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의 기술 발전·인재 육성·글로벌 LG 위해 힘쓴 재계의 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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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타계한 고 구자경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LG그룹과 한국의 화학∙전자산업 중흥을 이끈 경영자였다.

구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그룹 회장에 재임한 25년 간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개발용 컴퓨터, 만능 시험기, 금속 현미경, 고주파 용해로 등 첨단 장비를 설치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진을 초빙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집행했다.

제품개발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산업 디자인 분야의 육성을 위해 1974년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하고 일본 등 디자인 선진국에 연수를 지원하는 등 전문가 육성에 힘썼다.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여기서는 고분자·정밀화학 분야를
집중 연구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ABS수지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로 플라스틱 가공산업의 기술고도화를 이끌었다.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제품시험연구소를 개설하고 가혹 환경 시험실, 한냉·온난 시험실, 실용 테스트실 등 국제적 수준의 16개 시험실을 갖춰 금성사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렸다.

구 명예회장이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의 결과로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영상미디어와 생활가전 분야에서 수많은 제품을 개발해 국내 최고의 가전 회사로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은퇴를 석달여 앞둔 1994년 11월, 구 명예회장은 나흘에 걸쳐 전국 각지에 있는 LG 소속 연구소 19개소를 일일이 찾아 둘러봤고 훗날 그때의 심정을 “마음이 흐뭇함으로 가득 찼다”고 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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