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조원 신탁시장, 주도권 누가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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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조원에 달하는 신탁시장에 한파가 불어올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책으로 은행의 신탁상품 판매를 금지하면서 신탁시장이 쪼그라들 위기에 놓였다. 

신탁은 은행이 고객과 일대일로 계약하고 투자상품을 운용하는 구조다. 고객의 돈을 비롯해 유가증권, 부동산 등 재산을 맡기면 은행이 보수를 받고 관리한다. 운영 목적이나 투자 방식에 따라 증여‧부동산‧유언대용‧특전금전신탁 등 상품의 형태가 다양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연계형 파생상품(ELS, DLS)은 펀드로 팔면 투자주가연계펀드(ELF), DLF가 되고 신탁으로 팔면 주가연계신탁(ELT), 파생결합증권신탁(DLT)이 된다. 한마디로 종합 자산관리계좌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이면 신탁 판매를 금지키로 하면서 ELT도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됐다. 은행권은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지만 금융당국은 강경한 입장이다.

◆신탁 수수료 이익 감소, 혼란 불가피

자본시장법상 은행은 겸영신탁사업자, 경영금융투자업자 지위를 갖는다.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도 팔지만 공격적인 투자상품도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DLF 대책으로 은행은 ELT 판매가 어려워졌다. 사실상 신탁시장의 주도권을 잃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기준 원금비보장형 파생결합증권 판매형태를 보면 은행신탁으로 판매된 ELS은 40조3615억원, DLS은 2조5002억원으로 총 42조원에 달한다. 은행에서 펀드와 신탁으로 판매되는 ELS·DLS 규모는 전체 시장의 40%다.

수천억원 규모의 수수료 수익도 증발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3분기 시중은행은 파생형 펀드 판매 수수료 약 1조원을 벌었다. KB국민은행의 수익이 2372억원, 신한은행 1763억원, KEB하나은행 1578억원, 우리은행 1288억원 등 4대 시중은행의 비중이 70%가 넘는다.

더욱이 DLF사태에서 벗어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KEB하나은행, 우리은행과 다르게 두 은행은 DLF 투자에서 이익을 냈지만 똑같은 규제 대상이 돼서다. 두 은행에선 ‘잘못은 다른 은행이 했는데 우리가 더 큰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6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ELT를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은 KB국민은행(5150건)으로 KEB하나(4890건), 우리(3336건), 신한(3156건), NH농협(126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전체 발행 규모는 155조3000억원 수준이다.

은행권은 최근 금융당국에 고위험 ELS를 담은 ELT상품 판매 금지 등 신탁상품 보완책을 제출했다. 대부분 ELT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잣대를 낮춰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은행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원금손실이 난 적이 없는 신탁을 DLF대책에 묶어 판매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자본시장이 발전할수록 상품과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상황에 DLF 대책은 투자 흐름을 역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사 반사이익 볼까… 투자심리 축소

앞으로 은행의 신탁판매 채널은 금융투자업계로 이동해 증권사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커졌다. 투자자가 운용사 보수 등 수수료를 더 내고 ELF로 가입하거나 거래 창구를 증권사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계열의 증권사는 복합점포에서 은행 고객을 흡수할 수 있다.
또 ETN에서 빠져나온 투자자들이 증권사의 ‘고위험 고수익’에 몰릴 전망이다. 실제 은행의 DLF 사태 후 증권사의 고위험 상품인 사모펀드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9월 말 은행의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27조7570억원으로 전월보다 2.9% 줄어든 반면 증권사의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지난 7월 말 313조원에서 지난 8월 말 318조원, 지난 9월 말 322조원으로 증가했다.

일부 증권사 영업점은 은행을 통한 ELS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대비해 자체 판매를 검토 중이다. 올 상반기 발행된 ELS 47조6000억원의 인수 현황을 보면 은행신탁이 27조7000억원(58.2%)으로 증권사 일반공모로 팔린 10조4000억원(21.8%) 보다 두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펀드, 랩어카운트를 비롯한 나머지 금융상품 개발 조직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있다. 투자자의 신탁 니즈가 증권사로 이동할 것을 대비해 헤지(위험분산)운용을 고민 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 신탁에서 파생상품 판매가 급감하면 일부는 증권으로 넘어가 자체 판매를 늘릴 필요가 있다”면서도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등 여파로 투자 심리가 위축돼 ELS 판매에 성공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과도한 규제로 신탁시장이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2004년 은행의 고유 계정 손실 우려를 들어 불특정금전신탁을 금지했다. 특정금전신탁(투자자가 투자 대상을 정하고 신탁업자가 대리하는 상품)만 운용이 가능하다. 이번 DLF사태로 불특정금전신탁은커녕 특정금전신탁도 판매하기 어려워졌다.

금융시장에선 주요 자산 증식 수단인 신탁이 사라져 투자자의 관심도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연 1~2%대인 정기예금에 비해 신탁상품은 최소 연 3~4%의 수익률을 올리는 구조로 짜여 투자자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은행 대신 증권사로 거래 창구를 옮겨도 되지만 판매 채널이 은행보다 적어 지역 고객들의 불편함도 문제로 꼽힌다. 또 증권사의 ELF는 은행 ETN 보다 운용보수(0.2~0.3%)가 높아 투자자의 수수료 부담도 늘어난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은행의 일부 불완전판매 문제가 전체 은행권의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한으로 확대된 점을 매우 안타깝다”며 “DLF사태로 신탁시장의 문을 걸어 잠글 것이 아니라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촘촘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원포인트 규제로 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2호(2019년 12월10일~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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