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돌파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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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벽두부터 노동시장이 요동친다. 노조를 탄압하던 주요 기업들이 사법당국의 철퇴를 맞으며 강성노조 설립 가능성을 연 데 이어 투쟁 성향이 짙은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조로 올라서며 노정 관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최저임금 결정체계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도 올해 본격적인 논의가 예정돼 있어 사회갈등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추진했던 ‘비정규직 제로’ 정책도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머니S>가 시계제로 상태에 놓인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지난해 5월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세계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U·UN 한 목소리… “한국 ILO 핵심협약 비준해야”
한국 ‘노동후진국’ 국제망신·무역보복 우려

“한국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부족하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EU)은 ‘한국의 노동 환경에 대한 오랜 우려 사항을 해소하겠다’며 한국 측에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했다. 전문가 패널 소집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간 분쟁을 해결하는 마지막 단계로 사실상 한국의 협정 위반 여부를 가늠하기 위함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19일 이재민 서울대 법대교수, 로랑스 부아송 드 샤주르네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 토마스 피난스키 미국 변호사 등을 전문가 패널로 선정했다. 이들 전문가 3명은 같은해 12월30일부터 올 3월 말까지 90일간 한국의 협정 이행과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만약 여기서 한국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 EU의 보복관세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노동권 기준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라는 낙인이 찍힌다. 한국이 FTA 역사상 ‘노동조항’을 위반한 첫번째 국가라는 불명예를 쓰는 셈이다.

노동부는 전문가 패널에 “ILO 기본권 선언 정신을 국내 법체계에 반영하고 증진시킨 점과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한 점을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EU가 문제로 삼은 ▲해고자·실업자·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점 ▲해고자는 노조임원으로 선출될 수 없는 점 ▲노조 설립신고가 정부기관의 재량권에 달린 점 등은 한국이 ILO 가입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된 사안이지만 국내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ILO 협약 비준 EU가 나서는 이유

ILO 핵심협약 비준은 기본적인 국제규범 준수이며 국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EU가 국내 노동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2011년 한-EU FTA 발효 당시 양측은 ILO의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한국은 핵심협약 8개 가운데 4개의 비준을 계속 미루면서 문제를 키웠다.

ILO는 국제노동 기준으로 189개 협약과 205개 권고를 채택 중이다. 이 가운데 ▲아동노동금지(138호, 182호) ▲균등대우(100호, 111호) ▲결사의 자유(87호, 98호) ▲강제노동금지(29호, 105호) 등 8개 협약은 ILO 회원국이 기본으로 지켜야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ILO 187개 회원국 중 144개국이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8개 핵심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31개에 달했다. 하지만 한국은 1996년 ILO 가입 당시 아동노동금지와 균등대우 협약은 비준했지만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핵심협약 비준을 하겠다”는 공염불을 되풀이했다. 이번 사태는 곪았던 부분이 터진 것이다.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도 EU에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역보복을 피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EU가 관세 조치와 수출입 물량 제한 외에도 조세, 규제, 공공조달, 기업보조금 등의 제재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EU가 지난해 5월 중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중국산 철강에 반덤핑 관세 부과 기간을 연장했다”며 핵심협약 비준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유엔(UN)도 한국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에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비준 일정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 유엔 사회권 규약 위원회는 지난달 9일 ILO 핵심협약 비준을 포함한 위원회의 권고를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는지에 관한 평가 결과를 정부에 전달했다. 위원회는 평가 결과에서 “ILO 핵심협약 87호와 98호(결사의 자유) 비준을 위한 한국 정부의 조치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비준을 위한 시간 정보가 부족한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구체적인 일정을 내놓지 못한 점을 꼬집은 셈이다.


◆노사·여야 갈등… 이번에도 ‘제자리 걸음’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당시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삼았고 2018년 7월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노사위)에 이를 맡겼다. 이후 경노사위는 9개월간 25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노사는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특히 ‘결사의 자유’를 두고 노사 간 충돌은 극에 달했다. ILO의 결사의 자유 협약은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을 전반적으로 옹호하기 때문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을 중심으로 재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당초 정부는 경노사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법을 먼저 개정하고 이후 비준하겠다는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을 고수했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에 끝내 실패하면서 비준과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지난해 10월에는 ILO 핵심협약 4개 중 3개인 강제노동금지(29호), 결사의 자유(87호, 98호)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제출한 비준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해고자·실업자 노조활동 허용 ▲공무원 및 교원노조 설립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삭제 ▲특수고용노동자 결사의 자유 인정 ▲파업 시 사업장 점거 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 강화 ▲단협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이 포함되지 않아 노사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더불어 보수야당의 반대에 막혀 국회 논의도 사실상 불발됐다. 노동계는 단체협상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파업 시 사업장 점거 제한 등의 안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반면 재계는 ‘한국적인 특수성’을 주장하며 비준안 처리에 난색을 표했다. 재계는 “한국은 유럽기업보다 노조의 힘이 강해 기업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점을 들어 ILO 핵심협약 비준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2018년부터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이번에도 2년간 제자리 걸음만 반복했다. 정치권이 4월 총선정국에 돌입한 만큼 20대 국회 임기 중 비준동의안 채택은 불가능하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매년 그렇듯 올해도 총선 이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할 상황이다.

EU와 UN은 하루 속히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팀 드 마이어 ILO 선임자문관은 “핵심협약의 비준은 하나의 정치적 약속으로 한국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이행할 적기”라며 “국내법 정비에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더는 비준을 늦춰선 안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628호·제6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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