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상자 속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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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2019년 2학기에 시행된 강사법의 배경에는 시간강사들에 대한 아픈 역사가 있다. ‘상자속의 사나이’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기 바란다”는 유서를 컴퓨터에 남기고 서울대 야산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사람은 노문과 시간강사 백모씨였다(2003년 5월30일). 실종된 지 10여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유서엔 “경제적으로 가능성 없는 일만 했다. … 제일 급한 일은 카드대금 정리하는 것이고 월말엔 대출금 이자도 정리해야 한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보다 앞서 2001년 가을에는 경북대 시간강사 서모 철학박사가 학교와 학과 교수들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유서에는 학교 관계자들의 문상은 받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2006년에 서울대 독어과 시간강사인 권모 박사, 부산대 소속 김모 박사, 2008년에 서울대 불문과 박모 박사, 건국대 충주 캠퍼스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치는 강의전담교수 한모 박사 등이 연이어 목숨을 끊었다.

한모 박사는 죽기 전 미국에서 딸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한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유서에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고 발버둥치며 4년을 보냈다. …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국내대학 교수 임용에서는 줄줄이 탈락했다. 연이은 시간강사 자살 원인을 대부분의 사람은 ‘대학 시간강사 제도’의 사회적 굴레라기보다는 개인의 단순한 우울증으로 간주해 사회적 반향이 크지는 않았다.

◆발의 8년 만에 강사법 국회통과

그러다가 2010년 조선대 서모 강사가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교수와 제자=종속관계=교수=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제가 당신 종입니까?”라고 교수임용 비리와 논문대필 실태를 유서에 폭로한 것을 계기로 2011년에 강사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강사들은 고등교육법상 교원 지위 부여와 공개채용 도입에는 반발했다. 한 대학에서 최소 9시간 강의를 요구하는 시행령이 현실과의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시간강사의 평균 강의시간이 주 4시간에 불과해 한명의 강사가 9시간을 맡으면 다른 강사들이 대량 해고될 우려가 있었다. 또한 1년 이상 임용이 원칙이어서 1년 계약기간이 끝난 후의 고용연장도 불투명했다. 강사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이 네차례 연기됐다. 지난해 3월에야 대학·강사·국회 측이 추천한 12명의 전문위원으로 대학강사제도 개선협의회가 구성됐다. 6개월 동안 18차례나 회의하며 극적으로 합의안이 마련돼 11월29일에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발의된 지 8년 만이었다.

개정된 강사법은 강사들에게 교원지위 부여와 직장건강보험 가입을 명시했다. 1년 이상 임용과 주 6시간 이하 강의를 원칙으로 했으며 대학에서 특별히 필요할 경우 9시간까지 과목을 담당할 수 있다. 임용은 공개채용 절차를 거치며 3년까지 재임용이 가능하다. 재임용 과정에서 의사에 반해 불리한 처분을 받았을 때는 취소나 변경을 위해 소청심사 청구하는 권리를 부여했다. 방학 중에도 임금을 받을 수 있고 계약이 해지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방학 중 시간강사 임금지급과 강사들의 강의역량 강화를 위해 각각 450억원과 100억원씩 총 55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서는 “교원지위 회복과 고용안정을 얻게 됐다”며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에 대학 쪽은 “시간강사의 처우와 지위 향상은 바람직하지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목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강사법 통과로 강좌수 감소 및 대형화로 인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며 신진학자의 강단 진입에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의 시간강사수는 2012년 10만9743명에서 지난해 7만5329명으로 대폭 줄어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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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수 줄이고 겸임·초빙교원 늘려

대학 측의 가장 큰 우려는 강사법에 따른 인건비 대폭 증가다. 1년 단위 계약에 최대 3년까지 임용되는데 방학 중에 강의가 없어도 임금을 지급하면 방학기간의 4개월치를 더 주게 돼 실질적으로 강의료가 50% 인상되는 결과가 된다.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보험과 퇴직금을 모두 합산하면 추가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정 강사법 시행으로 추가되는 비용이 사립대 1년 총수입의 1%밖에 안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협의회에서는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고정비를 떼고 남는 가용비용은 대학수입의 5%가 안되므로 추가비용 1%가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학이 보유한 적립금 규모를 감안하면 엄살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4년제 대학 적립금 가운데 70% 정도가 상위 10개 대학에 집중됐음을 보이는 데이터가 제시됐다. 또한 기타 적립금을 제외하고는 적립금 성격상 연구·건축·장학·퇴직 등 정해진 목적에만 쓸 수 있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2019년 1학기에 시간강사를 더욱 줄이고 겸임·초빙교원으로 대체한 대학이 많다. 강의 통폐합과 대형화로 강좌수도 줄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 1학기 강사 고용현황 분석결과’에는 2019년 1학기 강사 재직인원이 4만6925명으로 2018년 1학기 5만8546명 대비 1만1621명(19.8%)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다른 교원 직위로 강의를 유지한 3787명을 제외하면 강의기회를 완전히 상실한 강사 규모가 7834명(13.4%)에 이른다. 특히 다른 직업이 없이 강사만 하다가 강의기회를 상실한 전업강사가 4704명(15.6%)에 달해 많지 않은 수입마저 사라지자 생업에 영향이 클 것이다.

전공계열별로 강사를 구분하면 인문사회계열이 2018년 1학기 2만8091명에서 2019년 1학기 2만3258명으로 4833명(17.2%) 줄어들어 수적인 감소폭이 가장 컸다. 예체능계열은 1만4980명에서 1만1581명으로 3399명(22.7%), 공학계열은 6449명에서 5033명으로 1416명(21.9%), 자연과학계열은 8002명에서 6281명으로 1721명(21.5%), 의학계열은 1024명에서 772명으로 252명(24.6%)이 각각 줄었다.

전국 196개 대학(일반대학 186개교, 교육대학 10개교)의 전체 강의 가운데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강의 비율은 2018년 1학기 22.81%에서 2019년 1학기 19.06%로 3.75%포인트 줄었다. 전년도의 감소폭(0.19%포인트)에 비해 훨씬 크다. 반면에 겸임교원의 강의 담당 비율은 3.93%에서 5.43%로 1.5%포인트 늘었으며 전임교원(0.96%포인트), 초빙교원(0.23%포인트), 기타교원(1.05%포인트)의 담당 비율도 늘었다. 시간강사를 대신해 겸임·초빙교원 등에게 강의를 주거나 전임교원 강의 책임시수를 늘린 결과다.

전체 강좌수도 2018년 1학기 31만2008개에서 2019년 1학기에는 30만5353개로 6655개 줄었다. 수강생이 20명 이하인 강좌는 11만8657개에서 10만9571개로 9086개 줄어든 반면 수강생 51명 이상인 강좌는 3만9669개에서 4만2557개로 2888개가 늘었다. 강사수를 줄이는 방법으로써 작은 강의를 합치거나 축소하고 대형 강의를 늘렸기 때문이다.

◆신입생 줄어 대학 재정난 가중 우려

대학 중에는 입학정원 감소, 구조조정, 2011년 이후 등록금 동결 등으로 인해 재정난이 가중되는 곳이 많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대학에 진학할 나이인 18세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신입생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도 있다. 앞으로 전체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초과하는 역전현상까지 발생할 전망이다.

시간강사만이 아니라 자칫하면 대학교수도 대학 구조조정에 따라 실업 대란에 내몰릴 수 있다. 선진국에 비해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사립대는 입학생 수가 감소하면 등록금 수입 감소가 뚜렷해지므로 늘어나는 인건비는 더욱 부담이 된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도 대학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강사법에 따라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이라는 긍정적 효과 이면에는 시간강사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는 비정규직 2년 이상 고용 금지나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따라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것과 비슷한 결과다. 어디서나 임금 지급액이 늘어나면 채산성이 그만큼 떨어지므로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계를 도입해 피고용자수를 줄이게 된다.

남아서 일하는 사람은 수혜를 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행해지는 제도라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나타나진 않는다. 일부 사람은 소외되거나 심지어 훨씬 못한 상태로 내몰린다. 개방된 세상에서는 서로 다른 요소 사이 상호 작용을 고려해야지만 사회 전체적인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갈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6호(2019년 10월29일~11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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