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69] ‘ㅁ·ㄹ 문화경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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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범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간다. 말 탄 고구려 무사가 화살을 겨누고 사냥개가 신나서 뒤쫓는다. 질주하는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놀란 사슴 한쌍을 겨눈다. 산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맥궁(貊弓)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 울음소리를 내며 범과 사슴의 가슴에 꽂힌다. 고구려 고분 무용총(舞踊冢) 벽에 그려진 사냥하는 모습은 박진감 넘친다. 범도 무서워하지 않는 고구려 사람들의 기상이 넘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냥터를 지나면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神市)를 펼친 신단수(神檀樹)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 옆에 말이 끄는 수레가 있다. 바퀴 높이가 사람 키만큼이나 될 정도로 큰 짐수레다. 짐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유통망이 갖춰져 있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만큼 경제력이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1935년 지린성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무용총은 5~6세기 고구려 생활상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한폭의 역사책이다.

◆말이 말하는 역사 사실

고구려 역사에서 말은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재산이었다. 전쟁터에서는 그 어떤 무기보다 위력을 발휘했다. 질주하는 말 위에서 쏘는 활과 휘두르는 긴 창은 속도와 살상력이 뛰어났다. 왜군이 삼한 땅 한머리(한반도) 남부에 침입했다가 고구려 지원병을 만나 백전백패했던 것도 바로 말 때문이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수레로 무거운 짐을 부려주고 밭갈이도 해주는 고마운 일꾼이었다.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범, 사슴, 멧돼지 같은 짐승을 사냥할 때도 없어서는 안 됐다. 고구려가 만주에서 터를 잡은 뒤 수당과 맞장 뜰 정도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바로 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덕분이었다.

말은 청각과 시각 그리고 기억력이 좋은 영리한 동물이다. 180도 돌릴 수 있는 귀는 360도 어느 방향의 소리도 다 들을 수 있다. 들을 수 있는 음역은 25㎑로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저음과 고음도 듣는다. 머리 양 옆에 달려 있는 두 눈은 360도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다. 앞, 옆, 뒤의 시야를 모두 확보해 가까운 것을 볼 때는 머리를 들고 보고 먼 것을 볼 때는 머리를 낮춰 집중해 본다. 미각은 단맛과 쓴맛에만 민감해 풀과 당근을 좋아하는 검소한 군자생활을 즐긴다.

특히 기억력이 아주 뛰어나 자신을 사랑하고 귀여워해주는 사람에게 순종하고 충성한다. 제 환공이 관중을 대동하고 고죽국을 정벌했을 때 귀국하다 길을 잃자 늙은 말을 풀어 길을 찾았다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사는 말의 뛰어난 기억력을 보여준다. 김유신이 술 취한 채 말을 타고 집으로 가려는데 말이 김유신이 자주 가던 기생 천관(天官) 집으로 가자 똑똑한 말의 목을 벤 일도 마찬가지다.

배달겨레는 이렇게 똑똑하고 힘센 말을 일찍부터 길들여 이용했다. 말의 이용에 관한 우리의 최초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온다. “원봉2년(BC 109년)… 우거(위만의 손자)가 항복을 청하고 태자를 보내 말을 바치겠다고 했다”(右渠請降遣太子獻馬·우거청항견태자헌마)는 서술이 그것이다. (고)조선 시대에 이미 말을 널리 사육했음을 보여준다. 신라에서는 거(阹)라고 부르는 말 목장이 많았고 목숙(苜蓿)을 대륙에서 들여와 말의 사료작물로 재배했다는 기록도 있다.

◆왜(倭)에 없던 말, 언제 일본에 전해졌을까

왜에는 원래 말이 없었다. 체구도 작은 왜가 고구려와 싸워 백전백패한 것은 바로 고구려의 기마병 때문이었다. 그래서 왜는 말을 들여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말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에 말이 언제 어떻게 전해졌는지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4세기 후반 백제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사신으로 간 아직기(阿直岐)가 두필을 갖고 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백제왕이 아직기를 파견해 좋은 말 두필을 보내 경판에서 키웠다. 아직기로 하여금 말 기르기를 관장하게 했다”또 <고사기(古事記)>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나행주 건국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서기>에 말 두필이 404년에 전해졌다고 기록돼 있다”며 “아직까지 5세기 이전에 일본에 말이 존재했다는 고고학 발굴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재용 충남역사문화원 박사는 이와 관련 “일본 오사카에서 말뼈가 발굴됐는데 4세기 말~5세기 초로 보인다”며 “말뼈가 발굴된 지역에서 백제계 토기와 금속 등이 함께 발견돼 백제인 집단 거주지역에서 말이 사육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일본은 백제로부터 말을 전래받은 뒤 열심히 사육했다. 사육된 말은 전쟁터를 누비는 군마(軍馬)로 훈련됐다. 군마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은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전국을 통일한 풍신수길(豊臣秀吉)은 군마와 조총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그에 반해 지방 반란을 두려워해 말 사육에 소극적이었던 조선은 추풍낙엽처럼 짓밟혔다.

◆말을 말하게 해 기해왜란 극복하라

주역의 <설괘전>에서는 머리가 되는 건(乾, 하늘)은 건장한 말이라고 했다. 또 중지곤(重地坤) 괘사에서 땅은 ‘암말의 바름’(牝馬之貞)이라고 밝혔다. 하늘은 스스로 굳세 쉬지 않고 간다. 땅은 후덕해 만물을 실으니 그 덕에 한계가 없으며 암말은 땅에 속한 동물로서 가는 곳과 응하는 곳에 경계가 없다.

말은 하늘의 뜻을 받아 땅을 힘차게 뛰어다니며 그 뜻을 펼치는 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은 원래 ‘ㅁ·ㄹ’이었다. ㅁ·ㄹ은 하늘(·)과 땅(ㅁ)의 뜻을 받아 실천하는 것(ㄹ, 己)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곳 사람이 하는 말이기도 했다. 따라서 말이 힘차게 그 역할을 한 고구려와 고려는 융성한 경제와 그에 걸맞은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말을 억눌렀던 조선은 세조 말기부터 내리막을 걸었다.

싸이는 ‘말춤’을 곁들인 ‘강남스타일’로 수백년 동안 억눌려 왔던 말의 멍에를 벗겼다. 방탄소년단(BTS)은 ‘말에 물린 재갈’을 없앴다. 말을 타고 말춤을 추며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 힘찬 한류(韓流)를 만들어 냈다. 말을 더욱 풀어 말하게 하라. 고삐 풀린 말이 기해왜란을 일으킨 파렴치한 일본을 기꺼이 물리칠 것이다. 기해왜란을 물리치는데 겨레와 역사를 배반하고 일본에 빌붙는 ‘반일종족주의’가 어떻게 버티겠는가. 저절로 그러하게(自然) 그 나쁜 씨앗을 불에 태우고 물로 싹 쓸어버려 멸(滅)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8호(2019년 11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홍찬선 전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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