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이 군대에 갔다. 그가 밤에 볼일이 있어 군대 밖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보초가 “정지, 손들어, 암호?”라고 소리치자 “고구미”라고 대답했다. 보초가 더 크게 “암호!”라고 하자 그도 더 크게 “고구미!”라고 했다. 보초가 방아쇠를 당겼고 그는 쓰러지며 “이, 김진기?”라고 했다. 그날 암호는 ‘고구마’였는데 ‘ㅏ’ 발음이 안돼 ‘고구미’라 했고 죽으면서 한 말은 ‘아, 감잔가?’였다는 슬픈 전설이다.

◆정치는 솔선수범과 소통이다

훈장님의 ‘바담풍’은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스개로 알려준다. 따르는 사람들은 이끄는 사람들을 흉내 낸다. 단어는 물론이고 말투와 행동거지를 그대로 따른다. 그것을 지켜야 할 규범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차선을 위반하고 음주운전을 하면서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쇠귀에 경 읽기’(牛耳讀經)다.

공자는 이를 “곧은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 위에 쓰면 굽은 사람을 곧게 펼 수 있다”고 했다. 번지가 지혜를 묻자 사람을 아는 것(知人)이라고 대답하면서 지인을 풀이해서 한 말이다. 번지가 그 뜻을 몰라 자하에게 물어보니 자하는 “순 임금이 고요를 등용하고 탕 임금이 이윤을 등용하자 어질지 않은 사람들이 멀어졌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과 같은 뜻이다.

‘ㅏ’ 발음을 못한 군인은 소통부재가 빚은 비극이다. 물론 이 얘기는 웃자고 만들어 낸 말이다. 실제로 이런 장정은 신체검사에서 입대불가로 판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그런 ‘절차적 공정성’이 작동되지 않았고 군대생활을 하면서 그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밤에 혼자 외출 나가는 것을 허용하는 등의 ‘부조리’가 발생할 여지가 곳곳에 잠재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에 속은 이사벨라와 (안)토니의 비극

가을에 산과 들로 나들이 가면 하얗게 뭉텅이로 핀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발길을 멈추고 다가가면 향기도 그윽하다. 1978년에 서울 목멱산(남산)에서 처음 발견된 북아메리카 원산의 서양등골나물이다. 이 들꽃은 번식력이 매우 강해 40여년(2002년)만에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을 장악해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됐을 정도다.

1960~1970년대 산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 심었던 아카시아가 토종 나무들을 도태시키고 숲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뿌리가 산소까지 파고들어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초여름 밤 달빛 아래서 하얀 꽃과 그윽한 향기로 청춘남녀를 설레게 하는 아카시아의 이중인격이라고나 할까.

반짝이는 게 모두 금이 아니듯 예쁜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겉모습에 얼을 빼앗기면 속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사기를 당하고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의 번지르르한 모습과 사탕발림에 넘어가 야반도주했던 이사벨라가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가장이 된 오빠와 올케의 반대와 설득에도 히스클리프와 야반도주해 도둑 결혼한다. 결혼한 다음 날 바로 그의 정체를 파악한 뒤부터 불행한 나날을 보내다 결국 그에게서 도망쳐 ‘아빠 없는 아들’(린튼)을 낳고 12년 동안 비참한 생활을 하다 짧은 생을 마쳤다. 겉모습에 속았던 그녀의 불행은 아들 린튼에게로까지 이어졌다.


반짝거림에 넘어간 또 하나의 비극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 생생히 묘사된다. 주인공 (안)토니는 ‘결혼사기’에 두 번이나 걸려들었다. 한번은 그녀의 결혼지참금과 유산을 노린 벤딕스 그륀리히에게 속아 넘어간 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의 강권에 의한 것이었다. 꼼꼼하기로 유명했던 요한은 그륀리히와 그의 일당들이 짜놓은 사기 그물망에 걸려들어 딸의 결혼을 강행했다. 남편의 사기극이 드러나 이혼했던 토니는 페르마네더라는 상인의 외모에 넘어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부차승치구지와 정보비대칭성: 분수 모르면 공멸

이사벨라와 토니의 비극 원인과 해결방안은 ‘주역’ 40번째 해(解)괘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원인은 “짐을 지고 일해야 할 소인이 군자가 이용하는 수레를 탐으로써 도둑을 불러들인 것”(負且乘致寇至)이다. “속이고 감추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고 지나치게 화장하는 것은 음란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자격 없는 사람이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에게 포악하게 하며 도둑질할 것만 생각한다”, “도둑을 불러들인 것은 추잡한 일인데 누구를 탓하랴”는 것이다.

해결방안은 두가지다. 하나는 ‘겉모습에 속지 않고 속내를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닦아 중도를 지키는 일’(其來復吉 乃得中也)이고 다른 하나는 ‘부차승하는 도둑놈을 빨리 잡으라’(有攸往夙吉 往有功也)는 것이다. ‘활로 높은 담장에 앉은 새매를 쏘아 잡으니 불리한 일이 없어’ 좋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에 대해 “무기(중도)를 몸에 감추어 두고 때를 기다려 행동한다”(藏器於身 待時而動)고 풀이했다.

‘바담풍’과 ‘이, 김진기’, 이사벨라와 토니의 비극은 정치가 광장에서 실종된 채 광장정치(狂藏情致)로 치닫고 있는 한국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치(政治)는 올바름(正)을 세우기 위해 몽둥이로 쳐서(攵) 다스리는 것(治)인데 한국 정치는 정에 따라 이르는 ‘정치’(情致)가 되고 있다. 광장(廣場)은 모든 사람이 막힘없이 드나들면서 모든 정보가 소통되는 곳인데, 한국의 광장은 감추고 미쳐 가는 ‘광장’(狂藏)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광장정치를 보면서 중고차시장을 떠올린다.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정치꾼이고 사는 사람은 유권자이다. 오래된 차를 주행거리를 조작하고 페인트를 새로 칠해 비싸게 팔려는 정치꾼을 제 값을 정확히 매겨 바가지 쓰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의 주인인 유권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4호(2019년 10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 0%
  • 0%
  • 코스피 : 2101.96상승 5.3618:03 11/22
  • 코스닥 : 633.92하락 2.0718:03 11/22
  • 원달러 : 1178.90상승 0.818:03 11/22
  • 두바이유 : 63.97상승 1.5718:03 11/22
  • 금 : 62.13상승 1.6818:03 11/22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