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비건' 늘어가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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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음식점 앞에 붙은 글 / 사진=이건희 재테크칼럼니스트
‘나는 동물착취에 반대한다.’

서울에서 잘 알려진 상권의 이면도로 음식점 앞에 붙어 있는 글귀다. 음식점 입구 안내문에는 ‘ALL THE MENUES ARE VEGAN(모두 비건 메뉴)’이라고 써 있다. 아무리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도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데 그 비건 음식점 앞을 지날 때마다 안을 들여다보면 주변 음식점들에 비해 손님이 꾸준한 편이다.

비건은 ‘동물성 식재료나 동물실험을 거친 성분을 사용한 제품은 소비하지 않는 채식’을 말한다. 고기를 좋아하더라도 잘 요리된 채식을 실제로 해보면 의외로 괜찮다고 느낄 수 있다. 취향에 따라서 맛은 그저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속이 편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다. 헤비하지 않다는 장점도 선호하는 이유다.

◆관심 증가하는 채식주의

채식을 하면 먹는 게 까다롭다거나 편식을 한다는 시선이 아직 한국사회에 남아있지만 외국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업무상 접대해야 하는 외국인이 채식주의자라면 음식점에서 메뉴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데 비건음식점에 가면 편하다. 요즘은 컬러풀하면서 친환경적인 식물 기반의 음식을 사진에 남기는 걸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채식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비건 음식점 중에는 채소와 과일 등을 조각하여 눈에 띄는 비주얼의 요리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곳도 있다.

작은 도시에서는 비건음식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서울에서는 홍대앞, 이태원, 강남 중심으로 분포돼 있고 부산의 경우 해운대, 광안리 등에서 소문난 비건음식점을 찾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는 비건음식점이 350여곳 있지만 채식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부족한 편이다. 세계적으로도 채식주의자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배경은 다양하다. 종교적 배경, 가정환경, 국가의 특성상 채식 위주로 먹으며 자랐다면 식습관이 배어 성인이 된 후에 반드시 채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도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쉽다. 전세계 채식주의자의 절반 이상은 인도에 산다. 힌두교인의 3분의1은 소고기뿐 아니라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계 스님들의 생활은 대체적으로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에 유리하다. 공기 좋은 곳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서 매일 마음을 다스리며 살 뿐만 아니라 채식 위주의 소식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비건음식은 사찰음식이 원조라 할 수 있다. 마늘, 파, 부추처럼 향이 강한 식재료를 넣지 않으면서도 식물성 식재료의 다양한 배합과 조리, 가공을 통해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불교와 상관없이 사찰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은 2016년에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약 1만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지구환경이 나날이 악화함을 우려해 동물을 보호하면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채식을 한끼 하면 비채식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4분의1 이하로 줄어들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효과가 있다. 식용 목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장면을 본 이후 육식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지난 7월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비건 페스타에서 관계자가 비건용 햄버거를 만들고 있다 / 사진=뉴시스 박미소 기자
공장형 축산에 대해 비판한 영화 <옥자>를 만든 봉준호 감독은 두달 동안 비건 생활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옥자>를 준비하면서 미국 콜로라도에서 하루 소 5000마리를 처리하는 거대한 현대식 도살장을 방문했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냄새가 뉴욕에 돌아가서도 나는 환각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동안 고기를 못 먹었다는 것이다. <옥자> 후반부에 나오는 도살장 시퀀스보다 그가 실제로 본 것이 20~30배 더 충격적이었다고 고백했다.

◆건강을 위한 선택

채식을 하면 대장암 발병률이 줄어들고 각종 성인병이 예방된다는 얘기에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방송에 종종 소개된다. 젊은 계층에서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채식 위주의 다이어트 식단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30㎏이나 감량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다이어트 비법으로 주로 채소를 먹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사량을 줄였는데 배고픔을 참기 힘들어서 채소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고 한다. 다양한 채소를 많이 먹었으며 특히 알배추는 매끼 먹었다고 한다.

건강이나 다이어트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무조건 채소를 먹기도 하지만 돈을 벌 목적의 비건음식점 운영에서는 손님들 기호에 맞고 관심을 끌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순수 식물성 재료를 기반으로 음식을 만드는 비건 요리법을 통해서도 카레에서부터 케이크, 피자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종류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수제버거에 동물의 고기가 아닌 콩고기나 콩까스, 버섯패티를 쓰는데 평소 먹던 버거에 비해 맛이 깔끔하다. 빵을 만들 때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우유, 버터, 계란 등을 사용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채식버터는 식물성 두유와 오일로 만들고 채식치즈에는 식물성 치즈와 견과류가 사용된다. 아이스크림도 두유, 오트 밀크, 기타 곡물로 만든다. 이처럼 비건의 재료는 풍부하고 다양한 종류의 과일, 채소, 콩, 견과류, 곡물, 씨앗 등으로 이뤄진다.

◆채식주의의 여러단계

채식주의는 허용하는 음식에 따라서 여러단계로 구분된다. 가장 낮은 단계인 폴로(polo) 채식은 고기 중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붉은색을 띠는 고기를 먹지 않지만 닭고기를 포함한 가금류는 먹는다. 또한 생선과 조개, 달걀 및 동물로부터 나온 유제품(우유, 버터, 치즈, 요구르트 등)도 먹는다. 폴로의 바로 위 단계인 페스코(pesco)는 닭고기도 먹지 않는다. 폴로나 페스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준채식주의자(세미 베지테리언)라고 하며 채식주의자(베지테리언)와 구별하기도 한다.

한단계 더 올라가 락토-오보(lacto-ovo)에서는 바다에서 나는 어패류까지 먹지 않는다. 락토-오보가 달걀과 유제품 모두 먹는 반면 락토는 유제품은 먹지만 달걀을 먹지 않으며 오보는 반대로 유제품을 먹지 않으면서 달걀은 먹는다. 더 높은 단계의 완전 채식주의자 비건은 달걀과 유제품 모두 먹지 않는다. 비건이 동물성 식재료나 실험을 거친 제품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단계의 채식을 100%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평소에는 비건이지만 상황에 따라 육류나 해산물을 먹는 경우 플렉시테리언(Flexiteraian)이라고 부른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임을 갖고 여러명이 함께 식사하는 회식에 참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평소 식사 패턴을 일부 포기한다. 채식을 주로 하면서 가끔 고기나 생선 등을 함께 섭취하는 가벼운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거부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은 세미 베지테리언을 채식주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채식주의자로 알고 있던 인도인 친구가 고기 먹는 것을 보게 돼 왜 먹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채식 먹는 날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유롭게 채식을 하거나 때때로 안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채식하는 기간을 정해 놓는 사람도 있다.

식물의 생명까지 절대적으로 존중해 식물의 몸체에서 생명과 관계된 뿌리와 줄기는 먹지 않고 열매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는 ‘프루테리언’(fruitarian)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기에 영양이 부족할 것 같은데 원푸드가 아닌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씨앗을 섭취하면 건강에 큰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단백질은 견과류나 콩 같은 씨앗에서 섭취한다. 다만 오랫동안 프루테리언 식단을 유지한다면 비타민D·철·아연·단백질 등의 영양분이 부족해질 수 있다.

누가 채식주의자라고 한다면 어떤 유형의 채식주의자인지 아는 게 필요하다. 채식주의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페스코 채식주의자에게는 육상 동물의 고기가 아닌 해산물로 만든 요리에 달걀과 유제품이 들어가는 메뉴를 제공하면 된다.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는 동양보다는 서양에 많은데 해산물이 들어가는 요리를 대접해서는 곤란하다. 채식이 여러 단계로 구분되므로 막연히 채식을 기피하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지 채식을 하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적합한 단계를 선택하면 된다. 가수 이효리와 김종서는 페스코로 알려져 있고 배우 송일국은 플렉시테리언이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건강관리 요법으로 프루테리언 라이프 스타일을 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1호(2019년 12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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