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을 만나다

민병준의 길 따라 멋 따라/충남 논산

 
  • 민병준|조회수 : 3,338|입력 : 2011.01.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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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산(山)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널따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고장 충남 논산(論山). 흔히 육군훈련소인 연무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고장은 충청도 미륵신앙의 중심지였다. 또한 계백장군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의 현장이요, 조선의 선비정신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터전이기도 하다.

충남 논산의 으뜸 명소는 반야산 기슭에 있는 관촉사(灌燭寺). 고려시대인 968년(광종 19)에 혜명이 창건한 이 절집이 유명한 까닭은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 때문이다. 은진미륵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불상은 높이가 18m로 우리나라 석불 중 가장 크다. 고려시대 여느 지방의 불상처럼 머리가 너무 크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진 않았지만,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면서 학술적으로는 제작 연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눈덮인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을 만나다

민심 달래기 위해 세운 은진미륵

고려 제4대 왕 광종(재위 949∼975)이 후백제 때 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성을 허락한 은진미륵은 규모만큼이나 수많은 전설과 사연이 전해온다. 사적비에 따르면 관촉사를 창건한 혜명은 968년 반야산 기슭에서 큰 돌을 얻어 970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는데, 1006년까지 무려 36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다. 크레인도 없던 시절, 거대한 석불의 상반신을 올리기 위해 고심하던 혜명은 강가의 동자들이 흙장난을 하면서 모래를 경사지게 쌓고 큰 돌을 굴려 올리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 스님으로 변장한 미륵불이 압록강을 건너려는 오랑캐들에게 강물의 수심이 얕은 것처럼 속여 이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은 은진미륵이 호국불(護國佛)임을 암시하고 있다.

은진미륵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정말 거대하다. 크기에서 저절로 위압감과 외경심이 생겨난다. 절을 하는 자리는 물론 미륵불의 발치겠지만, 감상하기 좋은 자리는 왼쪽 돌계단을 밟고 올라간 지점에 있는 전각 앞이다. 이곳에서 보면 은진미륵 석등 석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너머로 논산평야의 너른 들녘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사람은 더욱 작게 보이고, 부처는 좀 더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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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정승' 윤증과 조선 최고 예학자 김장생

논산 북쪽의 노성면엔 명재고택(중요민속자료 제190호)이 있다. 제자들이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을 위해 지어줬다는 이집은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이 있다. 흔히 '백의의 정승'이라 불리는 명재는 임금이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 수많은 벼슬을 내렸지만, 재야에 묻혀 단 한번도 출사하지 않은 인물. 그렇지만 명재는 자신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의 거두 송시열(1607~1689)에 맞서 끊임없이 비판의 상소를 올렸다.

개인으로 보면 송시열과 윤증, 가문으로 보면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당파로 보면 노론과 소론의 치열한 대결은 결과적으로 노론의 전횡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를 흔히 회니시비(懷尼是非)라 한다. 송시열의 집이 회덕(지금의 대전 읍내동)이었고, 윤증이 니성(지금의 논산 노성면)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용어. 이 갈등은 아직도 파평 윤씨와 은진 송씨 후손들 사이에 통혼을 하지 않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앙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논산 동쪽의 연산면엔 들를 데가 여럿이다. 우선 연산은 조선 최고의 예학자로 추앙받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고향이다. 한전리 서원말엔 사계가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닦던 돈암서원(遯岩書院, 사적 제383호)이 있는데, 서원 왼쪽 편에 터를 잡은 응도당(凝道堂, 보물 제1569호)은 서원 건물로는 규모가 제법 큰 편이다. 사계의 제자는 서인과 노론계의 대표적 인물들이 거의 망라돼 있으니 얼마나 많은 유생들이 사계의 문하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계 집안은 조선 최고의 명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학문이 깊어 나라의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는 문묘에 배향된 인물은 모두 18명인데, 한가문에서 김장생 김집처럼 부자가 같이 문묘에 배향된 경우는 광산 김씨뿐이다. 또한 사계 후손의 광산 김씨는 전주 이씨, 연안 이씨 가문과 함께 각각 7명의 대제학을 배출했다. 돈암서원에서 3km 정도 떨어진 연산면 고정리엔 김장생 김집 묘소와 사당, 그리고 양천 허씨의 정려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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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이 최후의 항전 벌였던 황산벌

연산은 660년 계백장군이 5000 결사대로 김유신의 5만 신라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인 황산벌 전투의 현장이다.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은 연산의 천호리 연산리 표정리 관동리 송정리 등을 포함한 넓은 범위다. 충곡리엔 계백장군 유적지가 남아 있는데, 예전부터 계백장군 묘라고 전해오던 허름한 분묘를 잘 복원해놓고, 백제 군사박물관도 세워놓았다.

흔히 우리는 백제의 멸망 원인을 의자왕의 향락 때문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백제가 국제적인 밀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자신이 아니라 고구려를 공격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실수를 했고, 이로써 지방에 분산된 전력을 제대로 활용도 못한 채 처참히 무너진 것이다. 고구려 또한 나당연합군이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방어에만 치중한 나머지 동맹국이었던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도 지원군을 보내지 못했다.

천호리의 개태사(開泰寺)는 국도변의 평지에 터를 잡고 있는 작은 절집이다. 영웅들이 자웅을 겨루던 후삼국시대 말기, 그 마지막 전투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신검이 936년(태조 19) 벌인 일리천(지금의 경북 선산) 전투다. 신검은 이 전투에서 왕건에게 패주했고, 이곳 황산에서 항복하게 된다. 승리한 왕건은 황산의 이름을 '하늘의 가호를 내려준 산'이란 뜻의 천호산(天護山)이라 바꾸고 개태사를 지었다. 이 절집은 국가의 환란이 있을 때마다 호국기도를 드리던 고려의 호국사찰로서 전성기엔 1000명이 넘는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니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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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이 개태사지 석불입상(보물 제219호)인 개태사 불상들은 936년 개태사를 세울 때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자그마한 절집에서 당시의 위용을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증거는 남아있다.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철확(충남민속자료 제1호)은 지름이 무려 2m, 높이가 97cm, 둘레는 6.28m나 되는 가마솥이다. 이 가마솥은 개태사 부처님보다 훨씬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서논산 나들목→논산 / 중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지선→논산 나들목→논산 <수도권 기준 2시간~2시간30분 소요>

 
눈덮인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을 만나다


●숙식 논산시내엔 조선호텔(041-733-1012), 아테네모텔(041-733-2868), 미라클모텔(041-732-0101) 등 숙박시설이 많다. 관촉사가 있는 관촉동 주변엔 산장파크(041-736-9177), 미륵모텔(041-735-1804), 세인파크(041-736-2303) 등이 있다. 연산의 별미는 순대. 연산원조순대집(041-735-0367)은 이 지방의 전통 방식으로 순대를 빚는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다. 순대국밥 5000원, 순대(중) 7000원.

●참조 논산시청 문화관광과 041-730-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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