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을 움직인 윤리적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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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화|조회수 : 1,399|입력 : 2011.01.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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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녀 온 도쿄 출장에서 나는 로또를 맞은 것 만큼이나 운수 좋은 사내였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두 개의 이벤트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일본 장인 정신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쉬운 이야기부터 하자. 뜨내기들이 찾지 않는 도쿄의 한 업무지구 구석진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순전히 육감에 따른 것이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고 7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한가롭게 앉아 우리를 맞았으며 내부는 생각보다 더 허름했다. 과연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음식이 하나 둘 나오자 이런 의구심은 이내 탄성으로 바뀌었다. 알고보니 45년간 직접 낚은 생선으로 요리를 내 온 집이었다. 어린애 주먹만 한 매실짱아찌는 키슈우 지방에서 담가 오는 그야말로 특산품이었다. 계산서를 받아본 뒤엔 더 놀랐다. 이래서 남는게 있을까? 선물이라며 한국 갈 때 가져가라고 싸준 매실짱아찌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자연에서 얻은 좋은 제철 재료와 장인의 손맛 거기에 후덕한 인심까지 더해진 잊지 못할 최고의 밥상이었다.

두 번째 이벤트는 좀 더 운명적이었고 내 직업정신의 근원까지 깊은 울림을 주기에 넘치고도 남는 것이었다. 출장 일정 중 주말이 끼어 있어 편한 마음으로 롯폰기의 미드타운을 찾았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각 분야 디자이너들이 설립을 주도한 '21_21 디자인 사이트'가 거기 있었던 것. 때 마침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계획엔 없었지만 입장권을 끊었다. 그러면서도 물론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쇼라면 또 모를까, 패션 관련 전시는 제 아무리 이세이 미야케라도 큰 기대를 않는 게 좋겠군, 온 김에 건축물 내부 구성이나 봐야지, 하는 심산이었다.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가져다 준 이런 안일한 생각은 전시장에 들어선 후 이내 무너져내렸다. 실로 굉장한 프로젝트였다. 미학에서 출발해 형이상학과 과학이 결합하고 여기에 엔지니어링과 크래프트맨십이 더해져 다시 미학으로 수렴되는 놀라운 과정이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해 표출되고 있었다. 물론 이세이 미야케의 핵심적인 오브제는 여전히 옷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치가 않다. 평면적인 조각보인 듯 싶은데 집어서 들어보면 이내 우아한 주름과 입체감을 지닌 드레스로 변모한다. 소재는 흔한 폴리에스테르. 그러나 이 역시 그냥 폴리에스테르가 아니라 버려진 옷에서 '재생'해 만든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다. 

거장을 움직인 윤리적 패션


이세이 미야케는 물리학자가 타카후미 마쓰이가 저술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읽다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전지구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심대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물건을 만든다는 행위는 과연 어떤 내일을 준비해야하는가?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컴퓨터과학자인 준 미타니와의 협업으로 앞서 말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혁신적이고 소재의, 낭비가 적은 입체 패턴이라는 실험으로 이어진다. 옷에서 옷을 만든다는 소재적 혁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발현됐다. 

아울러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필름은 소재와 제품의 제조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발상에서 실제 제품이 나오기까지, 전지전능한 디자이너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로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개입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숨김 없이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물건을 만든다는 것'의 미래가 환경 뿐만 아니라 제조업과 노동에 대한 성찰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 70대 거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여전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관성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성공의 법칙에 더 매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패션의 지속가능성과 윤리성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우주적 차원에서 시작해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선보이며 새로운 미래를 우리에게 열어주었다.
 
<사진 설명 - Reality Lab : 재생 재창조. 작품들은 단지 전시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도쿄, 런던, 뉴욕, 파리의 이세이 미야케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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