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 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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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벽두부터 노동시장이 요동친다. 노조를 탄압하던 주요 기업들이 사법당국의 철퇴를 맞으며 강성노조 설립 가능성을 연 데 이어 투쟁 성향이 짙은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조로 올라서며 노정 관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최저임금 결정체계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도 올해 본격적인 논의가 예정돼 있어 사회갈등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추진했던 ‘비정규직 제로’ 정책도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머니S>가 시계제로 상태에 놓인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지난해 10월26일 ‘이용석의 희망, 김용균의 꿈, 우리의 결의’ 비정규직 철폐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윤청 기자

고용형태·처우 놓고 잡음… 기존 정규직 역차별 논란도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를 목표로 추진 중인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에 파열음이 들린다. 정부는 현재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90%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냈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일반 정규직과 전환직의 임금차이 등에 불만을 표하며 차별을 없앨 것을 요구한다. 특히 비정규직을 대거 포용하며 지난해 말 제1노총으로 올라선 민주노총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돼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규직 전환, 임금도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 앞에서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특히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안전과 생명 관련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천명했다. 일자리 대책의 일환으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없애고 처우를 개선해 고용의 질을 높이겠다는 약속이었다.

정부는 두달 뒤인 같은해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후 2년이 흐른 2019년 7월 기준 18만5000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돼 목표치의 90%를 달성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정부가 목표했던 고용안정화 부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계가 일부 정규직 전환 형태를 놓고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을 완료한 기관 중 46곳은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대상 인원은 정규직 전환을 마친 5명 중 1명(19%) 꼴인 3만여명. 이에 노동계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사실상 간접고용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직접고용을 한 기관도 임용을 통과해 정식 입사한 정규직과 전환직의 동일한 임금과 처우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인 김삼화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 산하 41개 공공기관의 일반정규직 직원 평균연봉은 7593만원이다. 반면 41개 기관 중 직접 고용된 전환 정규직이 있는 29곳의 평균 연봉은 3836만원으로 두배 가량 차이가 난다.

하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무작정 이들의 처우를 동등하게 개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채용형태나 직무 등도 다른 데다 직접 고용으로 인건비가 증가한 상황에서 임금마저 일반 정규직 수준으로 맞추면 재무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존 정규직 임금을 줄이면 또 다른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전신 기자
이미 임용을 통과해 정식 입사한 정규직 사이에선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비정규직에 대한 특혜이자 역차별이란 불만도 팽배하다. 예컨대 2017년에는 교육부가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 교사로 전환하려다 기존 정규직 교사와 임용시험 준비생의 반발로 철회한 바 있다. 7년차 교사인 나모씨(32·고양시)는 “수년의 도전 끝에 어려운 임용시험을 거쳐 겨우 입사에 성공했는데 아무런 조건도 없이 기간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처우까지 똑같이 해준다면 누가 힘들게 스펙을 쌓고 공채를 선택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날 세우는 민노총… 갈등 커지나

문제는 민주노총이 올해부터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이 같은 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투쟁은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원칙 확립과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사유 제한, 정규직 전환정책을 공공에서 민간으로 확산하는 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도 민주노총의 투쟁에 명분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대법원 3부는 대전MBC 소속 무기계약직 근로자 7명이 “정규직과 동일임금을 지급하라”며 대전MBC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전환된 근로자에게 정규직과 같은 취업규칙을 적용, 호봉이나 수당을 동일하게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민주노총은 이를 근거로 다음달 출범하는 공공부문 공무직위원회에서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할 방침이다. 공무직위원회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을 논의하는 기구다. 민주노총은 위원회를 통해 비정규직의 차별 없는 직접고용, 기존 정규직 공무원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 등을 집중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취지 자체는 좋지만 애당초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을 내세운 것”이라며 “시장상황은 가변적이고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정부가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돼 인기 위주의 포퓰리즘 정책을 썼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 정책은 필수적으로 재정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 없이 정책을 추진하면 공공부문이 모두 부실화된다”며 “고용은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되고 시장의 원리에 의해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고용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민간에 의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거나 산업전환에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성장정책을 고용주도성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628호·제6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한듬 mumford@mt.co.kr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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