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복제인간'은 인간일까, 상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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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2019년 11월 LA’란 글자가 영화 시작 화면에 나타난다. 인구가 증가하고 지구가 파괴되면서 거대 기업 타이렐사는 복제인간을 만들어 다른 행성을 정복하기 위해 보낸다. 복제인간 4명은 4년으로 설정된 자신들의 수명을 늘리고자 행성을 탈출해 지구로 되돌아온다. 이에 대응해 경찰은 지구에 불법으로 들어온 복제인간들을 잡아 폐기하는 특수팀 ‘블레이드 러너’를 개설한다. 복제인간 판별은 질문을 했을 때 반응하는 눈동자의 홍채 움직임을 통해 이뤄진다.

복제인간 리온이 조사받던 중에 신분이 들통나 블레이드 러너를 죽이고 도주하자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가 부름을 받는다. 데커드는 임무수행을 위해 복제인간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당황한다. 4년밖에 살지 못하는 복제인간 배티가 마지막에 데커드를 살려주며 굵은 빗방울 속에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관객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데커드도 임무를 완성했다는 성취감보다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안타까움으로 복제인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복제동물 속속 탄생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1982년에 개봉됐을 당시에는 미래 세계인 2019년 11월의 LA를 상상하며 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2019년 11월이 됐지만 영화에서처럼 복제인간은 아직 지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복제동물로는 1996년에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가 영국에서 태어났다. 세계 최초 복제송아지는 1997년에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에서는 1999년 2월에 복제소 영롱이(young-long; 젊음을 오래 유지하라는 뜻)가 경기도 이천의 한 목장에서 태어났다.

황우석 교수는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방식을 활용해 복제 소를 탄생시킨 것으로 알려져 유명해졌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했고 연구결과 진위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 2000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다섯마리 새끼 돼지 복제에 성공했으며 이후 고양이, 염소, 말, 토끼, 사슴, 낙타, 개 등 다양한 복제동물이 세계 곳곳에서 태어났다. 복제동물 제작에는 복제할 동물의 피부나 머리카락에서 얻은 체세포로부터 핵을 추출해 이미 핵이 제거된 난자에 넣어주는 핵 치환 기술을 사용한다. 이렇게 수정된 세포를 암컷의 몸속에 넣고 키우면 체세포를 제공한 동물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동물이 탄생하게 된다.

동물 복제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가축 복원을 위해 2001년에 복제들소가 대리모 소로부터 태어났으며 멸종위기종 야생 양도 복제됐다. 가족처럼 함께 지냈던 반려동물을 복제동물로 다시 만날 수 있고 동물 복제를 이용해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연구도 가능하다. 2007년에는 국내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치매 복제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람과 비슷한 치매 증상을 갖고 있는 복제돼지는 치매 연구 및 치료제 개발에 활용된다.

올 9월9일에는 박세필 제주대학교 줄기세포연구센터 연구팀이 인간치매 유발 유전자 3개가 동시에 발현되는 형질전환 복제돼지 생산기술 관련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2024년부터는 상당한 매출이 시장에서 가능하리라 전망된다. 복제기술 특허는 줄기세포·세포치료제 개발 전문기업 미래셀바이오에 기술이전됐다.

◆복제인간 생산의 한계

이처럼 목적에 따라 복제동물을 만드는 수준의 기술에 도달했어도 복제인간을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내는 것은 곤란하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데에는 윤리적 관점 등 여러 문제가 관여된다. 행성에 보낼 목적으로도 복제인간을 만들면 안되며 행성에는 로봇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상상의 세계인 영화, 소설, 만화 등에는 복제인간을 등장시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단화돼 초래할지 모르는 암울한 미래상 디스토피아를 표현한 명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을 통해 ‘오염된 미래’, ‘기업의 세계 지배권’, ‘계층 사이 갈등 심화’, ‘동물의 대규모 멸종과 인간의 중요성’, ‘자동화와 안드로이드의 부상’, ‘창조물이나 불복종하는 선지자의 보복’,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등 진지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적인 감정이 메말라버린 보통 인간들의 모습과 대치돼 복제인간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따스한 마음은 퇴색해가는 현대의 인간성을 고발하는 것 같다. 1982년 이후 나온 SF 영상의 디스토피아는 대부분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을 받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201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영화 <아일랜드>에도 복제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와 2019년이 마치 복제인간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처럼 됐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SF <아일랜드>는 2005년에 공개되면서 불과 14년 후의 지구를 지나치게 빨리 변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베이 감독은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다가 이 영화에서는 참패했다. 배급을 맡은 드림웍스와 워너브러더스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오직 한국에서만 2005년도 외화 중 <해리포터와 불의 잔>(330만명)에 이어 근소한 차이의 관객수로 흥행 2위(322만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때마침 황우석 박사의 유명세가 흥행에 도움이 됐다는 평도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인간들은 자신들이 지구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적인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 믿고 치유센터에 격리돼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몸 상태를 점검받고 음식과 인간관계까지 통제받는다. 센터 밖은 오염돼 있어서 나가면 안된다고 세뇌당하면서 지구에 마지막 남은 오염되지 않은 땅 ‘아일랜드’로 추첨돼 가는 날만 기다린다. 매일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던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 분)는 제한되고 규격화한 생활에 의문을 품고 지금까지 믿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된다. 자신과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 분)를 포함한 많은 주민은 자신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탈출을 감행한다.

◆복제인간 생산의 모순

이들 복제인간을 만든 생명공학업체는 이식할 장기를 구하지 못한 고객들의 주문을 받아 이식용 장기를 생산하는 업체다. 고객의 DNA를 스캔해 만든 클론으로 인공자궁에서 빠르게 성장시킨 뒤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영상자료 등을 통해 조작된 과거의 기억을 뇌에 입력시킨다. 복제인간이 깨어나면 영양을 공급하고 운동과 교육을 시키며 적절히 자라게 한 뒤 원하는 크기가 됐을 때 수술실로 데려가 장기를 꺼낸다. 복제인간이 아이를 낳은 후 죽음을 당하는 모습, 도망치다 잡혀서 장기를 빼앗기며 죽어가는 모습, 그러한 장면이 녹화된 폐쇄회로 화면을 보며 즐거워하는 인간들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극단적 상황과 복제인간의 탈주극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적인 관점으로도 떠올릴 수 있다. 복제인간을 제품으로 취급하고 인격을 가진 생명체로 생각하지 않는 연구소 직원들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사람마다 지닌 가치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현실 사회에 존재함을 엿볼 수 있다.

거짓의 세계에서 진실의 세계로 나가는 과정도 영화 속에 풍자돼 있다. 메릭 바이오테크사의 설립자 메릭 박사(숀빈 분)는 유전공학을 발전시켜 인간복제에 성공한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추진하는 혁신적인 일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삶을 개선시키는 일이라고 확신하지만 그 일은 일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일부 사람을 위한 혁신이 다른 사람의 희생을 수반하는 것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메릭 박사의 모습에서 현실적으로도 이런 유형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게 된다. 일부를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뜻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 글로벌시대에 요구되는 정신일 것이다.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가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능력 있는 자가 특정 목적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어내고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이야기를 보면서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오피니언리더 계층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평범한 개인들조차 자신의 꿈과 욕망을 채워가는 과정에 다른 사람의 어떤 희생이 수반되는지, 그 희생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지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그 희생은 가족일 수도 있고 자신과 이념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0호(2019년 11월26일~12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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